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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18. 2018

[서울혁신파크 혁신가]고무신의 고무신학교

#10 고무신의 고무신학교

죽기 살기로, 같이 놀자!"

서울혁신파크 안 송하재(소나무 밑 두 개의 작은 중정이 있는 야외시설물) 앞.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이 뒤죽박죽 섞여 놀고 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심상찮은 분위기. “너희가 파손한 물건은 파크 공공재산이야.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둘이 의논해 보고 이야기해줘. 할 수 있지?” 고무신학교 선생님 ‘자영씨’ 말이 끝나자마자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들 표정이 참담해졌다. 흔한 일이라는 듯 그런 아이들을 뒤로하고 내게 와 인사를 건네는 자영씨. “밥 먹고 뒷산에 올라갔다 왔는데 '고무신' 선생과 길이 좀 엇갈렸어요. 곧 올 거예요.” 몇 분 뒤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고무신 무리. 카메라를 든 나에게 곧이어 아이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몇 살이에요?” “얼마나 여기 있었어요?” “사진 보정해 주실 거죠?” “전 오늘 기분이 별로라 사진은 안 찍을래요.” 낯선 이에 대한 온도 차는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리낌 없다. 고무신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고무신' 그리고 ‘자영씨’라는 별명을 부른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했던가. 고무신학교를 껴안은 공기가 기억 속 여느 교실의 그것보다 한층 더 온온하다.   
산에서 내려와 한숨 돌린 고무신과 아이들은 곧바로 송하재 안팎에서 지렁이 놀이에 시동을 건다. 팀을 나눈 아이들이 양쪽에서 돌덩이를 디디며 달려와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진 사람은 다시 시작점으로, 이긴 사람은 상대편 진영을 향해 계속 돌진한다. 10미터 남짓 직선 위에서 펼쳐지는 놀이판 드라마가 지나치게 다이내믹하다. “시비도 걸고 목소리 높여 같이 싸워야 재밌지, 시켜서 하는 놀이는 재미없어 해요." 수많은 아이들을 가차 없이 낙오시킨 뒤 고무신이 남긴 말 한마디가 꽤 의미심장하다. 햇수로 약 10년. 광화문, 성미산에 이어 서울혁신파크로 세 번째 자리를 옮긴 고무신학교의 터줏대감, ‘고무신’을 며칠 뒤 다시 파크에서 만났다. 
     
'했을 때 즐거운 것'을 경험하는 학교
     
아이들을 만난 건 언제부터셨어요? 
한 20년쯤 됐죠? 학부 졸업하고 생계 해결하기 위해 처음 들어갔던 곳이 청소년수련관이었고요. 민속학과를 졸업해서 풍물을 하며 아이들과 놀았죠. 그땐 아이들이 ‘내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실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요. 나중에 ‘내가 너네랑 재밌게 놀아줬잖아. 그러니까 나 좀 잘 봐줘.’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이후에 청소년자원봉사센터와 NGO 단체 ‘나눔문화’로 직장을 옮겼어요. 아이들 만나는 일은 계속했으니 직업이 바뀌지는 않은 셈이죠. 
     
고무신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고무신학교는 어린이와 어른들의 쉼이 있는 놀이터예요. 어른과 아이 모두 고무신학교에서 쉬고 놀면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죠. 내 안에 하나밖에 없던 이야기가 수십 가지로 바뀌어 나가기도 하고요. 종종 고무신학교가 대안학교인지 아닌지 물어보시는데, 대안학교는 아니에요. 대안학교는 어떤 교육 철학으로 아이들을 모으고 그 철학으로 아이들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출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주장은 못 하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르죠. 오히려 일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찾아올 수 있는 작은 충전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학기 중이든 방학 중이든 지치면 와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는 거죠. 
     
고무신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인 <삶의 학교>가 벌써 14학기를 맞았어요. 아이들은 <삶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 가나요?
한마디로 삶을 연습하죠. 삶을 연습한다는 건 ‘상황에 대한 상상’인 것 같아요. 살면서 있음 직한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거죠. 가령, ‘길 가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면서 친구를 사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에 관한 물음들.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을 공교육에서 배운다면, 이곳에선 ‘안 해도 되는 것’, ‘하면 즐거워지는 것’을 경험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깊이 고민해보는 거죠. 
     
