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던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 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없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257)’
나는 어떤 사람에 해당할까. 또 내게 당신은 어디에 해당하고 있을까. 물론 이는 고정되어 있지 않겠지. 네 곁이라 해도 어쩌면 어제와 내일의 내 위치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각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단절을 옆에 끼고도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별 수 없이 나이를 하나 둘 들어가며 느끼는 것 같다, 고 잠시 생각했다. 사람들은 곧잘 사랑하려해서 힘들고, 또 사랑하지 않아서 죄책감을 갖는다. 시간이 훌쩍 지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찾아갈 수 있겠지만, 삶의 그 순간순간에는 현재만 눈에 밟혀서 또 울고 만다.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간격이라는 것이 있다.
이만큼 가까이, 어떤 열매가 맺는지 볼 수 있는 시간도 오기 전에, 허무하다 생각 들기도 전에 증발해버린 첫 사랑의 이야기. ‘모두가 다 죽고 사라지고 지구가 온통 파주같이’ 변해도 둘이 남으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의 그런 이기적이지만 별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바라보니 어쩌면 비록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당신들 덕분이었음을. 똑같은 방식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은 당신들 모두가 마찬가지였음을. 그렇게 할머니가 되면 같은 요양원에 들어가자며 아직 먼 이야기를 쓸데없이 상상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알게 되었다기 보단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살아진다는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살아야지 하는 그 말이 때론 어떤 잔인과 진절머리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또 알면서도 결국은 그렇다는 것을 믿게 된다. 수없이 누군가 떠나고, 또 수많은 이들을 만나온 시간이 손에 담기지 않는 모래와 같이 날아가 버려도 아주 작은 것 하나는 달라붙어 있을 거라는 믿음. 아무렇지 않게 걱정 말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믿고는 싶어진다. 믿을 수 있다. 살아진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무심함도 아니고, 잘못도 아님을.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저녁이 저물 때를 지켜보기도 하고, 어느 날엔가 나의 날이 머물기도 할 것이다.
이십 대, 또는 삼십 대의 내가, 네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할머니가 되는 그날을 이야기하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만든다. 그렇게 너는, 그렇게 나는 공통분모를 만들고 너무 다른 차이를 만나면서 어느샌가 사이 통로를 만들며 ‘서로’가 된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우리가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을 희미하게 떠올리며 쓸쓸해질 모르지만 지금 나누는 그 약속들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우울감에 어느 구석에 쭈그려 앉아 소리도 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별 수 없는 것. 이만큼 가까이, 너와 마주하는 것. 이만큼 가까이, 나를 들려주는 것. 이만큼 가까이, 그럼에도 우리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