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터올 때쯤, 부식은 자신은 원하지 않았을 곳에 묻혔다. 인우는 뭐가 즐거운지 낄낄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매화를 보았다. 그녀는 흙바닥을 툭툭 치더니, 볼이 파이게, 담배를 빨아들인 후 연기를 그에게 뱉었다.
그녀와 인우는 서로 다른 곳을 보며, 해방되었음을 자축했다. 부식이 죽은 다음 날, 매화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더니 오후 늦게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옷과 가방을 얼마나 산 건지 쇼핑백이 끝도 없이 들어왔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부식이 아끼던 양주를 꺼내더니 자고 있던 인우를 끌고 올라와 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마시라고 내밀었다.
“축하주는 혼자 마시면 외롭거든.”
인우는 술을 입안에 넣고 둥글리고 있다가, 몰래 뱉었다. 매화는 빈 병을 도미노 하듯 세워놓더니 기다란 손톱으로 톡톡 넘어뜨릴 듯 건드렸다.
“너, 강세정이 어디 갔는지 알지, 응? 걔 어디 갔어? 어떻게든 찾으려면 찾을 수 있어. …… 돈이면 못할 게 뭐야.”
“찾으면요?”
“데려와야지.”
“데려와서요?”
“다시는 그런 행동 못 하게 해 줘야지.”
인우는 세정의 등을 밀어줄 때마다 상처 때문에 움찔거리는 그 작은 몸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오면 하겠다는 매화의 훈육은 이번에도 같은 것이었다.
교무실 안, 괘종시계 옆에 있다는 전신 거울이 제일 무섭다던 세정은,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두정을 붙들고 물었다. ‘언니, 나 아줌마랑 닮았어? 많이 닮았어?’ 두정은 아니라고 답하며 세정을 안아주고는 인우를 바라보았다.
부식이 죽고 그녀의 밥상에 술이 올라오지 않는 날은 없었다. 그녀가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손님이 찾아와도 알지 못했다. 인우가 그들에게 다시 오지 말라는 말을 해도 아무도 토 달지 않았다. 밥 대신 술만 마시는 날이 늘자,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거나, 부엌 찬장의 그릇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는 했다. 지우가 있는 방을 그녀의 허락 없이 열어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끝나, 곧 끝나.”
지우의 마른 몸을 닦고, 다친 다리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인우는 다음을 준비했다. 지우가 떠난 날 부식이 묻힌 땅을 파고 비닐봉지에 그의 보물이었던 노트를 꽁꽁 싼 다음 다시 묻었다. 인우는 매일매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또 다른 이가 묻힐 곳에 삽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들이 이곳에서 느낀 희열이 조금씩 타오르면, 마침내 원하던 것들을 모두 손에 얻는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인우는 세정과 약속한 장소에 여러 장의 메모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세정의 근황과 지우가 부산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두정이 있는 곳을 알지만,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는 게 마지막 소식이었다. 인우는 종이들을 모아 자르기 시작했다.
인우에게는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었다. 매일 아침, 한정이 있는 곳에 앉아 두정을 찾겠노라고 약속했었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위로 시큰거리는 코를 두 손에 가두고 따뜻한 숨을 모은 다음, 땅바닥에 대고 말했다.
“내일 두정이가 있다는 곳에 갈 거야. 내가 꼭 데려올게.”
밤 사이 첫눈이 내렸고, 아침이 되자 골목길은 얼어 미끄러웠다. 인우는 발바닥에 잔뜩 힘은 준 채로 조심해서 걷기 시작했다. 택시에 올라타 목적지를 적은 종이를 건넸다.
“요금 좀 나올 거예요.”
“괜찮습니다.”
택시는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큼 멀어진 건지도 몰랐다. 창문에 붙어있던 언 눈이 녹는 것을 끈질기게 지켜보며, 인우는 뒤를 돌아 멀어지는 곳을 눈에 담았다. 어떤 도시의 한적한 길로 빠져 한참을 또 달리자 이정표가 나왔다. 5분 정도를 더 달려 택시는 마리아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인우는 미터기를 확인하고 돈을 건넸다. 그녀는 기사가 건네는 잔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후 가방을 끌어안고 차문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택시가 후진해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리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최두정이라고, 여기에 있다고 들었어요.”
여자는 한참을 인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인우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묻고자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의아한 정도였다. 그녀는 한걸음 물러서더니 입구 쪽으로 손바닥을 폈다.
“요안나 원장님을 만나셔야 할 것 같네요.”
“원장님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솔란지아 아니 최두정 씨는 여기 없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는데요?”
“병원에 보냈는데,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는 몸을 돌려 앞서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 왜요? 어디가 아팠어요?...... 찾아봤어요? 신고했어요?”
“저기요. 그렇게 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 어쨌든 원장님 먼저 만나 보세요. 마침 계시니까요.”
아직 앳되보이는 얼굴의 여자들이 배를 감싸 안고 기도실에서 나왔다. 몇 명이 차례로 나온 뒤 수 십 명쯤 되는 여자들이 차례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손에는 각자의 것을 표시하 듯 이름을 세긴 성경책을 안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소리 내지 않고 복도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정도 부른 배를 안고 성경책을 들고 저 여자들과 같이 계단을 올랐을까. 모두 같은 회색 원피스를 입고, 흰색의 양말과 실내화를 신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그녀가 마른기침을 하며 그만 보라는 듯 인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원장실은 한 층 더 올라야 했다. 인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한 공간이 그 집의 지하실의 분위기와 같음을 느꼈다.