지난 주말 고무신학교 <삶의 학교> 수업을 청강했어요. 아이들이 선생님 턱수염을 만지고,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낯설더라고요.  
고무신학교에 금지어가 두 개 있어요. 선생님, 그리고 엄마, 아빠. 선생님이란 말을 쓰지 않는 건 우아한 말로는 상호의존성을 낮추는 거예요. 일종의 사심이긴 한데, 선생이 되는 순간 귀찮아져요. 일거수일투족 봐줘야 하고, “화장실 가도 돼요? 물 먹어도 돼요?” 아이들도 끊임없이 묻죠. 학교 가서 질문할 때도 아이들은 계속 망설이잖아요. ‘이 질문이 맞는지, 틀린지’. 우리 사회에서 질문이 없어진 이유죠. 이곳에서 고무신은 그냥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해요. 그게 고무신학교의 교육 철학이라면 철학이고요. 그냥 어른 친구가 되는 거예요. 잘못하면 혼낼 때도 있지만, 나중에 반드시 사과하죠. 그럼, 아이들이 그래요. "그래, 다음부턴 그러지 마." 
     
장난치는 순간이 사라진다는 것 
     
고무신은 요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글쎄요,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가? 가령 서울혁신파크는 혁신을 화두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잖아요. 일종의 반향이나 운동 같은 거죠. 형식은 상관없어요. 그런 흐름 안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놀이’ 말고, ‘장난치자'는 거예요! 아이들이 장난칠 수 있게 ‘눈감아주기’ 혹은 ‘보지 말기’. 언제부턴가 놀이는 옳은 것, 해야 하는 거잖아요. 놀이치료, 놀이수학, 놀이영어… 놀이 과잉이랄까.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재밌어하고 필요로 하는 건 사실 ‘장난’이에요. 전 어렸을 때 긴 풀 뭉치를 엮어서 친구가 걸려 넘어지는 걸 보거나, 구덩이를 파두고 흙을 살짝 덮어 누군가 빠지길 기다리면서 놀았어요. 그 순간은 철저하게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이었죠. 나에게 깊어지는 시간이고요. 고민하고 상황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시간이 요샌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놀이’, 혹은 ‘장난’은 왜 필요하죠?
어른들은 요새 아이들이 잘 놀지 못한다고 걱정하는데, 그런 걱정은 사실 과거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대학생, 혹은 청년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 뭐 하고 놀았는지 신나서 이야기한다는 거죠. 사실 아이들은 지금도 잘 놀고 있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다만,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공개적인 공간에서 무리 지어 놀아야 논다고 여기는 것이죠. 제 기준에서 놀이는 아이가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간이에요. 장난도 그 맥락이죠. 다만, 놀이를 어른들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결정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계속 사라지고 있어요. 시간표대로 움직이잖아요. 방정환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꿈즈럭 어린다'는 것은 아이의 생명이고 생활의 전부다." ‘꿈즈럭 어린다’는 건 활동한다는 뜻이죠. 우린 "장난치지 마!", "가만히 있어!"란 말을 쉽게 하는데, 아이에겐 그보다 가혹한 말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고무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일단 제가 배워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신묘한 답들을 아이들이 알려주거든요. 그 답들이 내게 와 다른 아이와 어른들을 만나죠.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선 여전히 제가 머리를 안 굴려도 돼요. 어른들 만나면 제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설득하거나 어떤 답을 찾아주는 식인데 아이들 만나면 내 이야기를 그냥 하면 되죠.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넓군요. 
더 깊고 근원적이죠. 니체가 그랬잖아요. 인간 정신 발달의 마지막 단계가 어린이라고. 어린이들은 자유롭고, 또 잘 잊죠. 가지고 놀던 것도 다 놓고 가요. 다시 만들고 시작하면 되니까. 실패를 오롯이 받아들이죠. 혁신파크도 이런 아이의 마음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곳에서 하는 일이 실패에 대한 공유이고, 실패가 우리의 숙명인데 그런 경험 없이 가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동안 아이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만나오셨잖아요.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어떻게 기획하시는지 궁금해요. 
여름, 겨울방학마다 3박 4일씩 같이 살아보는 ‘산골 모둠살이’, 역사 현장에 찾아가 공부도 하고 체험활동도 하는 ‘역사캠프’, 방과 후 활동으로 ‘놀이논술’도 했고요. '놀이논술'은 봄이면 봄, 주제에 맞는 놀이를 찾고,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거예요. 아이들을 놀게 하고 싶은데, 마냥 논다고 하면 학교에서 싫어하니  놀이를 논술과 함께 푼 거죠. 실제로 그 글을 모아 <고무신학교 놀이논술>이란 책을 내기도 했고요. 프로그램 기획은 보통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시작돼요. 아이들이 ‘다르게, 혹은 낯설게’ 볼 수 있는 주제가 뭔지 고민하고요. 이번 <삶의 학교> 주제는 ‘도구’인데, 망치, 송곳 등을 다뤘어요. 송곳을 이용해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송곳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도 하죠. 주제어를 하나 정하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제게 불쑥불쑥 다가와요. 
     
