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첫사랑:첫사랑의 반격

7장. 당신의 첫사랑은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by 유혜성

PART 4. 심리학·철학으로 다시 읽는 첫사랑


7장. 당신의 첫사랑은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기억은 어떻게 사람을 이미지로 만드는가


이상하지 않나.


우리가 첫사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부분 대화가 아니라, 장면이다.


누군가는 웃고 있고,

누군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고,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설명은 없다.

해명도 없다.

왜 그랬는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한 장면만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 위에

말을 덧붙인다.


“그날 비가 왔지.”

“괜히 더 슬퍼 보였어.”

“말을 안 했던 게 더 오래 남아.”


신기하게도

첫사랑은 늘 이렇게 기억된다.

마치

원래부터 말이 없던 사람처럼.


왜일까.


첫사랑의 대상은

정말 처음부터 말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 사람의 말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걸까.

1. 첫사랑은 왜 늘 ‘장면’으로 남는가


조금만 더 떠올려보자.


소설과 영화 속 첫사랑은

이상할 만큼 서로 닮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말이 아니라 풍경이다.


예를 들면,

소나기 속 소녀.


비 오는 날,

말없이 서 있던 아이.

젖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

분홍빛 스웨터,

남색 치맛자락.


그 소녀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왜 갑자기 사라져야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아이를

‘병든 아이’로 기억하지 않는다.


비 속에 서 있던

첫사랑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보다

말하지 않았던 장면이

훨씬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나기의 첫사랑은

대사가 아니라

비의 온도와

색감과

침묵으로 남는다.


<건축학개론>의 서연도 그렇다.


우리는 그녀의 선택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왜 떠났는지,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설명이 아니다.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

니트 스웨터,

조금 떨어진 거리,

말을 건네지 못한 순간.


서연은

왜 그렇게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신

그날의 공기와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 붙잡고 있을 뿐이다.


설명보다

거리감이 남고,

대화보다

뒷모습이 기억된다.

<러브레터>도 마찬가지다.


도서관,

교복,

조용한 시선,

눈,

이름.


“오겡끼데스까.”


이 문장은

대사라기보다

풍경처럼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눈 덮인 풍경과

바람 소리와

목소리의 떨림이 먼저 떠오른다.


왜 그 이름을 불렀는지,

왜 그 사람을 그렇게 오래 기억했는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침묵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클래식>은

이 구조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가 쏟아지고,

달리고,

젖고,

편지가 오간다.


이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유보다 감각으로 남는다.


왜 사랑했는지보다

어떻게 떨렸는지가 기억되고,

무엇을 선택했는지보다

어느 순간 숨이 막혔는지가 남는다.


그래서 클래식의 첫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서정으로 저장된다.

<엽기적인 그녀>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사정에 놓여 있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처음부터 알고 영화를 보지 않는다.


대신

기이하고,

웃기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먼저 마음에 박힌다.


맥락보다 표정이 남고,

이유보다 행동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는

자꾸 웃다가,

당황했다가,

어딘가 불편해진 채로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영화가 한참 흘러간 뒤에야

비로소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

저건 설명되지 못한 광기가 아니라

어쩌면

그 사람이 세상과 버티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라라랜드>는

조금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식으로 남는다.


미아는 분명히 말을 한다.

꿈도 말하고,

선택도 말하고,

포기도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사보다

노란 원피스와

춤과

빛과

마지막 눈빛을 먼저 떠올린다.


첫사랑의 기억은

말을 들은 만큼 남지 않는다.


이미지로 편집된 장면만

끝까지 남는다.


그러니까 이건

특정 작품의 문제가 아니다.


첫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저장된다.


대화보다 장면으로,

이해보다 이미지로,

설명보다 분위기로.


그리고 그렇게 저장된 기억 속에서

그 장면의 주인은

어느새 바뀐다.


말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침묵 위에

말을 덧붙이는 나.


그래서 첫사랑은

언제나 침묵 속에 남고,

우리는 그 침묵을

마치 처음부터

그 사람의 성격이었던 것처럼

기억해 버린다.

