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까 시리즈] 06 맛있는정원 코리아
“농사는 아무나 짓니? 그게 얼마나 힘든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으레 이런 평이 뒤따른다. 대개 새벽같이 일어나 약을 치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농사꾼의 삶을 잠깐이라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조언이다. 주말농장도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며 손사래 친다. 그렇다면 농약, 비료, 잡초제거를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해 본다면 어떨까?
퍼머컬처는 영구적이라는 단어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단어 Agriculture의 합성어다. 영구적인 농업이라는 뜻이지만 실은 농업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만나는 모든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방식의 삶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자연농법뿐 아니라 농업공동체, 제로웨이스트, 돌봄나눔, 기후변화 대비 등 다양한 키워드와 연결되어 있다.
퍼머컬처 키친가든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맛있는정원 코리아’도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생태조경을 디자인한다. 도시 텃밭을 가꾸고 싶은 사람이나 소규모 땅을 경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정원을 디자인하고 자연농법을 교육한다. 지속가능한 삶의 사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최근 서울혁신파크 한편을 자연농법을 활용한 키친가든으로 꾸미고 있다. 생태농업은 무엇이고, 이들은 왜 굳이 이런 방법을 택한 걸까? 혁신단체와 함께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해볼까?> 시리즈, 서울혁신파크는 그 마지막 순서로 맛있는정원을 가꾸는 이진호 대표를 만나보았다.
- 퍼머컬쳐키친가든, 맛있는정원 코리아는 어떤 곳인가요?
맛있는정원은 이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꾸며진 정원입니다. 허브, 채소, 과일나무로만 이루어져 있죠. 저희는 그런 정원을 만드는 일을 하고요. 우리나라는 뒤뜰에는 채소밭을 가꾸고 앞뜰에는 보기 좋은 관상수를 심는 경향이 있는데요, 맛있는정원에서는 뒤뜰에 있는 채소들도 관상수만큼이나 가치 있는 식물이라고 여겨 당당히 앞뜰에서 함께 키웁니다.
- 퍼머컬쳐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요?
퍼머컬쳐란 지속가능한 농업이에요. 농약,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법일 뿐만 아니라 여러 적정기술을 사용해 작물을 기르는 방법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식물에게 물을 주기 위해 굳이 물을 끌어오기보다 빗물을 탱크에 저장했다가 공급한다거나, 온실 대신 태양광이나 복사열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거죠.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다 보니 퍼머컬쳐, 맛있는정원이 단순히 다른 방식의 농업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지속가능한 농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예를 들어 키친카든은 노동력을 절감해줄 뿐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에게 즐거움도 줘요. 두둑을 높여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되는 입체적 환경을 만들어 다양한 식물을 키울 수도 있고요. 보기에도 아름답죠. 제초하는 노동력을 비롯해(퍼머컬쳐는 잡초를 제거하지 않는다) 농약, 퇴비 등의 자원을 적게 투입하고, 친환경 농작물이기 때문에 부가가치도 올라갑니다. 노후에 외로우신 분들이 함께 친환경 농업을 하며 가드닝 하듯이 몸을 움직이고 대화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3일 전에도 광주에 가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 텃밭 사업에 도움을 주고 왔는데요. 도시재생, 세대 갈등, 노인 건강 등 다양한 문제를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며 풀어갈 수 있는 겁니다.
- 서울혁신파크 지구를 생각하는 카페 옆에 300평 정도의 키친가든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서울혁신파크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카페 너머에 키친가든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퍼머컬쳐와 전환도시 모델이 되는 곳이 있어요. 영국의 토트네스 마을인데요.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토트네스 같은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가 전환도시를 위해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혁신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지구 집현전도 만드시고요. 저도 이런 실험에 동참하는 셈이죠.
토트네스는 영국에 있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시골마을로 지역먹거리운동, 텃밭나눔운동, 자기자원나눔, 에너지자립운동, 마을정원프로젝트 등 다른 전환 마을의 모범이 되는 곳이다. 토트네스에서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모든 식료품 가게에서 로컬 푸드를 판매하며, 지역화폐 ‘토트네스 파운드’를 활용해 화폐의 지역순환을 장려한다. 특히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고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한 먹거리 공동체를 만들며 이를 이용한 다양한 협동조합 활동도 한다. 서울혁신파크 안에도 이런 공동체가 가능한 걸까.
