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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21. 2018

[서울혁신파크 혁신]신강규환의 사회참여극단 돌쌓기

#13 신강규환의 사회참여극단 돌쌓기

극장을 뛰쳐나간 그 광대는 어떻게 되었나

신강규환의 사회참여극단 돌쌓기<서울혁신파크>

분주한 걸음이 오가는 삼선동 마을 골목, 나무 재질의 <돌쌓기 극장> 간판이 눈에 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극장으로 두세 계단 정도 내려가니 인기척을 느낀 신강규환 대표가 얼굴을 보이며 먼저 인사를 한다. 극장은 서른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객석과 폭이 깊은 무대로 여느 소극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목재로 만든 선반이며 의자, 손수 제작한 익살스러운 인형 등 사람의 손때가 극장 곳곳에 묻어 있었다. 

사회참여극단 돌쌓기(이하 극단 돌쌓기)는 지난 5년 간, 사회문제를 톺아보고 이슈화하는 거리극을 꾸준히 이어왔다. 지엠오(GMO), 세월호 사건, 핵발전소 건설 등 극의 주제는 그의 시선이 머무는 사안으로 시시각각 바뀌었고, 연극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그들의 무대가 되었다. 돌쌓기 극장은 삼선동 주민의 사랑방이자 주민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내는 공간이다. 신 대표는 극단 돌쌓기 안에서 극을 통해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그 다음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그때 마음이 좋은 일을 해왔을 뿐, 어떤 한 단어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람. 신강규환 대표를 만났다. 

예술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나요?  
중고등학교 통틀어 연극을 본 게 세 번밖에 안돼요. 나름 문학소년이었지만, 국문과에 떨어지는 바람에 경영학과를 갈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신입생 시절 제 모토가 ‘동아리를 통해 내 길을 찾자’였어요.(웃음) 입학하자마자 9개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끝까지 살아남은 게 연극 동아리였어요. 그땐 이게 가장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악마의 덫에 걸린 줄 모르고...(웃음) 연극은 자기 자신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돼요. 그 점이 좋았죠. 1학년 때 주인공 역할을 맡은 것도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주인공이었다면연기를 잘하셨던 거죠?
운이 좋았죠. 사실 배우보다는 연출을 더 많이 했어요. 연출의 역할 중 하나가 배우가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돕는 거거든요. <파이이야기>를 극으로 올릴 때는 물에 빠지는 연기 연습을 위해 인천 앞바다에도 갔었어요. 부표도 막 떼어 오고... 욕을 좀 먹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동아리 졸업논문 격으로 서울 내 연극 동아리를 모아 축제도 열었어요. 대학 동아리는... 여러모로 참 중요합니다.(웃음) 
  
저도 공감이 많이 돼요졸업 후연극의 길을 계속 가신 건가요
아뇨. 고향에 내려가 인문학 공부를 했어요. ‘연극은 좋아하지만 이게 과연 내 인생인가?’ 싶었거든요. 책을 계속 읽으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했죠. 그 가치가 제겐 ‘식의주’더라고요. 특히 먹거리요. 당시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어머니도 갑상선암으로 고생 중이셨어요. 먹거리에 신경을 쓸수록 점점 몸이 건강해지다니까 그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됐죠. 그래서 아주 야심 찬 포부를 갖게 되는데, ‘전국 100개 대학 앞에 친환경 식당을 차리자.’는 거였어요. 당장 요리학원부터 등록했죠. 친환경농업연구회니 대구한살림도 가보고, 친환경 식당에서도 일했어요. 그러던 중 제 지인이 대안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애들 밥도 해주고, 연극도 좀 가르쳐 주면 어때?”하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마침 농사지을 땅도 있다고 하니, ‘이거다!’ 싶었죠. 그렇게 강원도 생활을 시작했어요. (웃음) 
  
예측 불가의 날들이었군요
네, 하지만 대안학교 생활은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아침에 눈 떠 아이들 밥 차리는 시간도, 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좋았죠. 문제는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칠 때마다... 정말,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는 거죠. 자괴감이 들 정도로 재밌었어요. 예술에 몸담고 있을 땐 몰랐는데, 안 하고 있으니 알겠더라고요. 예술 없는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 예술이 왜 중요한지를요.