2. 푸코가 말한 ‘기억의 권력’

-누가 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가


미셸 푸코는

기억이나 기록을

과거를 얌전히 보관해 두는 서랍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기억은

이미 정리된 결과물이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하고 배치한 흔적에 가까웠다.


무엇이 사건이 되고,

무엇이 진실로 남고,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끝내 침묵 속에 머무는가.


이 모든 배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권력이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관점을 떠올린 채

첫사랑을 돌아보면,

우리는 낯설지 않은 장면 앞에 서게 된다.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이렇게 말한다.


“그날 걔가 그렇게 웃었어.”

“걔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그때의 나는 정말 순수했지.”


이 문장들은

사실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사람의 말’은 아니다.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말을 삼켰는지는

이야기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는 건

내가 본 표정,

내가 해석한 침묵,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필요로 했던 의미다.


그래서 첫사랑은 종종

‘그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

내가 나중에 살아가면서

다시 편집해 낸 기억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첫사랑의 기억은

애초부터 중립적일 수 없다.


기억을 말하는 사람은

대개 사랑한 쪽이고,

그 순간의 편집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손에 쥐어진다.


그 결과

첫사랑의 대상은

점점 어떤 존재가 되느냐 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말하게 두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억의 균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때 내가 더 힘들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너는 나를 그렇게 보았지만…”


이런 말들이 끼어드는 순간,

첫사랑은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입을 지운다.


그 침묵 덕분에

첫사랑은

아름답게 정리되고,

간결해지고,

내 성장 서사에 맞는 형태로 남는다.


이 기억의 구조 안에서

권력은 소리 없이 작동한다.


누군가는

계속 말하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균형을

사랑의 성질쯤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질문은

이제 여기로 옮겨진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타인을 이미지로 만들어버리는가.

3. 프로이트와 라캉 -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빛과 스크린을 사랑했다


프로이트의 언어로 말하면

사랑은 종종

내 안에 남아 있던 에너지,

그러니까 리비도가

어떤 대상에 “붙는” 과정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대상이

정말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었느냐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꽤 솔직하다.

우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서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사랑한다.


특히 첫사랑은 더 그렇다.


첫사랑이 유독 완벽해 보이는 이유는

그 사람이 정말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저장해 두는 편이

내가 살아가기에

조금 더 편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래서 첫사랑의 대상은

어느 순간부터

이런 역할을 맡게 된다.

• 내가 순수했던 시절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

•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고 믿고 싶은 기억의 증명

• 아직 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상징


이 역할을 맡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현실의 인간이 아니다.


내가 만든 의미 위에 세워진

하나의 조각상이 된다.


…그리고 조각상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조각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라캉으로 가면

이 구조는 더 날카로워진다.


라캉에게 사랑은

좋은 감정이나 낭만이 아니다.

사랑은

결핍이 만들어낸 구조다.


라캉 식으로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거다.


내가 비어 있는 자리를

저 사람이 채워줄 거라고 믿는 마음.


그래서 첫사랑에서는

상대의 말보다

내 결핍의 모양이

더 크게 들린다.


그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첫사랑의 대상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곤란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말을 시작하는 순간

환상에 균열이 생기고,

내 결핍이 드러나고,

첫사랑은 더 이상

‘첫사랑’이라는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입을

기억 속에서 닫아버린다.


첫사랑이 깨끗하게 남는 이유는

그 사랑이 순수해서가 아니라,

내가 순수한 상태로

보관해 두었기 때문일 때가 많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함께 놓고 보면

첫사랑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첫사랑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기보다,

내가 덧씌운 빛을 사랑한 기억이고,

내 결핍이 만들어낸 스크린을

사람의 얼굴 위에 투사한 사건이다.


그래서 첫사랑의 대상은

아름답게 남고,

말이 없고,

항상 조금 멀리 있다.


그 침묵은

그 사람이 선택한 침묵이 아니라,

내가 유지하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을

사랑의 미덕처럼

오래도록 기억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사랑에서 말할 권리는

언제나 사랑한 쪽에게만 있었을까?

5. 롤랑 바르트 - 사랑은 종종 ‘말하는 자의 독백’으로 굴러간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말의 형식으로 바라본 사람이다.


<사랑의 단상>에서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이렇게 펼쳐 보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끊임없이 말한다.


