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은 마른 손을 비비며 서둘러 방의 불을 켰다. 밥상 다리를 편 후 문 앞에 놓인 롤케이크를 들고 와 올렸다. 서랍을 뒤져 초 몇 개를 찾아내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혼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한 뒤 촛불을 껐다. 접시를 다섯 개 꺼내와 상 위에 둘러놓았다.
핸드폰 소리에 세정은 반가운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우였다. 그는 계절이 바뀌거나, 그녀의 생일 때마다 연락하곤 했는데, 매번 다른 얘기는 없었다. 인우는 어떤지, 두정은 연락이 됐는지가 통화의 전부였다.
1분 남짓한 통화에 정작 세정은 어떤지 묻지 않았다. 그러나 세정은 이제 안부를 묻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정은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학원 선생님의 소개로 취직한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취직한 후에는 선구의 집에서 나와, 지우가 가져온 돈으로 회사 근처에 방을 얻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생겼고, 음식을 살 수 있었다. 사귀자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몇 달 사귀다 그만두거나, 누군가의 신고로 만신창이가 된 채 헤어지고는 했다.
세정은 지우에게 다른 남자는 지겨우니 같이 살자는 말을, 장난스럽게 건네면서 진심으로 받아주기를 바랐다. 그 말에 지우는 꼬맹이가 별소리를 다 한다고 했다. 그는 전화 한 번에 몇 년을 거스르는지 점점 세정을 어린 시절 동생 대하듯 했다.
지난여름, 지우는 사는 게 지겹다고, 빨리 죽고 싶다고 했다. 그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 세정은 정말 그가 죽어버릴까 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겠다더니 뱃일을 따라나섰고,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다리는 파도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결국 탈이 낫고, 오랫동안 염증으로 시달려야 했다.
세정은 틈날 때마다 노숙인 쉼터에 전화했다. 두정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 오면 주말마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느 날 뉴스를 통해 마리아의 집이 입소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외부 행사를 통해 불법 이익을 취했다는 것, 회개를 강요하고 간증 영상을 찍게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고, 세정은 두정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곳에도 가보았지만,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세정은, 두정을 그냥 놓을 수 없었다.
세정은 직원들이 놓고 간 영수증을 컴퓨터에 입력하다 예년과 다르게 따뜻한 봄 날씨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의자 뒤에 걸쳤다. 다음에 지우에게 연락이 오면 같이 꽃놀이를 가자고 할 참이었다.
어디에 있을까.
그 다리로 어디를 헤매고 다니고 있는 걸까.
다 쓴 풀을 휴지통에 버리고, 문구용품을 둔 서랍장에서 새 풀을 꺼냈다. 맨 아래 서랍에서 이면지 몇 장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창문을 열고 몸을 구부려 지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곧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식당가를 향해 우르르 걸어가고 있었다.
세정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냈다. 지우였다. 지우는 핸드폰이 없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전화하곤 했다. 지역번호를 보니, 경기도 쪽이었다.
“오빠, 이번엔 또 어디야? 점심은 먹었어?”
세정은 지우가 지난번처럼 빨리 끊을지도 몰라서 우선 하고 싶은 말부터 먼저 쏟아냈다.
“여보세요? 여기, 안신병원 응급실입니다. 환자분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네?”
“남자분이 길에서 쓰러져서 119에 실려 왔는데요, 바지 주머니에 전화받으신 분 연락처가 있더라고요. 소지품이 하나도 없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인상착의가…….”
“저! 괜찮은가요? 다쳤어요?”
“혹시 관계가 …….”
“우리 오빠예요, 괜찮아요? 빈혈 같은 건가요?”
“죄송합니다만…… 사망하셨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 빨리 이 쪽으로 와주…….”
“강부식 씨 시신과 함께 노트가 여러 권 나왔는데요.”