연극이 끝난 뒤에 오는 것들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오셨군요
네, 돌쌓기 초창기 구성원끼리 정했던 중요한 방향은 ‘연극으로 세상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켜보자’는 것이었죠. 그러려면 관객을 기다리지 말고, 연극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찾아가는 공연’이 돌쌓기의 큰 축이 됐어요. 다른 한 축은 마을 중심의 문화공간인 ‘마을 극장’이었고요. 2014년 문을 열었어요. 마을 사랑방도 되고, 배움터도 되는, 빈 공간의 가능성을 무한히 살릴 수 있는 열린 공간이죠. 

처음 했던 찾아가는 연극을 기억하세요
2012년 녹색연합에서 탈핵 공연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사라지지 않는 개>라는 작품이었는데, 영덕부터 부산까지 핵발전소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극단 돌쌓기가 생각하는 것을 직접 실험해본 거죠.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연극이 지역 활동가가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됐거든요. 우리 연극을 통해 또 다른 활동과 이야기들이 계속 태어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활동이 재미있구나! 마음에 든다!’ 하고 생각했죠.  
  
<돌쌓기 극장>의 주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극장은 콘텐츠로 풀어나가기보다 빈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더 크게 가져왔던 것 같아요. 사랑방도 되고, 교육 공간도 되고, 공동체 상영도 하고요. 실제로 극장은 배움이 있거나 자기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그런데 더 집중했고요. 예를 들자면, 돌쌓기의 주된 텍스트 중 하나가 <광대 워크숍>이에요. 정해진 광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광대를 꺼내는 거죠. 하고 나면 자유롭고 행복해 져요. 광대는 자신을 긍정하는데서 시작하거든요. 사람마다 자기 안의 갖고 있는 광대가 달라요. 저는 ‘술 취한 철학자’ 광대를 갖고 있습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지엠오(GMO) 반대 집회 때 등장했던 거대 인형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이미지가 강렬했거든요
<6.4 치킨>이라고 청년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전문 연극 배우와 일반인 청년들이 함께 만든 극이었죠. 그냥 지켜보는 관객이기보다 자신이 직접 연극의 배우일 때 메시지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두 달 열심히 연습해서 3회의 공연을 했죠. 하루는 마로니에 공원에 사람이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는데, 관객 수를 세어보니 대략 300명 정도 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때가 우리 메시지를 한 눈에 전할 수 있는 큰 오브제를 떠올린 계기였어요. 
  
그러데왜 하필 지엠오(GMO) 반대 집회를 위한 거대 인형을 만드신 거예요
메이저 미디어나 다른 시민단체들이 조금씩 관심을 잃어가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를 진득하게 파 보고 싶었어요. 제겐 그 문제가 지엠오(GMO)였죠. 슬로푸드한국협회와 함께 서울혁신파크 19동에서 대형 인형을 만들었어요. 파크가 문을 열기도 전에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플래카드보다 인형을 먼저 본 시민들이 친근하게 다가왔죠. ‘부드럽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투쟁 문화’로 바꿔보자는 것이 저희 생각이었어요. 작년 2016년 촛불 집회 때 ‘아, 이제 우리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고요....(웃음)
  
인형을 서울혁신파크에서 제작하신 줄은 몰랐네요대표님이 보신 파크는 어떤 공간인가요?
초창기부터 파크를 알았어요. 서울혁신파크 개관식 때 거대 인형을 제작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함께 준비했고요. 파크는 혁신이라는 화두의 집합소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장소가 너무 넓고 인력이나 관의 지원은 좀 부족하지 않나... 혁신의 집합소가 되려면 정말 긴 시간과 호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 나가야죠. 

단순하게, 그냥 좋으니까
   
시기별로 다른 사회문제에 주목해 오셨잖아요세월호핵발전소 건설지엠오(GMO)... 올해는 마을 이야기에 집중하고 계시죠?
어느 날 제게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재개발로 이곳의 감정평가를 해야 하니, 소득 증명 같은 것을 내라는 거죠. ‘뭐지?’ 싶어서 이웃들에게 물어봤는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알아보니 문제가 심각했어요. 편법과 비리가 난무했죠. 공공에서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민간에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을 미디어 ‘삼선NOW’를 만들어 다큐멘터리와 소식지를 만들었죠. 취재할수록 이게 어려운 문제이긴 해요. 지엠오(GMO)의 선과 악의 경계가 차라리 분명해 보일 정도로요. 개인적으로는 도시에서의 마을공동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돈만 더 주면 집 팔고 떠날 사람들끼리 마을공동체를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잖아요. 특히 청년에겐 주거가 없고, 그렇다 보니 더더욱 그들에겐 마을이 없어요. 청년 주거 문제를 꼭 해결해야해요. 마을공동체의 더 작고 일상적인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쌓기는 사회참여와 예술 중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는 단체인가요
처음엔 반반이었는데, 지금은 엔지오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전 연극의 범위를 굉장히 넓게 봐요. 2015년에 했던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내는 목소리>가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의 예죠. 그때가 세월호 유가족이 광장에서 비 맞으며 농성할 때였거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유가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극장 앞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지나가는 시민의 목소리를 녹음했죠. 시선을 끌기 위해 매일 다른 공연을 했고요. 세월호 유가족이 그 공연의 마지막 관객인 셈이었죠. 다음 해에도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시민과 함께 미수습자 아홉 분의 거대인형을 함께 만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추구하는 연극은 결과보단 과정인 것 같아요. 결과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결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들로 마음이 모이고 이어지도록 하는 게 제겐 더 중요해요. 하면 할수록 타인의 시선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돼요. 이런 과정이 쌓여서 돌쌓기의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엔 남미 여행을 준비 중이고요. 
  