해석하고,

이름을 붙이고,

되뇌고,

혼자서 수없이 장면을 다시 재생한다.


그에 비해

사랑의 대상은

조용한 자리에 머문다.


눈에 띄게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쪽에 가깝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굴러가는 방식에 가깝다.


바르트가 말하는 사랑의 기본 배치는 이렇다.


사랑에는 늘

말하는 자가 있고,

말해지는 자가 있다.


‘나’는 말하고,

‘너’는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이 된다.


첫사랑에서는

이 구조가 유독 또렷해진다.


우리는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

대개 이렇게 말한다.


“그 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그때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

“아무 말도 안 했던 게 더 아팠어.”


하지만 이 문장들 속에는

그 사람의 말은 거의 없다.


있다면

내가 대신 만들어낸 말뿐이다.


이렇게 말이 쌓이기 시작하면

첫사랑의 대상은

점점 한 사람이라기보다

내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역할에 가까워진다.


그 역할은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않고,

해명하지도 않고,

그저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아름다웠다.

멀어졌다.

사라졌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그래서 첫사랑의 침묵은

종종 이렇게 오해된다.


“말이 없어서 더 순수했던 사랑.”

“설명하지 않아서 더 깊었던 감정.”


하지만 바르트의 시선으로 보면

그 침묵은

아름다움의 증거라기보다

말할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흔적에 가깝다.


첫사랑은

대등한 대화라기보다

한쪽의 말이 길게 이어진 시간에 가까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독백을

사랑이라고 불러왔다.


말하는 쪽은

이야기의 주인이 되고,

말해지는 쪽은

기억 속 이미지로 남는다.


그래서 첫사랑은 늘

잘 말해진 이야기로 남지만,

정작 잘 들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쯤에서

이 책이 붙잡고 싶은 질문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첫사랑의 대상은

왜 늘 조용했을까.


그들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말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침묵 속에 남겨진 첫사랑의 대상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6. 그럼 왜 우리는 ‘입 없는 첫사랑’을 필요로 했을까


심리적 이유 3가지


이쯤 되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첫사랑의 대상은

정말 말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

말할 자리를 남겨두지 않았던 걸까.


첫사랑이 침묵 속에 남는 데에는

대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잔인해서라기보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들이다.


1)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첫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긴 설명보다

짧은 문장만 남는다.


좋았고,

예뻤고,

아팠고,

끝났다.


그 시절의 마음은

복잡한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정과 맥락,

미묘하게 어긋난 감정들까지

끌어안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남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이다.


비 오는 날,

서 있던 모습,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장면 속에서

상대는 조용하다.


침묵이 있어야

세상은 이해 가능한 크기가 되고,

그래야

그때의 나는

그 사랑을 견딜 수 있었다.


2) 환상을 보존하기 위해


첫사랑은

현실의 사람이라기보다

한때의 분위기로 저장된다.


대상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 분위기에는 금이 간다.


“어쩌면 나만 좋아했을지도.”

“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었을지도.”

“나처럼 복잡한 사람이었을지도.”


이런 생각들은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지만,

그 사랑을

우리가 기억해 온 ‘첫사랑의 모습’으로

그대로 두지는 못한다.


첫사랑은

이해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다른 이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사정을 남기지 않고,

설명을 보관하지 않는다.


대신 남기는 건

말이 아니라 감각이다.


해명 대신 뒷모습,

이유 대신 빛,

대화 대신 비.


첫사랑이

유난히 깨끗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사랑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남겨두는 편이

그때의 나에게는

덜 아팠기 때문이다.


3) 관계가 아니라 ‘나의 성장 서사’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첫사랑은

관계의 기록이라기보다

나의 성장 속에 찍힌 한 장면에 가깝다.


처음 설레고,

처음 초라해지고,

처음 상처받고,

처음 어른이 되었다고

믿어버렸던 순간.


그 시절의 첫사랑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나를 대표하는 얼굴로 남는다.


그래서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늘

조금 멀리 서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면

그 장면은 달라졌을 것이다.


내 이야기의 배경처럼 머물러 있던 사람이

자기 삶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을 테니까.


