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서울혁신파크에선 무슨 일이②] 지역사회와 상생하려는 이유
국내 최초·최대의 사회혁신 집적 단지인 서울혁신파크가 2015년 6월 2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문을 연 지 어느 덧 3주년이 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을 교육하고 이들의 비즈니스 기회를 촉진한 스페인 빌바오의 '데노킨(Denokinn)'을 넘어서는 거대한 실험 공간이다. <오마이뉴스>는 '모여라 연결하라 창조하라'의 슬로건으로 출범한 서울혁신파크의 입주단체들을 만나 혁신파크의 어제, 오늘, 내일을 조망한다.
"서울시 25개 구청 중에서 은평구가 재정자립도가 23위다. 우리도 돈이 되는 걸 유치해야 하는 거 아니냐?"
서울혁신파크(아래 혁신파크) 사업설명회가 처음 열린 2013년 5월 3일 은평구 문화예술회관 대강당. 행사장 한쪽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3만 평이 넘는 서울 강북의 마지막 대규모 개발예정지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진 상태. 나흘 뒤 서울시는 "충북 오송으로 이전하는 질병관리본부 터에 청년실업, 고령화, 환경, 세대갈등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혁신파크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2015년 6월 23일 혁신파크에 입주할 111개 업체가 선정되고, 다시 3년이 지나 그 2배가 넘는 단체들이 혁신파크를 속속 채우고 있지만, 논쟁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 구청장 후보는 "혁신파크에 컨벤션센터와 복합문화시설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비록 낙선해서 약속이 물거품이 됐지만, 혁신파크 초창기부터 나온 일부 지역주민들의 개발 욕구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혁신파크 입주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영화제작소 눈'의 강경환 대표는 2015년 '전대미문 프로젝트'로 극장동에 입주한 뒤 만 3년을 혁신파크에서 보냈다.
영화영상 제작 분야 최초의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는 '눈'은 국립보건원 대강당이었던 폐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회적 약자들이 주체가 되는 영화를 촬영하거나 팟캐스트 녹음 등의 용도로 쓰고 있다.
서울혁신파크(극장동)에 입주한 '영화제작소 눈'의 강경환 대표.<손병관>
장애인들이 영화를 직접 만들면서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을 지원했고, 지난해 4월에는 세월호를 주제로 한 영화 상영회도 열었다. 혁신파크의 지원이 없었다면 장소 대여도 쉽지 않았을 일들이다.
혁신파크의 존재 자체가 외부에 영감을 주는 측면도 있다.
"지난주에도 충남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해보려는 활동가들이 '눈'을 다녀갔다. '이런 분야도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네'라고 영감을 준다. 부산, 광주에도 영화제작 관련 사회적기업이 생겼다. 미우나 고우나 서울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다 보니 이곳에서 하는 실험이나 시행착오를 지켜보고 활동가들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강경환 대표)
경기도 오산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회원 20여 명도 지난달 28~29일 혁신파크를 다녀갔다. 주조양 센터장은 "마을공동체 등과 관련해서 사업의 구체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혁신파크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66개 단체 3150명이 이곳을 견학했고 올해도 82개 단체 1494명(상반기)이 다녀갔다. 이틀에 하루꼴로 외부 단체들이 혁신파크를 찾은 셈이다.
혁신파크의 성공 조건
문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다.
혁신파크의 설립 취지는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들을 단순히 모아놓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런 단체들을 모아놓으면 새로운 형태의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채워야 한다. 혁신파크의 슬로건(모여라 연결하라 창조하라)도 이를 염두에 뒀다고 할 수 있다.
강경환 대표는 "단순히 모아놓았다고 협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만 바라보고, 프로젝트 끝나면 흩어지는 방식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강 대표는 "일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특히 사회혁신은 능력과 자금, 시간, 비전이 다 맞아야 한다"며 "3년이 지났으니 진짜 (효과)는 지금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의 강신호 소장도 2015년부터 이곳에 터 잡은 초창기 멤버다.
독일산 바퀴벌레 임상실험장을 넘겨받아 지금의 연구소를 만든 그는 "초창기 입주업체들의 80% 정도가 남아있고, 20%는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났다"고 추정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비용 감면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도 많았던 것같 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소만 우리에게 임대해주고 리모델링은 1년 정도 시간 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작년까지 냉난방 안 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도 부지기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입주단체들의 소통은 서울시에 대한 공동대응으로부터 시작됐다. 입주단체 자치회가 2016년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30, 40대가 주축이 된 자치회 2기가 출범했다. "찬반 의견이 동수일 때는 (연장자가 아니라) 연소자 의견을 따른다"는 독특한 약관 조항도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강 소장은 "처음에는 이렇게 열악한 곳에 왜 불렀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서울시는 우리 스스로 자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길 바랬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맛동(먹거리 관련 단체들의 입주공간)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켜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최근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생기는 에너지로 서류를 없애는 분쇄기를 만들어 혁신파크에 기증했다.
강 소장은 "서울시가 대놓고 실적을 내놓으라고 압박하지는 않지만, 우리 내부에도 뭔가 혁신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초기의 좌충우돌을 겪었으니 방향성을 잡으면 혁신파크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파크에 구내식당이 없는 이유는?
혁신파크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의 연대도 필수조건이다.
이는 상주인력과 방문객을 합치면 하루 1800~2000명이 대단지에 변변한 구내식당 하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창기부터 "혁신파크 안에 구내식당 하나 만들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그때마다 강한 반론에 부딪히곤 했다.
강경환 대표는 "식당을 만들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거 만들고 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섬'이 된다. 혁신파크가 성공하려면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이미지를 계속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입주단체들이 눈앞의 이윤만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전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혁신파크에 이것저것 만들자는 얘기는 무성했지만, 저는 '창의공원'으로서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봐요. 어려운 숙제이지만, 연구 공간의 모습을 지니되 시민들이 와서 놀아야 합니다. 색다른 공원의 모습을 가진 실험실이라고 해야 할까? 혁신파크에 호텔을 지었어야 했다, 뭘 만들었어야 했다는 말이 더이상 안 나오도록 하는 게 우리 모두의 숙제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