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아날로그 경험은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라고 확신한 순간.
한국에서 나는 신문을 정기적으로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생계를 위해서 잠시 신문 배달을 할 때, 남은 신문 한 부 가져가도 된다는 말에 가져와서 잠시 들춰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신문을 사서 읽어본 적은 없다.
그건 일본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정보는 인터넷과 지인 찬스를 썼고, 사회적인 뉴스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 뉴스를 골라서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현재는 내가 신문을 구독해서 읽고 있다.
어른 신문이 아닌, 어린이 신문을 1주일에 한번 정기적으로 배송시켜서 받고 있다.
활자를 좋아하는 일본은 그래도 아직까지 신문의 인기가 대단하다.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각 신문사에서는 어린이 신문도 내고 있다.
여러 신문사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건 요미우리에서 나오는 요미우리 코도모(어린이) 신문이다.
한자의 읽는 법인 요미카타(読み方)가 한자 옆에 혹은 한자의 위에 붙어서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하기에도 좋고, 사회 뉴스를 어린이의 시선에 맞게 풀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아주 좋다.
1학년 생이 된 첫째 아이를 위함도 있지만, 이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전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본인들과 어울려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글을 더 쓰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현재는 일을 그만뒀다. 현재는 등하교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다.
말하는 시간도 줄었지만, 문서를 읽는 시간도 줄었다.
회사에서 일본어로 쓰던 문서들, 확인하던 문서들. 그런 것들이 나의 일본어 실력 유지를 시켜줬던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나의 일본어가 다른 일본인 엄마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또 우리 가족은 일본어가 메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로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나마 우리 가족 중에 일본어로 말하는 기회가 많은 내가 일본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 책이나 드라마를 보는 일도 좋지만, 사회적인 뉴스를 봐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특히나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현재 없기에 좋아하는 뉴스만 인터넷으로 골라보고 있다. 인생은 달기도 쓰기도 하기에, 여러 뉴스를 접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되기도 했다.
1학년 생인 큰 아들은 사실 아직까지는 신문 보기에 별 관심이 없다. 아주 작은 코너로 나오는 영어 한 문장, 특집으로 나오는 코난 만화를 보기 위해서 나와 같이 볼 때가 있기는 하다.
언제나처럼 아이와 함께 신문을 보다가 금세 질려서 닌텐도로 손이 가는 아들 뒤로 혼자서 다른 기사를 읽고 있었던 어제 주말 낮.
'이혼'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이혼 후 자녀 양육에 대한 '친권'에 대한 법률이 126년 만에 바뀐다는 기사였다.
보통은 엄마 혹은 아빠 어느 한쪽이 친권을 가져갔던 법률이 '공동친권'이라는 이름으로의 행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는 흥미로운 타이틀이었기에 첫 줄부터 천천히 읽어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첫 줄이 아주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혼'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일본에는 매해 16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이혼하는 가정이 매해 16만 명 이상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을, 아이가 보는 신문이라서 그런 걸까.
'16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표현해 줬다.
이 글을 쓴 기자는 그 기사를 쓰면서 얼마나 많은 퇴고를 했을까. 그리고 이 첫 문장은 그저 바로 나온 것일까?
요새 전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진 나는, 독자의 시선에 맞춰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꽤 관심이 많기에 이런 표현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냥 쉽게 한마디 내뱉을 수 있는 일도,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표현법이 달라진다는 것을 신문을 보고 터득하게 될 줄이야.
AI와 자동화로 급변하는 요즘에, 아날로그틱한 삶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구나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아날로그의 나라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기사를 다 읽기 전에 둘째 아이가 낮잠에서 깨면서 글을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오늘 집에 가서 다시 천천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