그건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만큼의 복잡함을

아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장면은

말없이 굳어버렸다.


침묵한 첫사랑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말하는 첫사랑을

그 시절의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사람으로 남기보다

사람보다 앞서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장면에

어떤 의미를 씌워두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고 있던 사람은,


나였다.

7. 그래서 ‘뮤즈’와 ‘첫사랑’은 닮았다


도라 마르와 카미유 클로델이 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까지 왔다면

어떤 얼굴들이

서로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앞에서 지나온

첫사랑의 얼굴 위로,

어디선가 이미 본 이름들이

천천히 포개질 것이다.


도라 마르.

카미유 클로델.


도라는 늘

“피카소의 뮤즈”로 불렸고,

카미유는 늘

“로댕의 연인”, “로댕의 제자”로 불렸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이름만으로 불리지 못했던 시간을

오래 지나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충분히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있었고,

선택이 있었고,

자기 삶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도라는

우는 얼굴로 남았고,

카미유는

광기와 고독의 형상으로 남았다.


아름답고,

강렬하고,

그래서 더 침묵한 채로.


이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구조다.


첫사랑이 그렇다.


말하는 쪽은

언제나 이야기를 쥔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만들고,

역사를 정리한다.


말해지는 쪽은

표정과 장면으로 남는다.

이미지가 되고,

상징이 되고,

마침내 ‘설명’이 된다.


그 이미지가

아름다울수록,

침묵은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뮤즈와 첫사랑은

서로를 닮아 있다.


둘 다

사랑받았다고 불리지만,

정작 자기 언어는

남기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첫사랑의 반격‘은

누군가에게 되갚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침묵당한 자리를

다시 열어두는 일이다.


말해지던 사람에게

말할 자리를 돌려주는 것.


첫사랑이었던 사람에게,

뮤즈였던 사람에게,

“그때 당신은 왜 그랬나요?”라고

이제야 묻는 것.


이 책이 하려는 일은

바로 거기까지다.


이미지로 남은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부르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이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



첫사랑은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첫사랑을

이미지로만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말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침묵이 아름다웠던 존재로

편리하게 남겨두지 않기로 한다.


첫사랑은

입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하기로 한다.


그때는 묻지 못했지만,

이제는 묻는다.


그 사람에게도

자기 이야기의 자리가

있었음을.


첫사랑은

완성된 신화가 아니라

뒤늦게라도 다시 불려야 할

하나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 말을 건다.


당신의 첫사랑을

조금 다르게 떠올려보자.


웃고 있던 얼굴 말고,

떠나던 뒷모습 말고,

그 사람이

왜 말하지 않았는지를

처음으로 상상해 보자.


그 순간,

첫사랑은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다.


참고문헌


1.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 지식의 고고학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기억·기록·담론·권력의 관계, “무엇이 말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핵심 개념

• 담론의 질서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3

말할 권리, 침묵, 발화의 배치에 관한 이론적 근거


2.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사랑에 관한 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 책들, 2003

리비도, 대상투사, 사랑의 심리 구조에 대한 고전적 설명

• 정신분석학 입문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임홍빈 옮김, 열린 책들, 2004

무의식, 투사, 사랑과 욕망의 기본 개념 참고


3. 자크 라캉 (Jacques Lacan)

• 에크리

자크 라캉 지음, 권택영 외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9

결핍, 욕망, 대상 a, 사랑의 구조적 정의

• 라캉, 욕망의 혁명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정운 옮김, 새 물결, 2002

라캉 이론을 사랑·욕망 중심으로 풀어낸 해설서


4.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인환 옮김, 동문선, 2004

사랑의 독백 구조, 말하는 자/말해지는 자 개념의 핵심 텍스트

• 텍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언어, 독백, 의미 생성에 대한 보조 이론 참고


5. 예술가·뮤즈 관련 참고 전기

• 카미유 클로델

안느 들베 지음, 김미정 옮김, 마음산책, 2018

카미유 클로델의 생애, 로댕과의 관계, 침묵의 구조

• 도라 마르

브리지트 베나쥬 지음, 박선주 옮김, 을유문화사, 2017

‘피카소의 뮤즈’로 소비된 이미지와 실제 예술가로서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