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까 시리즈 ] 04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휴대폰 대신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던 시절, 학교에서는 전화 통화 예절을 가르쳤다. “안녕하세요? 혁신이네 집이죠? 혁신이 친구 해볼까인데요. 혁신이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휴대폰과 함께 하는 지금, 학교에서는 카카오톡 대화 예절이나 배려하는 댓글 달기 노하우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늦은 밤 남의 집에 불쑥 찾아가지 않지만 늦은 시간 문자를 보내고, 마주 보고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온라인에서는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왜 그럴까? 혹시 아직 못 배워서일까?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에서는 디지털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디지털을 건강하게 활용하는 윤리, 예절과 함께 디지털 시민의식 등의 소양 교육을 한다. 서울혁신파크는 입주단체와 함께 각 단체가 꿈꾸는 미래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해볼까?>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와 함께 디지털 리터러시를 배워보자.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를 소개해주세요.
김묘은 :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미래 산업의 역군이 될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디지털 홍익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전국 시·도 교육청과 협력하며 지금까지 약 23,000명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리터러시 교육을 해왔고, 11,000여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장애 청소년, 시니어들을 대상으로도 디지털 시민교육, 디지털 기업가정신 교육, 디지털 공감 교육을 진행하고, 국내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중국, 베트남에도 디지털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디지털리터러시라는 말이 낯섭니다. 어떤 뜻인가요?
박일준 : 먼저 리터러시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요. ‘리터러시(Literacy)’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문해력’을 말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기술, 정보, 콘텐츠,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과 건강하게 소통하며 사용할 줄 아는 소양을 말합니다. 기술과 도구를 잘 다룰 줄 아는 능력뿐 아니라, 건강하게 잘 활용하는 시민의식, 윤리, 예절 등의 소양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인터넷상 지식과 정보를 편식하지 않고 고르게 소비하고, 비판적 사고로 허위정보에 속지 않으며, 때로는 직접 콘텐츠를 생산·공유하는 것까지 해당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능력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분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다 자세한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묘은 : 문해력이란 읽고 쓸 줄 아는 것뿐 아니라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도 신문 기사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잖아요. 문해력이란 단지 읽을 줄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독해가 가능해야 하고 멋진 글을 쓸 줄도 알아야 하죠. 디지털 문해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고, 컴퓨터를 쓸 줄 안다고 모두 제대로 쓰는 것은 아니죠. 사실 우리는 스마트폰 기능의 1%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99%를 더 쓸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우리 삶도 더 향상될 겁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기술교육으로 많이 착각하시는데 뭐가 다를까요?
김묘은 :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기술 교육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포토샵 오피스 프로그램 사용법이나 동영상 편집 교육 같은 것들이요. 그러나 진정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되려면 기술과 철학, 실제와 이론, 재미와 의미, 결과와 과정 등 두 가지 다른 면들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기술 교육은 유튜브의 유선생이 제일 잘 가르칩니다. 기술교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요. 시간이 갈수록 소프트웨어 사용법이 쉬워지기 때문에 점점 더 그렇습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 ‘사용법’이 아니라 ‘활용법’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죠.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는 게 왜 중요할까요?
박일준: 현재 일자리를 수입 기준으로 나누어 보면 보아뱀 모양의 정규 분포도를 그립니다. 지금도 사회, 경제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요. 개인으로 보면, 디지털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 따라 경제 수준이 크게 갈릴 겁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인공지능을 부리며 더 높은 생산성을 내고 큰돈을 벌겠지만, 낮은 사람은 반대로 적은 돈을 받으며 인공지능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해내고 수백억의 돈을 벌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UNESCO)에서도 디지털 리터러시를 ‘21세기 시민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 역량’으로 선정한 거죠.
