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말해지지 않은 첫사랑들
그 애를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선명해.
이 문장은 참 이상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좀처럼 낡지 않는다.
첫사랑 이야기는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마치 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 마주한 순간 하나면
충분하다는 듯이.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은 생각보다
조금 더 번거로운 일이다.
어느 날의 공기,
괜히 오래 남는 표정,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던 침묵까지.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걸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몇 개의 장면만 골라
오래 붙잡고 산다.
그래서 첫사랑은
기억의 형태로 남는다.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 내가 바라보던 얼굴로.
시간이 흘러도
그 기억은 좀처럼 수정되지 않는다.
자라지도 않고,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속 한 자리에
꽤 오래 앉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첫사랑을
참 열심히 말한다.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얼마나 좋아했는지,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는
의외로 술술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 사람은 그 시절
어떤 하루를 살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을 참고 있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대부분 공백으로 남는다.
그래서 첫사랑은
기억하는 사람의 서사로만 완성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은
하나의 장면처럼 굳어버린다.
첫사랑이 오래 남는 이유는
사랑이 대단해서라기보다,
이야기가 끝내 한쪽으로만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첫사랑의 얼굴들이 어딘가 닮아 보인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소나기〉의 소녀는 끝내 이름을 얻지 못한다.
이름이 없다는 건 존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더 쉽게 상징이 된다는 뜻에 가깝다.
그녀는 분명 웃었고, 걸었고, 비를 맞았고, 사랑했고,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말해지기보다, ‘소년의 첫사랑’이라는 자리에 멈춰 선다.
이름이 없기에 그 소녀는 누구의 기억 속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더 오래 ‘첫사랑의 얼굴’로 남는다.
죽음은 그 상징을 완성해 버린다.
사라졌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감정을 대신 떠안는다.
그래서 〈소나기〉의 소녀는 한 사람의 삶이라기보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형태로 기억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같은 자리에 선다.
15년 만의 재회는 사랑을 되돌리기보다, 기억이 얼마나 단단하게 굳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시간을 저장해 왔다.
서연에게는 지나간 한 시절이었고, 승민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첫사랑의 형태였다.
그래서 그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감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억의 방향이 이미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클래식〉의 사랑은 더 조용한 방식으로 첫사랑의 얼굴을 반복한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시간 속에 곱게 봉인된 이야기.
하지만 그 고요함만큼 상대의 삶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이르면, 첫사랑은 조금 다른 얼굴을 갖는다.
그녀는 예측할 수 없고, 엉뚱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삶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의 서사’다.
그녀의 상처와 선택은 이해되기보다 사랑의 이유로 소비되고, 그 인물은 점점 첫사랑의 기묘한 이미지로 굳어 간다.
강렬하지만, 여전히 한쪽에서만 기억되는 얼굴이다.
<라라랜드〉에 이르면 첫사랑은 더 이상 영원한 약속이 아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보다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우리는 그 결말을 현실적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쉽게 놓지 못한다.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여지’가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의 첫사랑도 다르지 않다.
도라 마르는 오랫동안 피카소의 연인, 뮤즈로만 기억되어 왔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시선과 언어를 가진 사진가이자 화가였다.
사랑의 서사는 그녀의 이름을 남겼지만, 그녀의 삶은 그 서사 안에서 점점 단순해졌다.
카미유 클로델 역시 마찬가지다.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더 자주 불리지만, 그 이전에 독립적인 조각가였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억은 종종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해 버린다.
그 결과 카미유 클로델은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도라 마르는 ‘천재의 뮤즈’로 굳어졌다.
이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건 하나다.
첫사랑은 대개 한 사람의 기억을 중심으로 정리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은 점점 하나의 얼굴,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되어 간다는 것.
〈발칙한 첫사랑: 첫사랑의 반격〉은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이런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려 한다.
혹시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기억을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첫사랑은
가장 완성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처음 연습하던 시간에 가깝다.
서툴렀고, 어려웠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엔 아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긋났고,
그래서 말해지지 못한 마음들이
오래 남았다.
이 책은
첫사랑을 부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 속에 멈춰 있던 얼굴을 다시 ‘사람’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환상으로 남아 있던 장면을
이해의 자리로 옮기고,
한쪽만 말하던 사랑에
다른 방향의 질문을 더해 본다.
그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사랑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첫사랑을 다시 바라볼 시간이다.
첫사랑의 자리에서
우리는 조금 이동해 보려 한다.
기억만 남아 있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던 자리로.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나를
조심스럽게 데려와 보려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첫사랑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첫사랑을 다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 어긋났을 때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어”라고 말하죠.
어떤 날은
“내가 부족했나 봐” 하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많은 사랑의 문제는
누군가의 성격이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사랑을 다루는 방식,
관계가 놓여 있던 구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자주
오해에서 출발하고,
말이 닿지 않는 사이에서
조금씩 어긋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사랑의 역사가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는
아주 긴 연습 과정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이야기가 첫사랑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그 사랑이 가장 순수해서라기보다는,
가장 서툴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서툼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지금의 우리의 관계 안에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이 글은
과거의 누군가를 원망하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미 끝난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글도 아닙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어떤 말들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 이해가
지금의 사랑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을
차분히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조금 더 잘 ‘사랑’하고 싶은 분,
관계가 왜 자꾸 어긋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분,
헤어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때의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분에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사랑은
이미 지나가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
처음으로 남겨진 흔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첫사랑을 정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다시 시작해 보자는
조용한 제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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