우리는 촌장처럼 ‘그저 잘 먹일 뿐’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음.... 일하죠? (웃음) 수업 준비하고 컨설팅하고 행사 준비도 하고요. 안 그래도 애들이 가끔 물어요. ‘우리 안 만날 땐 뭐해?’ 그럼, 그냥 ‘휴, 힘들어.’ 하죠. 어떤 애들은 ‘고무신이 하는 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묻기도 해요. 한 친구는 캐나다에 가 있는데, 고무신학교 캐나다 지부를 만들 거래요. 
     
아이들을 만나는 건 즐거우면서 동시에 어려워 보여요. 막상 아이들 앞에 서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요.
어른들은 가려듣기도 하고, 판단해서 아니다 싶으면 버리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겐 절대적일 수 있죠. 그러니까 헷갈리는 질문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해요. 어른들은 계속 정답을 말하려고 하잖아요. 고무신학교에서는 그래서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으로, 각자의 생각하는 능력, 가치관, 철학을 묻는 논술형 시험)를 연습해요. 질문 하나 던져놓고 아이들끼리 토론하는 건데, 치열하게 싸우죠. 그런 과정이 ‘생각하는 연습’, ‘살아보는 연습’이고요.
     
고무신학교의 규칙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더라고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먹는' 것은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거죠. ‘잘 자는’ 건 내 안에서 동화되고 발효되는 시간이에요. 그러고 나면 잘 내려놓을 수 있죠. 고무신학교는 ‘잘 먹는’의 한 축 같아요. 때론 노래로, 그림책으로, 생각하기로 먹죠. 잘 자고, 잘 싸는 건 철저히 아이들 몫이에요. 우리가 할 일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촌장처럼 그저 잘 먹이는 거죠. 건강한 밥을 해서 먹이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서울혁신파크에서 ‘막놀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시죠. 앞으로 파크에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막놀이터를 통해 우선 파크에 있는 다양한 야외놀이 시설에서 아이들과 놀아 보려고 해요. 송하재는 미로처럼 되어 있어 숨바꼭질하기 좋고, 피아노숲은 넓어서 달팽이 놀이를 하며 놀죠. 파크에 아이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 중이에요. 아이들이 이곳 혁신가들과 편하게 인사하며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입주단체들과 소통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개인적인 바람은 파크 안에 흙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흙은 그냥 파기만 해도 재밌잖아요. 그만한 안전장치도 없고. ‘전봇대집’ 옆이나 ‘피아노숲’은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놀기 좋아요. 보는 공원이 아니라 노는 공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고무신학교의 꿈은 무엇인가요?
맨 나중엔 숲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요. 고무신학교가 숲에 있는 모습이죠. 하지만 제일 큰 꿈은 고무신학교가 없어도 되는 거? 나 같은 사람이 굳이 없어도 되는 거죠? 내가 이 일을 안 하면 되는 건데, 그럼.... 전 뭐 먹고 살죠? 

혁신가의 ‘가장 행복한 순간’

1. 서울혁신파크 송하재 안. 중정으로 나누어진 공간과 미로 같은 길은 숨바꼭질을 하거나 지렁이 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 담 저편의 적이 보이지 않으니 긴장감은 배가 된다. 오늘은 아이들과 송하재 모두, 서로에게 좋은 친구를 만났다. 

2. 온 힘을 다해 뛰논 뒤 노곤해진 몸. 전봇대집 안 누울 자리가 보이자 고무신도 아이들도 동시에 몸을 던진다. 고무신 곁을 떠나지 않고 노는 아이들에게 “오후 수업하지 말고 도망갈래?” 위험한 뒷거래를 시작하는 고무신. “아~ 계속 놀고 싶다!” 여기저기서 금기어들이 터져 나온다. 공부하기 싫은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매한가지. 

3. 똑같은 놀이를 계속하기엔 지루하니, 조금씩 새로운 놀이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좀 놀아본 어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라고 말하는 고무신. "아예 저만치 빠져서 아이들끼리 놀게 하거나, 죽기 살기로 같이 놀거나."

4. 오늘의 주제 ‘송곳’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 누군가에게 송곳은 ‘따돌림받는 외로운 친구’이기도, 또 누군가에게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고무신 가로되, “송곳을 째려봐. 그럼 송곳이 말을 할 거야.”

5. 오늘의 활동은 '레인스틱' 만들기. 원주민들이 기우제를 치를 때 쓰던 의식용 제구에서 유래한 타악기다. 송곳을 이용해 작게 구멍을 뚫고, 이쑤시개를 꽂은 통 안에 콩, 팥, 메밀 등 곡식을 흘려보내면 차르르~ 안데스의 맑은 빗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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