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안 되는 사랑

4장 결혼했지만 끝내 안전하지 않았던 사랑

by 유혜성

4장

결혼했지만 끝내 안전하지 않았던 사랑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사랑은 왜 반복해서 상처를 선택하는가


그를 사랑해서
나를 버린 게 아니다.
나를 지키려고 했는데
그 방법이
사랑밖에 없었을 뿐이다.
_by유혜성


만약

결혼하려는 사람이

당신을 가장 깊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다면.


그리고 그 일이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면.


그럼에도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끝내 다시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랑을

미련이라고 부를까.

중독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부를까.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 누군가는 그걸

“생각해보면 복잡해지니까”그냥 덮어두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내 가족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건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던 안전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에 가깝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관계는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서로를 파괴했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손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묻게 된다.


이건 왜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까.

이 관계는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이미 사랑의 얼굴을 한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걸까.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 하나.

상대가 무너뜨린 경계 때문에

나 역시 경계를 잃어버렸다면,

그건 타락일까.

아니면 살아 있기 위한 몸부림일까.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은

이 모든 질문을

한 사람의 인생 위에 동시에 올려놓는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가 아니다.

관계가 사람을 붙잡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처가 반복될수록

왜 우리는 더 깊이 끌려 들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건 사랑의 사진이 아니라, 서로를 놓지 못한 두 사람의 증거다.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나는 사람을 위해


프리다 칼로는 왜 사랑을 ‘생존 방식’으로 선택했을까


프리다 칼로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먼저 그림을 기억한다.

짙은 눈썹,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

피와 식물, 꿰맨 몸, 부러진 기둥.


하지만 그녀의 그림보다 먼저 있었던 건

한 인간의 몸이 견뎌야 했던 시간들,

그 몸의 역사였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

열여덟 살에 교통사고.

버스와 전차가 충돌했고,

쇠막대가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척추와 골반, 다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프리다는 평생 수십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침대 위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코르셋과 깁스에 몸을 맡긴 채

잠들었다.

그녀의 몸은 늘 ‘임시 상태’였고,

완치라는 단어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사랑을 했다.

그것도 매우 격렬한 사랑을.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저 몸으로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중요하다.

프리다에게 사랑은 사치가 아니었다.

사랑은 그녀가

자기 몸 안에 계속 머물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망가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라는 선언 같은 그림 <부러진 기둥〉 (1944)


디에고 리베라라는 남자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보다 스무 살 이상 연상이었다.

이미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였고,

혁명과 노동자, 민중의 역사를

거대한 벽화로 그려내던 인물이었다.


카리스마가 있었고,

사람을 끌어당겼으며,

자유분방했고,

악명 높게 바람기가 많았다.


프리다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내 인생의 두 번의 사고.

하나는 교통사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문장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사랑이었고,

동시에 몸에 남아 있는 증상이었다.

없으면 살 수 없고,

있어도 아픈 어떤 것.

그는 프리다를 감싸기보다 자기 세계를 그대로 두고 옆에 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프리다는 늘 혼자 서 있는 연인 같다.

어떻게 만나고, 왜 결혼했을까


프리다는 먼저 디에고를 찾아간다.

자기 그림을 들고.

“내가 화가가 될 수 있을지 봐달라”라고.


형식상으로는 가르침을 구하는 자리였지만,

디에고는 알아본다.

이 여자는 평가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녀의 그림에는 이미

고통을 통과한 언어가 있었다.


사랑은 빠르게 시작된다.

그리고 결혼한다.


사람들은 이 결혼을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혼”이라고 불렀다.

체격도, 나이도,

삶의 속도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했다.

안전을 약속하는 사랑이 아니라,

불이 켜진 채로 사는 사랑을.

사람들은 이 결혼을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혼”이라고 불렀다


결혼, 불륜, 용서, 그리고 반복


디에고는 바람을 멈추지 않는다.

한두 번의 일이 아니었다.


가장 치명적인 건

프리다의 여동생과의 관계였다.


프리다는 무너진다.

그리고 이 시기,

그녀의 그림은 더 이상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피는 화면 위로 올라오고,

몸은 갈라진 채로 드러난다.


그녀는 떠난다.

그리고 사랑을 다시 배운다.

