결혼은 기세다.
현재는 일본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 둘을 낳아서 제법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어릴 때의 나는 전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세대가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어릴 때의 나도 그랬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상태로 10대가 되었고, 10대가 되면서 현실적으로 우리 집안의 사정이 눈에 보이고, 남들과 비교가 되고,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할까라는 생각. 나라고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라는 걱정. 내 주변에는 괜찮은 어른이 없다는 현실과 함께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없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 걱정과 함께 어쩌다 보니 24살에 일본에 와서 살게 되고, 이 생각은 27살, 28살 정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나는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고, 과거보다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이것저것 노력했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일본에 와서 살게 되었고, 집에서 도움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일본에서 번 돈을 모으고 아껴가며 한국에 송금을 하곤 했다. 아주 운이 좋게 엔고가 지속되는 시점이었기에 가능한 시기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보다 경험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점차 결혼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져 갔다. 결혼은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만난 몇 명의 미혼 40대의 모습이 기혼자의 모습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게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때 알고 지내던 미혼에 40대인 한 분은 돈도 꽤 잘 벌고, 엔고로 굉장히 비싼 시기임에도 한국에 살면서 일본으로 자주 놀러 왔고, 좋은 음식을 잘 먹으러 다니면서 나에게 사주기도 하셨다. 고마운 분이다.
하지만, 그분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이런 사람이라서 만남의 기회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만남의 기회에 없으니 당연히 지속적인 연애도 할 수 없고, 결혼도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끔 이야기하는 중간에 정말 10대같이 무작정 불만만 쏟아낼 때가 있었고, "내가 막내로 커서 그래."라는 변명을 하곤 했다.
이런 사람과는 어떤 누구도 남녀관계로 인연이 이어져 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동안 한국 남자도 만나 보고, 일본 남자도 만나 보고, 재일 교포도 만나보았다. 여러 사람을 짧게 만나는 중에 20대 후반이 되어갈 무렵 만났던 남자가 결혼을 엄청 원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그 당시에 사귀는 건 좋지만,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다는 걸 미리 알렸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다 보니, 나 역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이 사람과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아빠일 수 있는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였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결혼에 대한 상상력이 점점 확대되어 갔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되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부터 이상하게도 결혼에 대한 열망이 더 크게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결혼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더니 그걸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마침 그때 내 나이가 만으로 29살을 앞둔 28살이기도 했다. 곧 서른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고 젊을 때인데, 그때는 왜 그리 조급한 생각이 들던지, 엄청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10대 때는 내 인생에 30대라는 게 없을 것만 같던 숫자였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저 앞자리 하나가 바뀔 뿐인데, 왜 그렇게 유난이었을까. 아마도 현실성이 없었나 보다.)
그러다가 새로 만나게 된 남자도 결혼을 원하는 꽤 연상의 남자였다. 30대 중반이라서 그런지 여자를 다루는 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여자 형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라고 그때에는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대처 능력이 향상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능숙했던 그의 연기에 난 속아버렸다. 알고 보니 양다리 중이었고, 어떤 쪽과도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 사귄 남자가 최악의 남자였고, 마침 그 시기는 집안 문제로 굉장히 힘든 나날들이 연속이었다. 집안 문제, 개인 문제가 약 3개월 사이에 빵! 빵! 터져서인지, 불면증이 심해졌고, 우울증이 함께 왔다. 그 해 여름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식욕 부족으로 체중이 확 줄었다. 굉장히 덥고 습한 도쿄의 여름이 그때는 덥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당시에 일하던 회사에서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몸이 반으로 줄었다면서 신경 써 주시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내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불안한 내 정신과 몸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지금 살고 있는 도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지. 타지에서 우울증을 앓아서 그런지 그때 마침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생각이 점점 어둠 속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좋지 않은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그저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울증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병원을 다니면서 불면증과 우울증 치료를 받고, 난 전직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서 좋아질 게 없다는 판단과 함께 그 당시에 일하던 회사의 미래가 지금의 나처럼 밝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그렇게 약 1년을 준비하다가 일본에 있는 한 IT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만 29살의 일이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의 연애담은 언젠가 더 풀어서 쓰고 싶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남편상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나에게도 '남자를 보는 눈'이라는 게 생겼었나 보다. 혹은 '사람을 보는 눈'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내가 원했던 조건은, 좋은 인상의 사람일 것, 부모님과 사이가 좋을 것,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 친구가 많지 않을 것, 주변 정리를 깨끗하게 할 것 등이었다.
결혼 후에 내가 느낀 감정은 정말 내가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만나는 친구마다 결혼을 추천했다.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낸 후에 만나서 그랬던 걸까, 내가 애써서 만남이 성사돼서 그런 걸까, 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역시 변함이 없다. 결혼하면서 생기는 또 하나의 선택지 중에 아이도 포함될 수 있는데, 역시나 이것도 나의 생각은 아이는 있는 게 좋다이다. 결혼을 해서 두 사람이 살아갈 때의 모습이 연애 때와 다르듯이, 아이를 낳고 나서도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또 볼 수 있고 나 또한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부부로서 다 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혼도 선택, 아이도 선택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에 너무 꼰대처럼 "결혼해야지."라는 말 보다, 왜 결혼하는 게 좋은지를, 내 의견을 한번 써 보고 싶었다. 다들 이유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여러 서사의 과정을 거쳤고, 거기서 고쳐나갔기 때문에 나의 결혼 생활이 충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마흔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