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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19. 2018

[서울혁신파크 혁신가] 박선하의 윔플

#11 박선하의 윔플

맛있는 한 끼로 짓는 내일의 울타리

박선하의 윔플<서울혁신파크>

탁탁탁. 오이를 반으로 썰어 씨를 발라내고, 소고기는 달군 프라이팬에 치르르 볶아낸다. 달그락달그락. 서툰 손길로 따뜻한 밥 한 상을 준비하는 사람들. 골똘히 고른 그릇에 음식을 정성스럽게 담아내면 차린 요리마다 셰프의 애정 어린 조언이 쏟아진다. 셰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수강생들 표정은 활짝 피었다가도 금세 심각해진다.  
윔플은 요리를 통해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소셜벤처다. 저소득 여성, 한부모 가정을 가장 중심에 두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이직을 준비하는 중년까지 윔플과 함께 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맛있는 한 끼로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내일을 준비하는 윔플의 박선하 대표를 만났다.
     
상상하고 실현하는 '자립 놀이터'
   
처음 '창업’을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방송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증권, 경제 분야에서 일했는데 ‘가진 돈으로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 것인가’가 화두였죠.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관심있는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었죠. 방송국을 그만두고 사회적경제와 복지 분야에서 각각 일했어요. 두 분야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사회적경제가 복지 영역보다 좀 더 역동적으로 다가왔어요. 더 알고 싶기도 했고요. 유누스 그라민은행 창립자 말이 깊이 와닿았거든요.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소셜픽션’을 써야 한다! 사회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현하는 것이 제겐 더 주체적이고, 지속 가능해 보였죠.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소셜픽션’을 쓰게 되리란 상상을 하셨나요? 
창업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웃음) 그냥 모범생이었어요. 좋았던 점은 어머니가 뭐든 믿고 지지해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신을 갖게 됐고 책임감도 커졌죠.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그즈음 인생의 키워드가 생긴 것 같아요. 여성과 환경, 그리고 인권. 이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허황된...(웃음) 농담이고요. 여전히 배우는 중이에요. 어려워요, 많이.

윔플은 어떤 곳인가요?
‘women’s playground’, ‘여성들의 놀이터’라는 사명이 있어요. 저소득 여성 가장의 자립 모델을 만들고, 지역 기반의 사회적 경제를 확산하는 것이 목표예요.
     
대상을 저소득 여성, 한부모 가정 등으로 좁히신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주로 식당 같은 외식업 쪽에서 일하셨거든요. 단순 노무직이다 보니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게를 꾸려나가시는 게 버거워 보였어요. 많은 여성 가장이 직업 안전성 없이 단순 노무직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회문제를 봤죠.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 ‘요리’라는 일상적 재능을 전문적인 능력으로 키워드리고 싶었어요. 자립을 돕는 모델을 만들고 싶죠.
     
혼자서는 못해요, 다 같이 가야죠
    
윔플의 사업 분야가 꽤 다양하더라고요.
크게는 교육, 제조, 컨설팅 세 분야예요. ‘행복한끼’라는 교육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요. ‘여성들의 행복한 끼로 행복 한끼’를 만들겠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죠. 요리사 양성 교육을 받은 분들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시는 분들을 관련 기관에 연결해 드리고, 창업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레시피 개발이나 창업 환경에 대한 컨설팅을 해드려요. 종로에 '운니사랑방'이라고 전통주 레스토랑을 직접 창업하신 분도 계시고요. 덕분에 다른 수료생분들도 그곳에서 배운 레시피를 바탕으로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했죠. 실전 경험을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업 마지막 파트에 직접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드리고 있어요.
‘내 손 안의 작은 식당’이라는 컨셉으로 창업일지를 쓸 수 있는 어플을 제작 중이기도 해요. 창업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죠. 무엇보다 셰프님과 윔플 수료생분들이 함께 레시피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가 있는 분들이 집에서도 요리에 대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죠.
     
윔플을 찾는 분들의 갈증은 주로 어떤 것인가요?
클래스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저소득 여성을 대상으로 한 클래스는 윔플 초창기부터 꾸준히 진행돼왔는데, 요리에 재능이 있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한 수업에 세 분 정도만 모시고 진행하는 실습 위주의 클래스죠. 다행히 취업까지 잘 연결된 분들이 70퍼센트 정도 돼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끼죠.  
지금 진행 중인 ‘로컬레시피 크리에이티브 양성 과정’은 소자본 창업을 염두에 두신 분들이 많아요. 창업을 쉽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외식 창업은 폐업률이 높아요. 수강생 중 예비 창업자 비율을 늘린 이유도 창업자가 ‘자영업 시장이나 요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요리는 외식 창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수료생 중 ‘내 길이 아니다’ 포기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 역시 저희가 바라던 그림 중 하나였어요. 적지 않은 시간과 자본이 드는 일이잖아요. 자기한테 맞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맞아요.  
     
윔플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나요?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내가 쉽게 생각했구나’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가령, 미혼모 친구들이나 한부모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탁아’예요.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으면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어떤 경우엔 취업이 되더라도 국가에서 받던 지원금을 포기해야 할 경우가 생겨요. 어떤 선택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전문성만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예요. 시행착오를 계속 겪고 있어요. 
     