상대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고통 속에서도 내가 아직 느낄 수 있는지였다.


이 시기 그녀는

망명 중이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 가까워진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이 관계 역시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사랑이었다.


프리다는

사랑을 벌주기 위해 사랑한 것이 아니라,

무너진 몸과 마음이 아직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혼한다.

그리고 다시 결혼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또?”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왜 이 사랑은

끝내 끊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남편’이라는 이름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삶이 무너질 때마다

다시 돌아가게 되는 자리,

상처인 줄 알면서도

몸이 먼저 기억해 버린

고통의 익숙함.


익숙함은 위험해도,

낯선 안전보다

빠르게 사람을 붙잡는다.


프리다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 대신 그녀는

그림 속에서 수없이 태어났다.


그리고 죽은 뒤에야

‘디에고의 아내‘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가로 다시 불렸다.


이 사랑은

아름답지도,

모범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관계는

사람이 왜 상처를 반복해서 선택하는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랑은

끝내 끊어지지 않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로맨스가 아니라 기록이다.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과

사람을 붙잡아두는 방식을

동시에 보여주는.

〈두 명의 프리다〉 (1939), 이혼 직후 그린 작품. 사랑받는 나와 버려진 나. 디에고가 사랑한 프리다와 버린 프리다


이제, 이 사랑을 다시 읽어보자


프리다에게 사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통 없는 장소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녀를 보호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그녀를 현실에 붙들어 두었다.

무너질 때마다

“아직 여기 있다”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처럼.


디에고는 그녀를 존중했지만,

끝까지 지켜주지는 못했다.

프리다는 떠날 수 있었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이건 미화가 아니다.

이건 변명도 아니다.

이건 관계의 중력이다.


사람은 왜 알면서도 떠나지 못할까.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같은 자리로 되돌아갈까.


프리다는 사랑을 몰라서

그 자리에 머문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자기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디에고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내가 ‘나’로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한 기준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사랑은

달콤한 선택이 아니라

살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건 사랑일까, 집착일까.

관계일까, 중독일까.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구분이 무의미한 순간도 있다.


삶이 이미 무너진 사람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버티는 방식이 되기도 하니까.


프리다는 평생

자기 몸과 싸웠다.

통증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고,

몸은 늘 그녀를 배신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사랑만큼은

도망치지 않는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리다는

사랑을 붙잡은 게 아니라,

사랑에 매달려

자기 자신을 붙잡았던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정말 비정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익숙한

‘안전한 사랑’의 정의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일까.


이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프리다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는 질문을

너무 정직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를

“이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정리해 왔을까.

그리고 그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진짜 이유를

숨겨왔을까.


프리다의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솔직하다.


그리고 솔직한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더 아프다.


그래서 이 사랑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사람마다

다시 시작되는 질문이다.

사이좋은 부부의 밀착감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를 들고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프리다의 독백 / 디에고의 독백


프리다의 독백


나는 내 몸을 미워하지 않았다.

이 몸은 나를 망가뜨렸지만,

적어도 나를 속이지는 않았으니까.


통증은 늘 정직했다.

아프면 아팠고,

움직일 수 없으면 분명히 멈췄다.


하지만 그를 사랑한 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사랑했느냐고.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떠난다는 건

고통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고통을

혼자 견디는 쪽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은 분명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망가진 게 아니다.

이미 망가진 상태로

사랑을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과하면서

나는 나를 더 정확히 보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강한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를 사랑한 건

나를 잃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솔직한 방식이었다.

화려한 옷, 강한 눈빛,그런데 자세히 보면 몸은 늘 긴장 상태


디에고의 독백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건 변명도, 미화도 아니다.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세계를 욕망했다.


여자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가능성들이

나를 끊임없이 끌어당겼다.


그녀는 나보다 강했다.

자기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자기감정을 예술로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존중했지만,

끝까지 보호하지는 못했다.


나는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안전하게 다루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다치게 할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건,

내가 잔인해서라기보다

내 한계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더 많은 걸 붙잡으려 했고,

그 욕심이 결국

그녀를 가장 많이 아프게 했다.


나는 위대한 예술가였을지 몰라도,

좋은 연인이 되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함께 앉아 있는데도 몸은 가깝고, 시선은 자주 어긋나 있다.


