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작별 일기>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이야기가 ‘우리’ 안으로 들어옴이 가능해지는 것은 그것이 사회정치적 문제로서 해석됨과 함께 그 속에 떼어지지 않은 존재로 ‘내’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눈물이 달라붙어 있을 것 같아서 책을 사고도 쉽사리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던, 최현숙 선생님의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한 책 <작별일기>은 의외로 눈물로 가득찬 시간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장녀인 딸인 존재로 원가족인 엄마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적당한 거리의 관찰자 시선을 가지고 객관적 바라보기로 기록을 해내신 것 같다. 물론 3부를 읽기 시작하면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 죽음을 앞에 둔 것 같은 시간의 서술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물이 비-객관은 아닐 테니까. 이 부분에서도 장악되지 않고 필요한 거리감과 구분과 관찰을 하는 것의 중요에 대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엄마만, 일 줄 알았는데 자꾸만 아빠가 생각이 났다. 그와 언제 연락을 했던가. 기억을 헤집어 봐도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별안간 그가 죽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더’ 알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더-라고 할만큼 내가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따지고 들어가면 나는 애저녁에 말문이 막힐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란 물음표가 가슴에 매달려있는 나에게는 조금은 뜬금없는 다짐같은 것이지만, 한편으론 그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하나 이상할 리 없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이 책을 읽고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얻음이다. 우리는 다른 관계로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시도해볼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자발적 숙제?ㅎㅎ 가 생겼다.
자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혼을 했다지만 사실 그것도 이 남편에서 저 남편으로의 울타리 이동일 엄마의 발목 잡힌 삶을 생각해본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가난’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또 그 ‘가난’에 대해 사유하는 글을 만나며 나는 ‘가난한’, ‘못 배운’, ‘사랑하지 않은’ 등의 정체성들이 맴돌았던 엄마의 지난 삶과 그로인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들에 대해 막연히 추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막연함을 지우고 싶어 엄마의 삶이 궁금하고 그녀를 기록하고 싶다. 그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녀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동력이었으며 지푸라기같은 존재였는지 나는 궁금하다. 이것은 오랜 바람이다. 최현숙 선생님 말대로 “단절할 것 아니라면 밀착하자”의 과정에 있어서는 엄마와 정말 놓치지 않고 가져가고 싶다.
지금의 내 나이와 부모의 나이가 30년 정도가 지나면, 또 그 시간이 오기까지 우리의 관계뿐 아니라 몸은 현저하게 변화하고 말텐데 그때라는 것은 내게 도래할 리 없는 먼 미래처럼 그려지지 않는 것들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빈곤과 노령이 겹친 그들의 시간과 또 동시에 별반 다르지 않을 나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절망스럽지 않게 만들어갈 것인가. 돈의 여부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도 위치가 판단되는(실버타운이랄지 공공성을 잃은 의료기관이랄지) 현재의 사회에서 나를 부양하는 것도 쉽지 않고 돈도 없는 가난한 나는, 사실상 아픈 아빠에게 질기게 매달리지 못하고 그를 포기했다. 그것으로부터 죄책감에 짓눌리고 싶지 않아서 그를 내 삶에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늙음-질병-빈곤-고통이 어떻게 가족에게만 넘겨지지 않고도, 또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지금’들’이 될지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쇳덩어리같은 가슴으로 사람들이 살아가지 않기를 사회의 기준에서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나는 간절히 바란다. 돈이 있는 노년이어서, 선생님 말대로 ‘돈 덕’이란 지점들이 나와 동떨어진 세상 이야기 같았는데, 그럼에도 박탈감보단 다른 감정과 관점으로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그만큼 고심했고 그 고민과 관점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구술사에 관심이 생긴 것도 최현숙 선생님의 작업 중 일부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나며,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인, 그리하여 우리가 개개인들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할지 사유할 수 있게 한다. ‘a’들의 삶을 흩뿌리지 않고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사회 시스템과 동떨어지지 않게 연동되는 과정이 흥미롭고, 내가 나와, 주변의 가람들의 일상과 생애 전반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이 방식의 다양한 글들을 만나고 싶고 그런 글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보니, 그리고 생각을 하다보니 정말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맞닿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