윔플의 교육 대상이 저소득 여성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상을 점점 넓히고 계신가요?
사실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윔플이 가령 저소득 여성 네트워크라는 정체성을 가질 때 그것이 갖는 힘을 무시할 순 없어요. 하지만 이분들이 직업 교육을 잘 마치더라도 사회에 진출했을 때 섞이지 못하고 탈락하는 비율이 높아요. 처음부터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는 게 도리어 맞다고 판단했죠. 수업 때 아이를 안고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제가 아이를 대신 안고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이 방법이 맞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문제가 수학처럼 명료하게 풀리지 않아요. 복지나 다른 분야에 계속 눈을 돌리게 돼죠. 선행돼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사회적경제에서 협력,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혼자 할 수 없어요. 
     
얼마 전 홍대에 바나나당이라는 음료 매장도 내셨잖아요. 반응은 어떤가요?
운동하시는 분들이나 대학생에게 호응이 좋아요. 어린이집 같은 데서도 문의가 오고요. 한 1년 운영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하려고요. 숙성된 바나나와 신선한 우유가 베이스인데, 그밖에 곡류, 채소로 맛을 더해요. 무설탕의 건강한 한 끼 음료죠. 사실 윔플의 소셜 프렌차이즈 모델을 확산시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윔플 수료생 중 소자본 창업을 꿈꾸는 분들께 바나나당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취업으로도 연결되고요. 윔플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죠. 
     
이제,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시간

윔플을 운영해오시면서 도움 받았던 사람 중에 생각 나는 분이 계신가요?
음... 공익마케팅스쿨 오승훈 대표님이요.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 때 멘토셨어요. 서울혁신파크에도 입주해 계시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너희가 생각하는 사업을 직접 해봐야 한다”면서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셨어요. 매출이 잘 나지 않는 시장 안의 식당들을 선정해 프로 셰프님들과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해 드리고, 시장에 있는 식재료들로 아이들과 다문화 여성 대상으로 쿠킹클래스도 열었어요. 우리의 인적 네트워크와 자원을 활용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미리 돌려본 거예요. 마케팅 등 보완해야 할 부분도 알게 됐죠. 운이 좋았어요! 
     
함께 하는 유명한 셰프님들도 많으신 것 같아요. 어떻게 인연이 되셨나요?
윔플이 다른 저소득 여성 대상의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인 것 같은데, 창립 멤버 김소봉 셰프님은 첫 클래스부터 지인 소개로 함께하시게 됐어요. 계속 인연이 이어지는 이유는 셰프님도 저소득 여성의 자립 모델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이에요. 재능을 사회에 유익하게 쓰고 싶어 하시는 셰프님들과 계속 일하게 되더라고요. 우연과 필연의 적절한 조화죠.  
    
서울혁신파크에 오신 지 1년 정도 지나셨죠. 파크는 윔플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개소 전부터 파크를 알고 있었어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플랫폼으로써 기대가 있었죠. 맛동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기도 했고, 집도 가까웠어요. 제게 파크는 공간인 것 같아요.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요. 미션별로 모이거나 주제별 토론회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사람이 모이는 공간으로 의미를 갖게 됐으니,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어요.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윔플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소득 여성 가정의 자립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리 비전이라면, 윔플을 거쳐 간 예비 창업자나 한부모 여성 가장들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가족 여행을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사회적 목표예요. 외식업계 업무 환경이 열악하거든요. 윔플 식구들과는 이 다음을 함께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월급도 오르고, 결혼도 하고, 복지도 더 좋아지고요. 무엇보다 지금은 깊이를 더해야 하는 시기라고 봐요. 다양한 사업 중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키워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그리고, 도약해야 할 시기죠. 

혁신가의 '일요일 오후'

"집에 가서 배웠던 요리 한 번 해보셨어요?" 셰프님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쏟아진다. 모양이 헝클어지거나 맛이 나지 않거나. 배운 대로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 영 답답했던 모양이다. 설명 하나하나 듣다 보니 어느새 '요리는 과학이구나' 싶다. 모든 실패의 사례마다 이유 없는 것이 없다. 슬쩍 훔쳐본 수강생의 노트는 필기로 빼곡하다. 학창시절을 알 길 없으나, 지금 만큼은 모범생 포스가 물씬.

마산서 올라온 수강생 용곤 씨. 몇달 과정의 윔플 수업을 듣기 위해 친구 아버지 가게 일을 도우며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오늘 수업에서 혼자 짝이 없었던 터라 두 명씩 팀을 이룬 다른 수강생보다 손이 두 배는 더 바빴다. 연말 즈음이면 다시 마산으로 내려가 자기 이름으로 된 가게를 차려볼 생각이다.  

홍대에 위치한 바나나당. 올 4월 문을 열었다. "바나나는 숙성되면 면역력이 8배는 더 높아져요. 설탕도, 물도 넣지 않아 건강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그만이에요." 박선하 대표가 자신 있게 말한다. 묵직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오늘 함께 만든 메뉴는 삼색 소보루 돈부리와 명란 크림 파스타다. 차린 음식을 맛보는 시간. 접시에 담은 모양새부터, 국물량과 준비된 소스, 다진 실파를 이용한 마무리 장식까지. 요리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긴장도 잠시. 완성된 맛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싹싹 그릇을 워 나간다. 누군가 준비해 온 수제 맥주도 질세라 분위기를 돋운다. '언젠가 이 정성스러운 상차림을 나만의 가게에서 선보일 날이 오리라' 기대도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오늘도 참, 맛있는 일요일 오후다. 


글, 사진 ㅣ 서울혁신센터 홍보파트 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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