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도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기억 속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고마움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고 그것들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AI는 그렇지 않다. 샘 올트먼은 ChatGPT에게 제발 그만 고마워하라고 하더라. 그 시간과 전력이 아깝다고.
하지만 인간은 여러 번 고마워하고, 여러 번 미안해하고 싶어 한다. 여러 번 감사의 마음을 받고 싶어 하고,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표현하고 싶어 한다.
40살 넘게 인생을 살아보니,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린 시절에 어떤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잘못된 것이고, 좋은 것인지 잘 모르던 시절에 올바른 방향으로 날 이끌어준 몇 명의 한마디, 웃음, 도움의 손길이 지금의 내가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해 표현해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나의 어린 시절을 좋은 길로 안내해 주던 몇 명의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나는 꽤 선생님 운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9번의 전학, 중학교 때는 전학하고 싶지 않아서 멀리 이사 가서도 구리시에서 의정부까지 전철을 타고 통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도 어쩔 수 없이 1번 전학을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정말 여러 선생님을 경험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기록부를 보는 선생님들이다 보니, 전학을 많이 하는 나를 잘 챙겨주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다른 집처럼 참고서를 살 가정 형편이 안돼서, 선생님이 무료로 받으시는 교사용 참고서를 애들 몰래 챙겨주신 선생님도 계셨다.
급 성장기 때인 중학생 시절, 자주 아파서 양호실을 자주 갔는데 그때의 양호선생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고마운 일이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면 멀미가 심해서 토하느라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솔의 눈'을 나에게 내밀어 주셨다. 아마도 어떤 아이의 부모님에게 받은 거일 텐데, 자신이 마시기 싫어서 나에게 줬을 수도 있지만, 토하느라 힘들었던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음료수이다.
잠시 혼자 사는 시기가 있었던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은 혼자서 밥을 잘 안 먹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저녁에 나를 불러서 돼지갈비를 사주셨다. 그리고 2만 원을 용돈으로 주시기도 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그걸 업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의 학교 급식 먹을 돈이 필요했던 순간도 있다. 그래서 쓰는 걸 멈추는 순간도 있었다. 잘 쓰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잘 쓰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지.'
누군가가 이렇게 메모해 준 것도, 고등학교 때의 문예반 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한다.
사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정말 많이 있다.
그중에서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지금 쓰고 싶어 졌던 건, 얼마 전 한국의 뉴스에서 더 이상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수학여행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 학교 운동장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뉴스 등등을 연달아 봤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민원 때문에, 어떠한 사망 사고로 인해서 교사들이 책임을 떠안게 돼서 라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현재의 학교 상태를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타지에서 한국의 뉴스를 보는 나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좋은 마음으로 교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주 나쁜 마음으로 교사라는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그만두기도 한다.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내가 학부모가 되어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도 실제로 아이가 다니던 보육원(어린이집) 선생님들, 현재 학교에 가고 있는 첫째 아이의 선생님들만 봐도 그렇다. 나와 남편은 감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떤 엄마들은 꼬투리를 잡기도 했다. 이건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문제는 일본에서도 꽤 문제화되고 있다.
나 자신이 아주 좋은 선생님들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성장했기에
나의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뉴스와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면 누가 교사를 하고 싶겠는가.
누가 당신의 아이를 봐줄 수 있겠는가.
선생님을 향한 부모님들의 태도를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건 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배운 것들이 아니었던가.
내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왜 당연하지 않게 된 걸까.
나이가 들면 왜 눈물이 많아지는 걸까.
그저 고마움을 표현하는 글을 썼을 뿐인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 넘쳐서일까, 그리움일까.
자꾸 눈물이 난다.
지금이야 AI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뭐든지 물어보면 정답이 나오기 쉬운 시대이다.
하지만, AI에게 과거 선생님처럼 깊은 감동을 받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시대가 오긴 할까?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처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이 생각이 나 뿐만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