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서도 놓지 않은 ‘살아냄’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by 수수

내 삶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론 무척 고통스럽고, 아픈 일이 된다. 해가 좋은 오후 성매매 여성이 되었다고 쓴 <페이드 포>의 레이첼 모랜의 문장이 생각났던 “나는 20여 년 동안 성매매를 경험한 여자입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봄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을 써가며 꼬박 하루를 채우듯 아프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 그 시간을 그녀는 4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꾹꾹 눌러 담는데 포기하지 않고 이뤄냈다.

그리고 여기, 성매매를 경험한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다른 것으로 떼어내지도 않은 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놓여 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란 책은 스스로를 원망하고 혐오해온 악순환적 삶의 과정 속에서도 살아야 했고, 살아냄을 잃지 않은 이의 기록이다.

한국에서 소개소를 끼고, 수도 없이 들어야 했던 미용과 의류 등의 소비에 빚이 늘어가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언니’들이 아닌 업주 등 특정한 사람들로 정해질 수밖에 없는 성매매 산업은 ‘착취’란 이름과 너무도 가깝게 존재한다. 얼핏 보면 <페이드 포>의 거리 성매매와는 다른 모습 같지만. 그 속에 존재한 감정과 상황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성매매의 경험으로 유입되는 경로가 그랬다.

폭력과 빈곤이 존재하는 생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되 물림되고, 쳇바퀴 돌 듯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누군가가 폭력에 놓이게 되는 것, 가난한 삶은 개인의 문제인가. 그것은 사람의 생애 전반을 톺아볼 때, 어떤 원인과 작용을 갖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가 가정폭력 피해경험자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그러한 가정폭력 가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가 가난으로 인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했던 상황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진행될 수 있었다면. 그가 성폭력 피해 경험자이지 않도록 함부로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가해자와 그들을 용인하는 잘못된 사회문화, 법제도 속에 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삶의 모양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모든 전제가 바뀐 뒤에도 성매매 경험은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치 않는 폭력과 가난 속에 놓이지 않았다면 달라질 이야기들이란, 분명 큰 가능성 속에 존재할 것이다.

가슴이 턱 막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구매자들이 ‘언니’들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도 그랬고, 참 어이없었던 것은 업주의 ‘선한 기부 행위’와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각종 명목으로 지출을 만들어 빚을 만들어 이익을 내던 업주가 누군가에게는 선행을 하는 익명의 후원자가 되는 모습을 읽는 나도 기가 막혔는데, 그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 그러니까 그 업주의 부를 축적하는데 이용된 이들은 오죽했을까.

‘일상’이라는 것이 또 참 아이러니한가 싶게도 너무 당연하게 생기기도 하여 적응이 되어가고 그러나 동시에 치가 떨리는, 그런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울 일상의 시간 속에서 자기 분열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의 달콤한 말로 꾀어내고는 그 다음날이면 온갖 모멸감과 수치 속에 존재해야 했던 공간에서 벗어나려 할 때 내 손목과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엄청난 빚, 만져본 적도 없는 실체 없는 그러나 분명히 토해내야 하는 돈이라면 과연 어느 누가 괜찮을 수 있을까. 숨이 턱 막힌다.

성매매 업소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한 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페이드 포>와 달리 한편으론 더 현실감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추천사를 쓴 김홍미리 선생님이 하신 말이 일면 이해가 되어 ‘소설’이나 지독한 ‘각본’이길 바라는 마음이 별 수 없이 들기도 했다. 텍스트만으로도 입술을 깨물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큰 숨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속도를 내어 읽기를 마친 것은 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무수한 시간을 노력 하고, 울고, 아파했을 봄날님에 대한 작은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던 건 내게 그는, 뭉치는, 성매매 경험 여성들은, 성매매 경험 여성들과 함께하는 ‘센터’들은 실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한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폭력의 경험은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의 자신이 아니다. 지금-여기의 삶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을 가슴 속에 꼬옥- 담고 오늘도 다짐하듯 입술을 앙 다물게 해준, 이 글을 쓴 봄날의 ‘내일’의 삶의 모양이 무엇이든 응원하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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