- 맛있는정원은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전환도시의 롤모델을 만드는 실험을 하시는군요. 다른 활동도 하실 것 같은데요.
지속가능한 농법을 활용한 정원을 조성해드리기도 하고 교육도 하는데요. 요즘은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열심히 지속가능한 농법을 활용한 정원을 만들어드렸지만 거기에 농약을 치는 분도 있고 갈팡질팡하다 포기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자연농법은 농약이나 비료를 투입하지 않아야 하는데도요. 전통적으로 농사를 짓던 이장님이 농사 그렇게 짓는 거 아니라고 핀잔을 주시면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죠. 정원을 만들어드린 후에는 교육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 어려우신 점은 없으실까요?
가끔 주민주도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제가 사업설명회를 나가곤 하는데, 설명이 끝나면 꼭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그럼 농작물을 어떻게 나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동 농장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25명이 땅을 나눠서 작업하면 자기 땅에서 나온 것만 가져가려 하죠. 그러나 핵심은 우리가 함께 작업을 했다는 거거든요. 서로 도와가며 일하고 수확을 나누거나 함께 모여 팜파티를 하며 공동체의 이로움을 즐기는 것이지요. '햇빛과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구나',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런 농법 속에서 생태가 복원되고 먹이사슬 관계가 살아나는 것도 느끼고 다른 곳으로 확산되도록 실천하는 거죠.
이진호 대표는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가지만 놀랍게도 아직 강원랜드 소속 직원이다. 인터뷰 자리에 올 때도 막 정원에서 나왔다며 흙을 털던 그가,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 소속 직원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그는 어쩌다 퍼머컬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도 기업을 설립할 수 있었을까?
-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대표님께서 퍼머컬쳐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초중고대학교를 다 서울에서 나와서 그런지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어요. 20여 년 전 강원랜드가 생겼을 때 직장이 자연에 있다는 점이 좋아서 지원하게 되었죠. 처음엔 아파트에 살다가 900평 정도 땅을 사서 집을 지었어요. 700평 정도의 땅에는 블루베리도 키우고 인터넷으로 작물도 팔아봤죠. 너무 재밌어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서 뒷산의 3만 평 땅을 추가로 샀습니다. 빚도 엄청 졌어요. 노후를 그곳에 계획하기 시작한 거죠. 뒷산에 호두나무를 1500그루 정도 심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하니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일하고 출근했다가 퇴근 후에 뒷산에서 한 시간씩 더 일했죠. 그러다보니 내 생활이 없어졌어요. 미래를 준비하다 당장 내가 망가지겠다 싶었죠. 그때 게으른 농부가 한다는 자연재배에 빠졌습니다(생태정원은 환경을 거의 훼손하지 않으며, 한 번 만들고 나면 유지하는 데 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자연농법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책과 이야기에 심취했죠. 일본의 썩지 않는 사과로 유명한 기무라 아키노리, 자연농법의 대가 후쿠오카 마사노부 책을 공부했어요. 토비 헤멘웨이의 <가이아의 정원>(퍼머컬쳐 디자인을 적용해 생태정원을 가꾸는 방법을 안내하는 퍼머컬쳐 입문서)을 읽고 났을 땐 이거다 싶었죠.
- 사이드프로젝트로 하시던 농사가 일로 커지게 된 거군요. 처음에는 강원랜드의 사내벤처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사내벤처팀이 기업이 되기까지 여러 스토리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회사의 사내벤처 공모전이 있었어요. 사실 그 전에 강원대학교에서 현장실습수업을 맡아서 학생들과 지속가능한 농업, 문화에 대해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우수하게 과제를 이행한 학생 둘과 같이 강원랜드 사내벤처 공모전에 나갔는데 일등을 했죠. 회사에서 2년 동안 풀타임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투자금도 받고요. 덕분에 그동안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보며 자연농법 실험도 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식물이나 농법도 찾아 나갔죠.
낮에는 회사원, 새벽과 밤에는 농업인으로 사느라 지친 그가, 필요에 의해 찾게 된 농법은 그에게 의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자연농법은 세계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목받고 있는 단어다.
