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프롤로그

by 제인

선의역은 1, 2, 4호선의 환승역이라 온종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역이었다. 2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은 화장실로 가는 방향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가다 서며 힐끔거렸다. 여자는 연신 중얼거리며 오래 빨지 않아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인 교복 치마 아래 손을 집어넣고 사타구니를 긁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혀를 차며 지나갔고 어떤 남자는 ‘미치려면 곱게 미치지’라고 했다. 선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가방 안에 있던 물티슈를 건넸다. ‘맨손으로 그러지 말아요. 이거 가지고 화장실 가서 닦아요’ 치마 속에서 두꺼운 손이 밖으로 나왔다. 학생은 물티슈를 받아 드는 피 묻은 손과 핏물이 든 손톱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치다 곧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여자는 물티슈를 한 장씩 뽑아 자신의 주변에 둘러놓았다. ‘좋은 냄새가 나. 좋은 냄새가 나’ 여자의 손은 다시 치마로 들어갔다. 여성 노숙인 쉼터 소장인 이경숙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는 세정의 어깨를 쥐었다가 놓았다.


“알아보겠어요?”

“네, 언니 맞아요.”


세정은 여자의 교복 치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보았던, 마음에 선명하게 남은 그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경숙이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자는 펼쳐둔 물티슈를 접고 있었다. 몇 번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피와 검은 때로 시커메진 물티슈는 여자의 허벅지에 한 장씩 올려지고 있었다. 쉼터에서 나눠준 담요는 펴보지도 않았는지 새것 그대로였다.


“두정 씨, 나 누군지 알겠어요?”

“이경숙 소장님요.”

“두정 씨, 여기 추운데 우리 오늘은 센터에 가서 하루 잘 까요?”

“싫어요. 안 가요.”

“두정 씨 좋아하는 핫초코도 잔뜩 사놨는데. 센터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해놨어요. 선물도 같이 뜯어보고요.”


여자가 말이 없자, 이경숙은 세정을 돌아보았다. 세정이 여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두정 씨, 동생 세정이 기억나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여자는 갑자기 담요를 끌어안더니 곧 입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경숙은 그녀의 반응에 당황해 세정을 보았다.


“홍매, 백매는 죽었다! 죽었다! 한정이, 두정이는 죽었다!”


세정은 눈을 감았다. 한정이 죽던 날을 떠올렸다. 땅속에 그녀를 묻었던 날, 검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순간, 다 빠져나가고 영혼만이 남은 듯 가벼웠던 몸과 흙의 냄새, 그림자마저 무서웠던 나무에 등을 대고 끝도 없이 토닥였던 한정의 쉴 곳. 홍매와 백매. 두정은 왜 아직도 그 이름들을 잊지 못하고 이 순간에 내뱉는 걸까. 세정은 이경숙의 어깨를 보며 천천히 발을 뗐다.


“지우 오빠가 죽었어.”


여자는 자신을 다독이던 이경숙을 밀어 넘어뜨리고 세정에게 달려들었다. 검어져 희뿌연 얼굴을 하고, 그래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세정의 두 팔을 끌어당겨 주저앉혔다.


“…… 아무도, 아무도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어.”


여자는 시선을 어디에 둘 지 몰라 헤맸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긴 해? 우리를…… 기억하고 있어?”


여자의 두 손이 세정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세정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세정은 속삭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매화의 아이들은… 결국 다 죽어. 손에 낀 피딱지만도 못하게 살다가 다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