좀 더 교육적인 관점으로도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일준 : 이제는 정보를 얻는 방법이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 같은 영상 미디어와 오디오 형태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이 있죠. 그런 것들을 접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지식 접근성에 차이가 크게 생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배우는 시대가 된 거죠. 교육은 곧 기회이기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세대 간 정보격차가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김묘은 : 정보격차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접근성 문제인데요. 디지털 기기의 유무, 네트워크 액세스 수준, 디지털 미디어 활용능력에 따라 정보격차뿐 아니라 정보 소외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마다의 편향성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하는 정보만 골라본다는 얘기죠. 결국 자신의 가치관, 정치적 이념 등이 강화되고, 다양성에 대해 닫힌 자세를 갖게 되죠. 사회갈등, 세대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에서는 SNS가 어떻게 이용자에게 극단적인 의견을 갖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 이용자가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한다. 이용자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보다 공감되는 의견에, 평범하고 지루하기보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쉽게 현혹된다. 이런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다 보면 특정 의견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믿게 될 때도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두 대표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디지털 세상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더 강화하고 세상의 이야기에 귀 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김묘은 : 인공지능이 정보를 취득하는 사람을 위해 큐레이션을 해줍니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하려고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콘텐츠를 큐레이션해주기 때문에 편식하게 되죠. 미디어 기업으로는 고객 서비스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편향성을 더욱 강화하는 몹쓸 도구가 되죠. 세대별로 다른 정보를 보고 있는데 계속 비슷한 콘텐츠만 추천해주니 세대 간 골이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고른 영양 섭취를 위해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듯, 정보 소비에서도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노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편견도 있는데요.
김묘은 : 젊은 층이 디지털 리터러시가 더 잘 되어 있냐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단순히 디지털을 잘 활용하는 기술적인 능력이라고만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리터러시란 잘 해석하고 생각하는 힘까지 말하거든요. 누구나 편향성을 갖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나이가 들수록, 또 성공체험을 통해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편향성은 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별력은 나이와 상관없어 보입니다. 어르신들이 잘못된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더 높고, 삶의 경험이 더 많다보니 편향성이 조금 더 있을 수는 있죠. 하지만 젊은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문제가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생각이 필요합니다.
세대별 정보격차 논의와는 별개로 온라인 세상에서는 여전히 혐오 댓글이 많고, 특정인을 향한 인신공격도 흔하다. 디지털세상에서는 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는 걸까?
온라인 세상에서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오프라인보다 덜 지키는 것 같습니다. 혐오 댓글이 난무하는 등 시민의식도 옅어지는 것 같고요. 왜 그럴까요?
박일준 : 갈등사회기 때문이죠. 갈등은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습니다. 갈등 없이 사회는 발전할 수 없죠. 하지만 필요 이상의 갈등, 건강하지 않은 갈등은 사회를 좀먹습니다. 혐오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존중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갈등사회에서 혐오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바로 ‘익명성’ 문제입니다. 협의의 의미로는 실명을 쓰지 않는 것을 말하지만, 광의의 의미로는 ‘저 너머에 사람이 있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얼굴 없는 존재, 일명 ‘익안성’과 같은 것이죠.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책임의식을 더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명, 실안이 자리 잡혀야 하고, 개인의 책임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디지털 중심의 세상을 우려한다. 책을 읽지 않고 핸드폰만 잡고 있는 자녀를 보고 한숨짓는 부모들도 많다. 누군가는 어차피 영상의 시대가 왔으니 책만 붙들고 있는 건 소용이 없다고도 한다. 과연 글의 세상은 가버린 걸까?
요즘에는 디지털 세상이 왔으므로 글보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훈련할 수 있는 사고력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일준 :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디지털 뒤에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는 리터러시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교육에서는 리터러시, 즉 문해력이 근간이에요. 그러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힘에도 불구하고, 글만으로 이해가 다 되는 건 아니니 다양하게 익혀야 해요. 예를들어 텍스트로만 글을 쓸 때와 비주얼과 어우러지도록 글 쓸 때의 감각은 다릅니다. 영상의 보조제로서 글을 쓸 때는 또 다르죠. 예전에는 한두 가지 문체만 쓸 줄 알면 됐지만, 이제는 미디어의 형식, 채널에 따라 글맛을 다르게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처럼 긴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다른 형태의 콘텐츠와 조합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더 많아진 거죠.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기 위해서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김묘은 :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디지털에 너무 빠져도 안 되지만 너무 멀리하는 것도 답이 아니죠. 아날로그가 옳다, 디지털이 더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히 융합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오프라인만 고집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균형 잡힌 태도가 중요한 거죠.
이 글을 읽는 분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박일준 : 디지털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 쓰면 독이 됩니다. 셰프에게 칼을 주면 도구가 되지만 강도에게 주면 무기가 되는 것처럼요. 도구는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된 디지털 문화를 보면서 디지털 자체에 회의를 가지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디지털 자체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대마다 늘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고, 그것을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회를 얻었죠.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위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 ㅣ박초롱 딴짓매거진 편집장
영상 촬영 편집 ㅣ요지경필름
사진 ㅣ서울혁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