- 대표님은 실천적인 이유로 이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신 것 같아요. 퍼머컬쳐와 지속가능한 사회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그래서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가 미래의 가치나 아이템을 지금 당장 실현하도록 많이 바꾼 것 같아요. 퍼머컬쳐뿐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나 면역력,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우리나라의 큰 문제 중 하나는 푸드마일리지(농축수산물이 생산된 이후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까지 이동한 거리로, 식품의 물량에 실제 이동거리를 곱한 값)가 높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많은 농산물이 칠레나 아르헨티나, 미국에서 오죠. 먹거리의 위협에 취약합니다. 코로나시대에는 글로커라이제이션(세계화를 의미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지방화를 의미하는 로컬라이제이션의 합성어로서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현지 국가의 기업 풍토를 존중하는 경영 방식)이 각광받고 있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영국 토트네스는 30km 안에서 모든 먹거리들을 자급자족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다 보니 먹거리의 대부분을 자기 지역에서 얻을 수 있죠. 코로나로 인해 이런 변화에 대한 니즈가 가속화되고 있어요. 탈도시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앞으로도 점점 중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 퍼머컬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근본적으로는 식물을 보는 눈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인간 중심으로 식물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식물은 원래는 생산자인데 인간이 자꾸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쳐서 생산능력을 퇴화시키고 있어요. 농약 치고 비료 뿌리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화학비료는 대부분 1930년대에 발명이 된 제품이에요. 이것의 부작용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죠. 인간도 농사지으며 땅에 이것저것 투입하느라 불필요한 노동력을 쓰고요. 자투리땅이나 옥상에서 내가 먹을 정도의 기본 식물들은 직접 생산해봤으면 좋겠어요. 식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자연이 의외의 선물을 줍니다. 내가 한 것 이상으로 돌려주죠. 그런 경험을 하시면 좋겠어요.
- 지속가능한 농업을 우리가 직접 실천하기 위해 개인이 해볼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혁신파크에 조성된 키친가든에 오면 ‘비와야 연못’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웅덩이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되기 때문에 ‘비와야 연못’입니다. 비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번개가 치면 공기 중 질소가 식물이 흡수하기 좋은 질산염 상태로 바뀝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는 이 질산염과 공기 중의 다양한 미네랄이 한데 녹아져 식물에 양분을 공급합니다. 질소는 식물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요. 흙의 표토 30cm에는 땅속 양분의 80%가 있고 흙 3cm가 만들어 지려면 2,000년이 걸립니다. 이처럼 귀한 표토가 우리나라처럼 집중 호우가 자주 내리는 기후에서는 땅에 골이 생겨 강으로, 바다로 쓸려 내려가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흙은 빗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 적조현상을 초래합니다. 밭에서 손실된 양분이 바다로 가서 오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앞마당부터 한 방울의 빗물과 한 톨의 표토가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비가 그치면 땅속으로 그대로 스며들도록 저장해주고 식물이 물과 양분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지속가능한 농업, 직접 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맛있는정원의 네이버 밴드에 오시면 키친가든 운영자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요, 공지된 교육을 신청해보셔도 좋습니다. 퍼머컬쳐에 대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입문 과정, 다섯 시간짜리 기본 과정, 2박 3일짜리 중급 과정도 있어요. 자신의 마당이나 밭의 도면을 가지고 오시면 중급과정에서 직접 퍼머컬쳐를 활용한 정원 설계를 해보실 수 있습니다.
맛있는정원은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지속가능한 정원을 가꾸고 있다. 시민들이 이 정원에 씨앗을 심고 자연농법으로 재배해 그 재료로 언젠가 요리를 할 수 있다. 내 식탁에 올라올 음식의 시작과 끝이 서울혁신파크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세계를 돌지 않아도 한 그릇의 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뱃속뿐 아니라 심장까지 뜨끈하게 데워줄 감동이다. 당신도 베란다에서, 옥상에서, 텃밭에서 자연농법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해볼까? 퍼머컬쳐!
인터뷰 ㅣ박초롱 딴짓매거진 편집장
사진 ㅣ서울혁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