작가의 메모


프리다의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더 솔직하다.


이 이야기는

상처를 견뎌낸 사랑의 미담이 아니라,

상처를 알면서도

그쪽으로 다시 걸어간 한 사람의 기록이다.


프리다에게 사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고,

디에고에게 사랑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형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이건 미화가 아니다.

관계가 사람을 붙잡는 방식,

그리고 그 관계를 반복하게 만드는

마음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상처를 알고도

다시 그쪽으로 향하게 되는

내 마음의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사랑은

순진해서 지속된 게 아니다.

너무 많은 걸 알고도

그럼에도 손을 놓지 못한 사랑이다.


프리다의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끝내 외면하기 어렵다.


이 장을 덮은 뒤에도

불편한 질문 하나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 마음속의 디에고〉1943. 사랑은 몸에 남지 않는다. 생각에 남는다. 프리다는 그 사실을 자신의 이마에 새겼다.

부록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이 이야기를 읽은 뒤,

사람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누가 더 나빴는지,

이 사랑이 진짜였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놓지 못했는지.


이 부록은 판결을 내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다만 독자들이 가장 많이 멈춰 서는 지점들을

차분히 짚어보기 위한 자리다.


Q1. 디에고는 정말 프리다를 사랑했을까?


그렇다. 그는 프리다의 예술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동시대 누구보다 그녀를 ‘화가’로 대했다.


하지만 존중과 충실은 다르다.

디에고는 좋은 평론가였지만,

안전한 연인은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은 늘 다른 욕망들과 함께 움직였다.


Q2. 그렇다면 디에고는 악인이었을까?


그렇게 단정하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있다.

그를 악인이라 부르기엔, 이 관계는 너무 복합적이다.


그는 폭력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무책임했다.


그 무책임은

사과로 봉합되었고,

다시 같은 상처로 되돌아왔다.


악의라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끝내 조절하지 못한 사람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대가는 늘 상대가 치렀다.


Q3. 프리다는 왜 그렇게 쉽게 떠나지 않았을까?


프리다는 실제로 여러 번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이건 약함의 문제가 아니다.

의존과 사랑이 강하게 얽힌 관계의 전형에 가깝다.


특히 신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정서적 연결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생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상처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고통을 견디게 하는 중심이었다.


Q4. 프리다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했을까?


프리다는 디에고 외에도

여러 관계를 맺었다.

남자와 여자, 가리지 않았다.


이건 방종이라기보다

고통 속에서 ‘살아 있는 감각’을 확인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몸이 계속 무너질 때,

사랑은 그녀에게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증거였다.


Q5. 이 사랑은 프리다의 예술을 망쳤을까?


아니다.


프리다의 예술은

사랑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의 상처가

그녀의 언어가 되었다.


유산, 배신, 분열된 자아, 찢어진 몸.

그 모든 것이 그림 속에서

상징이 아니라 직접적인 진술로 등장한다.


프리다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았다.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지금도 불편하고, 그래서 강하다.


Q6. 그렇다면 이 사랑은 실패였을까?


실패라기엔

너무 많은 작품이 남았다.


하지만 성공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밤이 무너졌다.


이 사랑은

승리한 사랑이 아니라

감당해야 했던 사랑에 가깝다.


그래서 오래 기억된다.


Q7. 프리다 칼로는 언제부터 제대로 인정받았을까?


놀랍게도 프리다는 생전에는

종종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만 불렸다.


본격적인 재평가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리고 여성주의 미술사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프리다는

여성의 몸을 상징으로 돌리지 않았고,

고통을 추상화하지 않았으며,

욕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프리다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정체성과 몸, 감정의 주권을 말한 아이콘이 된다.


〈부러진 기둥〉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

〈두 명의 프리다〉


이 그림들은 모두

사랑과 고통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 사랑이 복잡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특별히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많은 고통,

너무 많은 욕망,

그리고 너무 강한 연결 위에

사랑이 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 질문을 남긴다.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 (1940), 사랑 = 장식이 아니라 상처라는 걸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 헤레라, 헤이든. 『프리다 칼로』. 김정아 옮김. 민음사.

• 칼로, 프리다.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Bmk(비엠케이). 2016.

• Museo Frida Kahlo(La Casa Azul). Official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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