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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Feb 18. 2021

대안적 시스템, 지금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

[사회혁신 트렌드리포트 1]

에너지, 시스템 전환 촉구 현장마다 참석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입니다. 기후 위기가 오죽 심각하면 저러실까 싶어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조천호

- 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생활이 단조로운 편입니다. 책 읽고 자료 찾고 글 좀 쓰고, 경희사이버대학교 기후변화 특임교수로 일하며 때때로 외부 강연이나 회의에 참석합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한 청소년들을 변호하고 과학적 자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법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는지 알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청소년들이 헌법소원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법 체계에서는 정부가 에너지 전환 대응에 대해 말한 부분이 흐지부지되거나 정권이 바뀐 뒤 정책이 뒤엎어져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계획과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바꿀지, 정부가 약속하고 책임지는 내용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에너지나 자원 시스템 전환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뭐가 어떻게 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대기과학자의 관점에서 현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요즘 이렇게 비유해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인간의 체온 변화에 비유하는 겁니다. 체온이 정상보다 1℃가 높다. 아직 몸져누운 상황은 아니지만 이상이 감지되는 시점이죠. 지금 지구가 그렇습니다. 기후 위기 전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1℃ 상승한 상황입니다. 빙기와 간빙기의 온도 차이가 4℃인데, 이 같은 변화는 1만 년에 걸쳐 서서히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00년 만에 급격히 1℃를 변화시킨 거죠.


여기서 0.5℃가 더 오른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는 평균기온이 2℃ 넘게 상승하면 지구가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직면한다고 봤지만, 2018년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내린 결론은 2℃가 아니라 1.5℃입니다. 지금보다 1.5℃ 상승하면 이상기후가 장기적·항시적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으며, 그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소용없다는 겁니다. 온실가스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까지 공기 중에 남아 가열 효과가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유지한다면 2040년경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은 1.5℃를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총회 당시 과학자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로 낮춰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따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우리 정부의 노력은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기후 재앙이 인류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될까요?

기근이 일어나고 마실 물이 부족하며 대도시 문명이 붕괴되겠죠. 대한민국에 기후 위기가 예고 없이 일어나면 마트에 가도 먹을 것을 팔지 않는 상황이 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재난 지원금을 푼다면 어느 정도 도움 될 여지가 있죠. 하지만 마트에 먹을 것이 없다면 재난지원금을 풀어도 소용없는 상황입니다. 더 심각한 점은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지구에 기후대가 다양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당수 인구는 온대 지역에 밀집해 살고 있어요. 그곳에서 인류가 소비하는 식량의 많은 부분을 생산하고요. 그런데 기후 위기가 오면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이 좁아지고 식량 생산이 줄어들게 됩니다. 생산량이 줄어든 국가는 식량을 수출할 수 없을 테고요. 시리아 난민도 러시아가 가뭄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 이를 수출하지 않은 일과 연관되어 있는데, 기후 위기가 오면 이런 사태가 온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처럼 외부 의존도 가 높은 나라는 더욱 큰 타격을 받을 테고요.


한국 사회는 코로나19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죠. 환경 면에 있어서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세먼지나 감염병은 정량화된 데이터가 매일 확인되고 눈에 보이지만, 기후 위기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시적이지 않은 것에 대응한 전례가 없어요. 그래서 어려운 측면이 있죠. 설득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요.


저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설득하고 싶어요. 이건 수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요. RE100 (Renewable Energy 100%)은 제품 생산에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활용하자는 기업들의 캠페인으로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이 다 가입해 있어요. 이들 기업에 부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협력 업체 또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탄소세는 어떤가요?


탄소세 역시 수출 기업에 굉장한 압박이 될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1~2%인데 탄소세를 부과하면 시장에 진입조차 못 하게 될 수 있어요. 여러모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유럽 선진국은 산업 기술혁신을 통해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가격을 85%까지, 풍력발전 설비 비용을 45%까지 떨어뜨렸습니다. 앞으로 기술 발전으로 더욱 저감되겠죠. 원자력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은 안전기준 강화로 비용이 오히려 상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미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아웃사이더인 상황입니다.

변화를 위해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얘기를 나눕시다. 현재 시스템은 총체적으로 과잉 상태입니다. 대량생산, 대량 폐기 시스템으로, 지구 한쪽에선 고갈되는데 한쪽에는 쌓이는 상황이죠. 쓸 수 있는 것들도 쓰레기장으로 가고 있고요. 이를 순환시켜야 합니다.


사실 자원 순환은 비용이 드는 일이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칠레산 거봉 포도가 엄청 싸요. 냉장 시스템과 물류 전반의 과정이 모두 값싸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를 펑펑 쓴 덕분이죠. 이런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자원을 흥청망청 쓰며 노동 단가만 내려 기업이 이익을 보는 구조죠. 그래서 기술 혁신이 일어나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줄어들죠. 고용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불안해요. 근본적으로 참 슬픈 세상입니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데 행복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에요,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지.


다들 너무 열심히 살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행복하지 않고 불안한, 이런 시스템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에요? 공직(국립기상과학원)에 30년간 몸담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산 저도 경쟁과 불안에 시달렸어요. 그러니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이렇게 다들 힘든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이런 세상을 깨뜨려버려야죠. 저는 에너지를 조금 쓰면서 인간의 창의성으로 가치를 만드는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육식 안 하고, 착한 소비하는 것도 좋아요. 먹는 걸 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워요. 공동체를 위해 그걸 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귀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노력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버리면 지금 당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인을 국민의 손으로 뽑고,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대안적인 시스템이 현실화된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아직 완성된 시스템은 아니지만,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의 2기 시정 운영 공약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15분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데,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해 그 안에 주거 시설, 교육 시설, 의료 시설, 상업 시설, 여가 시설 등 삶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갖추겠다는 거예요. 왜 15분이냐? 심리적으로 20분 이상 걸릴 것 같으면 차를 타고 간다는 거죠. 자동차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마을 공동체의 기능을 회복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파리의 주차장 6만 개를 자전거 보관소로 바꾸겠대요. 파리의 자가용을 타고 동서로 관통하는 일은 없게끔 하겠답니다. 더 멋있는 일은, 이런 사람을 파리 시민이 시장으로 뽑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차가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닌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가 그런 사고를 가진 정치인을 뽑아서 도심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서 그래요. 우리도 ‘자전거 도시’를 만들어서 살 수 있습니다. 차로 꽉 막힌 도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며 여유로운 도심 공간을 누릴 수 있어요.


2050년이면 세계적으로 도시 인구 밀집도가 75%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저는 시스템 전환을 도시에서 결판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대기과학 분야에서는 1년만 지나도 기존 지식이 구닥다리가 됩니다. 저는 공부하는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매일같이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공부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하고, 여력이 좀 더 있다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연대를 도모할 때 과학적 설명을 덧붙이며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겠죠.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분위기를 형성하는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글 l 최서윤, 사진 l 백상현


* 본 내용은 서울혁신센터에서 기획/발행한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 트렌드 리포트> 에 수록된 인터뷰입니다. 리포트 전문은 서울혁신파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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