“원장님, 세실리아입니다.”
그녀는 인우를 복도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인우는 가까이 다가가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정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원장이라는 여자는 무슨 사이냐고 물었고 침묵이 이어졌다. 발소리가 들리자 인우는 급히 몸을 돌려 창문 쪽을 보았다.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원장실은 건물의 분위기보다 따뜻하게 꾸며져 있었다. 누군가 선물한 듯한 그림과 누군가의 글들로 한쪽 벽을 채웠고, 책장 위에는 입소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을 배치해 두었다.
“앉으세요. 솔란지아와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일까요? 저도 무턱대고 정보를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두정이 언니의 친구예요.”
“언니의 친구. 언니가 있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죽었어요.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아...... 안 됐네요. 그래서, 언니의 친구분은 그 애를 왜 찾으시는 걸까요?"
“이제 데려가려고요.”
“안타깝지만, 저희도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사라졌거든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청가원에서도 물의를 일으켜서 우리가 잠시 보호하기로 했던 건데, 뭐, 여기서 몇 달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아기는요?”
“...... 아기가 사산됐어요. 그 일로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우리도 돌본다고 돌봤지만…… 요양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아 요양 병원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거기서 사라졌다고 연락을 받은 거죠.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산했다고요?”
“네. 아무나 붙잡고 내 아이를 훔쳐간 게 아니냐고 해대는 통에 다들 불안해했죠.”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정을 만나 그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믿어서도 안 됐다. 누구도 이렇게까지 해서는 안 됐다. 인우는 두정을 내보내기 위해 지우와 세정까지 감내해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인우는 무릎에 올린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알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병원이 어디죠.”
인우는 병원 이름이 적힌 쪽지를 챙겨 일어났다.
“그런데, 이런 말씀 참 어렵긴 한데요. 저희도 일정 부분은 지원할 수 있었지만, 후원받아 근근이 꾸려가고 있는 곳이라...... 병원비 정산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원장은 인우의 답을 기다리다, 붉어진 얼굴로 양 손바닥을 보이며 괜찮다고, 무시해 달라고 했다. 인우는 들고 있던 쪽지를 내밀었다.
“금액이랑 계좌번호 적어 주세요.”
인우는 여전히 밖에 서 있는 여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프로그램실이라고 적힌 곳에 또 몇 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바구니를 옆구리에 꼈는데 뜨개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두정이도 저런 거 만들었나요?”
“아, 네. 손재주가 좋았어요. 지금까지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여러 번 말했었죠.”
“그랬군요.”
“아이만 그렇게 안 됐어도......”
인우는 쪽지에 적힌 곳으로 찾아갔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울부짖는 곳에서 인우의 질문에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두정이 두고 갔다는 소지품만 인우의 손에 들렸다. 뜨개 인형과 도자기 컵, 공책 한 권이 다였다. 컵의 아래쪽에 자신을 이름을 새겨 넣고, 동그라미 다섯 개를 그려 넣었다.
인우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리웠구나. 그런데 잡을 수 없었구나. 손 끝으로 동그라미들을 매만졌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저 동그라미.
얼굴 없는 아이들은 여기에도 있었구나.
때가 되어, 인우는 지하실 옷장에 넣어둔 종이 조각들을 모아둔 봉지를 가지고 2층으로 올라왔다. 비닐을 깔고 굳어버린 매화를 온 힘을 주어 굴렸다. 그녀의 주머니에 조각한 줌을 넣었다. 입을 벌린 후 또 한 줌 넣었다. 두 손에도 쑤셔 넣었다. 비닐을 덮고 긴 끈을 두른 다음, 아래로 끌고 내려왔다.
매화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 누가 돈을 훔쳐 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세정을 향한 분노를 거두어도, 어디에서 또 다른 아이들을 찾을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들은 타인의 생을 갉아먹던 탐욕을 내려놓아도 된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잃는 것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인우는 남아있던 조각들을 마저 뿌리고 흙을 덮기 시작했다.
그녀는 2층 방으로 올라와 지우가 동그맣게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던 곳에 똑같이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지우야. 난 죽을 때까지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떠나보내고 나니 알겠어. 춥지 않아. 두렵지도 않아. 내가 살고 싶었던 생을 너희들에게 모두 보내. 받아서 즐겁게 써 줘. 그럴 수 없게 웃고, 기억 때문에 울지 마."
인우는 두정의 공책 마지막 장에서 떼어낸 시를 옆에 두고 바라보았다.
나는 고요를 바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바랐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훔쳐 달아나는 사람에게
내 것을 잃어버린 것 마냥 악을 써야 하는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접고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을
내 몸을 팔아도 생기지 않을 귀한 것을
억지로 탐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런 하루
움직이기는 하나 어떤 의미도 없는
흘러가나 붙잡지 않아도 되는 하루
해는 푸르게 지고,
해는 노랗게 솟고 강은 노랗게 물들고 강은 은색빛 찬란하고
내 발은 푸른 해에 물들어 예쁘고
내 볼은 노랗게 물들어 막 태어난 아이 같은
누구의 손을 잡지 않아도 되는 하루
누구의 얼굴도 그립지 않은 하루
가지에 앉은 새가 떨어뜨린 잎에 크게 물결이 친다 해도
나는 고요하기를
나는 그것만을 바랐다
고요를 바랐다
인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보이지 않았겠지만, 제 마음을 모두 주었다. 몸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