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어떻게 삶을 미끄러지게 하는가.

레이첼 모랜, <페이드 포>

by 수수

“1991년 8월 중순, 따뜻하고 해가 좋은 오후에 성매매 여성이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성매매 경험의 첫 날을 쓴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 약 2주에 걸쳐 조각읽기를 하며 이 책을 읽었다.

레이첼 모랜은 단 한 줄을 쓸 때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떠올리고, 응시해야할 만큼 고된 시간으로 이 글’들’을 썼다. 이 책을 읽고 나누고 싶단 이야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들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뤄두고 있던 읽기를 시작하고 사실 고통스럽다는 읽기가 존재한다면 그것의 쓰기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지난한 감정들이 오르락내리락 했을까 싶다. 더군다나 성매매 경험은 성매매 경험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없는 전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아온 맥락들이 존재하기에 그의 어린 시절부터 쓰여 있는데, 그것 역시도 읽는 것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기에 이 책은 내게 있어 의도적으로, 매우 단락적으로 읽어가야 했던 책이기도 했다.

가난은 삶의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그 삶을 토막 낸다. 가난은 사람을 ‘사회 가장자리 바깥쪽 끄트머리’로 내몬다. 부모의 정신 질환은 그 자체로 반드시 문제이지 않을 요소이지만 가난과 겹쳐진 그들의 상황은 다시 그들의 많은 자녀들에게 향해졌고, 그 속에서 레이첼 모랜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치심의 각인을 안게 되었다. 10대 시절, 가출 후 노숙 경험 역시 존재하나 지워진 존재로 차가운 바닥에 들러붙듯 존재해야 했던 경험들은 어느 날 너무 멋진 아이디어처럼 성매매와 만나게 ‘해버린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성매매‘된’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그 선택이란 것의 맥락을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려 했다. 무심하지는 않지만, 내가 이야기에 허우적대지 않도록 읽고 싶었다. 또한 나 아닌 절대적 타인에게 일어난 일로 납작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별 수 없이 그렇게 될 여지의 것들이기에 읽는 것부터도 어쩌면 하나의 고민인 시간이 되기도 했다. 여하튼 그래서일지.. 더 끊어서 자꾸 조각내듯 읽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토악질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릴 때도 있었다. 괴롭지 않았다면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런 나보다 더, 아주 훨씬 많은 기간을 들여 써내려가고 다면적인 감정의 시간을 바라보아야 했을 레이첼 모랜. 무슨 책인들 안 그러겠냐마는 이 책은 결코 쉽게 쓰여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10년이 넘게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얼마나 긴 시간에 걸쳐 나온 기록인가. 한 사람의 생애뿐 아닌 그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과의 관계, 그리고 성매매를 둘러싼 많은 오해와 생각들에 대해 이 하나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무수한 멈춤과 쓰기와 한숨과 의지가 불어넣어졌어야 했을 테니까. 저자가 표현한 대로라면, “살아난 경험으로서의” 성매매를 다시 바라보고, 직면하면서 “극복하려는 연습”이 담긴 시간이자 기록인 것이다.

사회에서 이미 오래된 낙인이 된 경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10년이 넘게 걸려 나올 만큼 즐거운 쓰기의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만날 수 있어서 나는 반갑고 고맙고 싶다. 개인적이며 사회-정치-경제적인 이야기, ‘페이드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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