뜻밖의 소식이고, 예상 못 한 여행지네요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녹색평론에 실린 글을 읽고 생각을 굳혔어요. ‘남미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혁명은 언제나 예술과 함께 했다’는 취지의 글이었죠. 우리와 다른 가치관이 작용하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예를 들면, 시인(예술)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확인해보고 싶어요. 단체를 운영하다 보면 계속 효율을 생각하게 돼요. 그럴수록 지향하는 활동과 계속 멀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과연 그게 맞나?’ 싶어요. 소중한 것과 점점 멀어지거든요. 활동가가 불행한데, 행복한 사회? 이런 건 더더욱 안 와 닿아요. 일단 제가 행복해야죠. 그게 제일 중요해요. 
  
남미 여행을 다녀오면 돌쌓기의 다음 시즌이 시작되겠군요힌트를 좀 주실 수 있나요?
인형을 통해 사람과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골로 다시 갈 생각이에요. 저는 청년들이 서울을 버렸으면 좋겠거든요. 처음엔 타격이 크겠지만 도시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겁니다. 그걸 제가 스스로 먼저 실천하길 원하고요. 시골과 서울을 도는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 같은데, 단순 회귀이기보다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전에 했던 활동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대안을 찾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라디오스타> 같은 질문을 하고 싶네요. '신강규환에게 예술이란?' 
예술은 나만의 고유성이 한껏 발휘된 것? 그럴 듯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이를 감동시키는 것인 것 같아요. 음... 하지만 저는 ‘활동가’나 ‘연극인’으로 규정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그냥 나일 뿐이지’ 라는 생각을 계속해요. 그냥, 좋은 일이면 하는 거죠. 활동은 항상 변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극단 돌쌓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그게 돌쌓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꼭 필요한데 비어있다고 생각되는 역할을 계속할 것 같아요. 

혁신가의 무대

2012년 <사라지지 않는 개
녹색연합과 함께 한 탈핵 공연. 마을 이장이 키우는 사납고 무시무시한 개가 있는데, 그 개가 싼 똥이 너무 독해서 분해가 안 될 정도라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는, 뭐 그런 내용을 담은 연극입니다. 여전히....... 제발, 탈핵합시다! (그리고 저는 개를 사랑합니다)

2014년 <삼선포차
<당신의 연극을 만들어드립니다>의 첫 번째 공연. ‘주민들이 연극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포장마차 세트가 바로 술집으로 변해 다 같이 뒤풀이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보러 오신 관객이 다음 해 두 번째 공연의 주인공이 되셨어요.

2015년 몬산토 반대 시민행진
거대 인형이 먼저 가고 피켓은 뒤에 따라갑니다. 전단지를 억지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저게 뭐야?’하고 궁금해하면서 다가오시고, 직접 전단지를 받아가셨어요. 그날 하루 3000장 정도를 뿌렸죠. ‘거리 시위=재밌겠네!’ 이것이 돌쌓기가 생각하는 변화였습니다. 

2017년 장수마을 인형 만들기 
수업 시작할 때는 ‘나 이제 안 할 거야’하고 투덜거리시더니, 저녁 되면 ‘바니쉬 발라도 돼?’하고 연락하시는 분들. 인형 만들기는 ‘죽어 있는 것’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주는 거죠. 내가 어떤 존재를 만들었다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주고, 감정을 이입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ㅣ 서울혁신파크 혁신기획단 홍보파트 문하나
사진 ㅣ 문하나, 사회참여극단 돌쌓기 신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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