형사가 서류철에서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한 장씩 내려놓았다. 김장용 봉투에 꽁꽁 싸맨 어떤 것이 찍혀 있었고, 그다음 사진은 표지에 연도가 적힌 노트가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사진이었다.
“이 노트, 알아보겠어요?”
형사는 그 사진 속의 물건을 세정이 분명 알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세정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세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펼쳐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걸 누가 묻었는데요?”
“조사 중입니다. 확인된 바로는, 노트만 나중에 따로 묻은 것 같아요. 한 번 더 판 흔적이 있더라고요.”
세정의 눈 아래는 금세 그늘졌다. 전소된 집, 2층 방에서 발견된 성별도 확인할 수 없게 타버린 시신. 화재 조사를 하던 중 마당에서 나무 팻말을 발견했고, 거기엔 크레파스로 쓴 ‘최한정’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팻말 아래에서, 한 구의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고, 팻말
에 꽂혀있던, 초록색 종이로 접은 꽃잎을 펼치니 집의 도면으로 보이는 그림과 편지가 나왔다.
지하실로 표시된 곳에 그려진 네모난 방. 그 안에 웃고 있는, 네잎클로버 다섯 송이.
나의 아이들.
언제나 태연하게 안아주어서 고마웠어.
세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의아한 눈빛으로 세정을 보던 형사가 사진을 가져가 자신의 앞에 두었다.
“형사님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알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아프다면요, 굳이 해야 할까요?”
형사는 볼펜 위를 딸깍 소리가 나게 누른 후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사진 몇 장을 더 꺼냈다.
“이 사진들도 봐주실래요?”
세정이 사진을 들어 올리고 보는 동안, 형사는 의자를 당겨 앉더니 노트북의 터치패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서서히 움직이는 손가락, 두드리는 소리, 파일이 열리는 소리.
“남은 흔적만 보면요, 이야기하려는 건지, 묻으려는 건지 알 수 없죠. 그런데 저는 강세정 씨만 그 이야기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없는 사람한테도 이야기는 있는 거죠.”
세정은 자신이 울고 있는지 몰랐다. 형사가 나가서 휴지를 가져오고 바로 앞에 내밀 때까지도 몰랐다.
그녀는 책상 위로 쓰러졌다. 그 울부짖음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진을 꽉 쥔 세정의 손과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하얗게 질린 손등을 보다 형사는 다른 사진을 들어 올려 물끄러미 보았다.
안매화의 몸 위에 하얗게 뿌려진 것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신이 지니고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조각과 거기에 적힌 이름들을 보며 알았다. 찾아야 할 사람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세정은 새벽에 경찰서를 나오면서 뻐근한 손목을 다른 손으로 붙잡았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손목을 돌려 보았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자 명함 끝부분이 닿았다. 그녀는 형사의 명함을 손에 쥐었다. 아직은 겨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낯선 전화로 시작한 하루는 두꺼운 외투 없이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경찰서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손이 시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집에 들어가기 전 어묵이라도 포장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창에 손가락을 올리자, 세정의 손 위로 아이들의 손이 차례대로 포개어졌다.
추운 날,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입술을 내밀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었고, 장난처럼 서로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거나, 큰 인심 쓴다며 티셔츠를 들어 올리고 등
에 손대는 걸 허락한다며 호기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서로가 가진 온기를 다 쓸 때까지 등을 빌려주었다.
세정은 코트를 벗어 몸을 덮은 후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아직은, 더 가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골목에서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게 되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보기만 해도 지저분한 삶을, 스스로 씻어내지 못하고 점점 더 웅크리기만 했다.
그래서 각자 이런 마지막을 맞았더라도 우리는 비참해할 수 없었다.
(완)
안갯속의(김지우)
떠밀려 갔다가, 멈췄다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물소리가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
그 냄새에 취했다가
초록 잎에 눈이 부셨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흑백
무섭게 울어대다가
무겁게 가라앉다가
비릿한 것들이 밀려왔다가 안개와 함께 사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