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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11. 2024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

박주연_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


“퀴어 콘텐츠라면 마구잡이로 먹어온 덕후의 지독한 여자 사랑…… 한 레즈비언의 희로애락이 만들어낸 퀴어 영화/드라마 가이드북!”으로 제목도 당당한 기세인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에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말하는 곳곳의 수많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글이 잘 읽힘). 너무 이상적이거나 너무 고통스럽거나 너무 보이지 않거나의 모습들은 드물게 혹은 너무 자주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모습이다. 모든 순간이 이상적이지 않지만, 대신 모든 순간이 엉망이거나 고통만이지도 않다. 삶이란 그런 것일 거다. 누군가의 삶을 고통이나 지우개처럼 지워버리는 건 많은 경우 당사자가 아니라 어떤 사회이냐에서 온다.


덕분에 많은 여자들을 알게 되었다. ‘다른 몸들’의, ‘다채로운’ 몸과 정체성들의,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럽지 않다가도 마음이 가고 화가 났다가도 이내 바라보게 되는 그런 수많은 여성들을. 우리는 그들과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같이, 계속해서, 퀴어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프라이드 먼스 놓치지 않고 퀴어 신간 읽기!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 박연주 지음, 오월의 봄


p10-11 그 이야기 속 여자들 덕분에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과 달라서 이상하고 괴상하며

'정상'적이지 않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 그 여자들은 나였고, 내 친구였고, 선생님이었고, 미래였다. 그러니까 여자 사랑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늘 자신 있었다.


p71 성소수자의 재현과 관련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과소재현"이고 둘째는 "왜곡된 재현이나 정형화"다."과소재현은 말 그대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소수자의 비율이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 비율보다 작을 때"를 말하며,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다루지 않게 되면 성소수자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고 관련 의제가 다루어지지 않으므로 성소수자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왜곡된 재현이나 정형화 또한 "성소수자를 타자화시키고 이성애규범주의Heteronormativity를 재생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문제를 반복한다. 사실 이는 성소수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사회에서 '기본값으로 여겨지는 남성/ 비장애인/원주민/시스젠더/이성애자/백인/비청소년 등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p150-151 나만 아니면 괜찮은 세상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살고 싶은 세상을 꿈꾸는 게 더 '힙한 일인 것도 깨달았다. 아, 퀴어 페미인 걸로도 모자라 좌파까지 되고 싶진 않았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퀴어 페미는 어디서 '빨갱이' 되는 수업이라도 수강하냐 싶겠지만(앗, 들키면 안 되는데), 소수자로서의 경험과 소수자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다보면 연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혼자 위험에 빠지는/빠져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도록 혹은 그런 순간에 좌절하고 허우적 거리다 결국 사라지지 않도록 함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걸.


p155-156 너만 희생하면 다 괜찮을 거라고. 한 편 또 누군가는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친다. 나만 괜찮으면 너넨 다 희생해도 된다고. 이렇게 너와 나만 혹은 너와 같은 사람과 나와 같은 사람만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사라진다. 서로 연결될 일이 사라지는 거다.


p205 페미니즘, 자기 몸 긍정주의/바디포지티브운동, 퀴어 이론부터 장애학까지, 몸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접한 덕에 나도 이젠 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마냥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내 몸인데 뭐 어때서?'라고 받아치지만 여전히 몸과의 관계는 어렵다. 내가 보듬어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나를 바라볼 어떤 시선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게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마냥 벌벌 떨지만은 않게 됐다는 게 이전과는 다른 점이랄까? 이젠 무방비 상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


p207 그래도 릴리라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 그의 이야기가 전해졌다는 걸 기억하려고 한다. 엄마가 둘인 여자애,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을 세심히 관찰하는 여자애, 아스트리드라는 단짝 친구가 있는 여자애, 괴물들과 싸우는 걸 두려워 하지 않은 여자애,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여자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애, 그리고 뚱뚱한 여자애. 그 모든 것이 릴리였다는 것도. 릴리의 세계가 내게 준 용기도 잊지 않을 테다.


p235 아픈 여자가 된다는 건 쉽지 않다. 아프다는 건 자신이 지금 취약한 상태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기도 한데,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약한' 사람이 된다는 건 경쟁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고, 그건 패배자나 매한가지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평생 '이기는' 삶만 추구해왔는데 '나약한' 사람이 됐다는 충격과 함께 온갖 편견과 낙인도 들러붙는다. 아프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아픈 이들은 그렇게 '정상사회'에서 계속 이탈된다. 그러니까 자꾸 아픈 걸 부정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p255 그럼 친구들만 있으면 괜찮다는 건가? 아니다. 친구들이 있으면 일단 위기 상황에서 구출될 가능성은 높다는 거다. 애초에 위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결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 퀴어/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는 사회에선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계속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이 몰려오는 걸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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