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혁신파크에선 무슨 일이③] 혁신파크는 병원도 독특
국내 최초·최대의 사회혁신 집적 단지인 서울혁신파크가 2015년 6월 2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문을 연 지 어느 덧 3주년이 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을 교육하고 이들의 비즈니스 기회를 촉진한 스페인 빌바오의 '데노킨(Denokinn)'을 넘어서는 거대한 실험 공간이다. <오마이뉴스>는 '모여라 연결하라 창조하라'의 슬로건으로 출범한 서울혁신파크의 입주단체들을 만나 혁신파크의 어제, 오늘, 내일을 조망한다.
7월 2일부터 서울혁신파크(아래 혁신파크)에는 작은 병원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에 5만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야하고, 매월 1만 원의 이용료도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물론 다른 병원들처럼 불쑥 찾아가 자신이 원하는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이 병원 특유의 '주치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 밟아야하는 절차가 그렇다는 얘기다.
병원의 정식 명칭은 '살림의원 건강혁신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아래 살림사협)이 서울 은평구에 운영하는 살림의원(구산동)의 분점인데, 우리나라 최초로 제대로 된 주치의 프로그램을 뿌리내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주치의 프로그램'은 "개인이 동네의 단골 의사를 주치의로 지정한 뒤, 매년 일정액을 내고 진료 및 건강관리를 받도록 하는 제도"라고 정의를 내리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답변하기 곤란한 난제들이 많은 제도다. 1948년 세계 최초로 국가의료보장서비스를 실시하면서 가장 오랜 노하우를 쌓은 영국과 21세기에 들어와서야 비슷한 취지의 제도를 도입한 의료선진국들(호주, 오스트리아, 핀란드,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 제외)이 동일한 의미의 주치의 제도를 운용하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국가별 전개 과정도 복잡하다.
그러나 '환자를 잘 아는' 주치의들의 활약에 따라서는 치료에서 예방·관리로 의료서비스의 무게중심이 바뀌게 되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과잉진료' 현상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자그마한 병치레에도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들이 전국에서 몰려온 환자들로 터져나가는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의료계에서는 '1차 의료기관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얘기한다. 이 또한 '환자들이 믿고 찾는' 주치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주치의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해진 의사에게만 진료를 받아야하니 더 불편해지는 것 아니냐", "주치의가 휴가를 가거나 휴무일에는 진료를 어떻게 받나", "(전문의가 아닌) 주치의 한 명이 어떻게 소아에서 노인까지 많은 질환을 다 진료할 수 있나", "주치의를 거쳐 다른 전문의에게 가면 비용이 두 배로 드는 게 아니냐", "등록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여행을 가면 주치의는 어떻게 되나"처럼 기초적인 질문들도 수십 가지가 된다(보다못한 한국1차보건의료학회가 이 같은 의문점들에 답하는 전자책까지 내놓았다).
제도가 도입되면 의사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의료사회의 불안감과 반발, 국민의료보험제도 시행 이후 '의료쇼핑'에 익숙해진 피진료자들의 관행,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아예 손 놓아버린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이 중첩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살림의원 건강혁신점의 개원은 '작은 성공'을 보여주려는 힘겨운 첫 발걸음이다.
이미 두 차례 병원을 개업해본 김신애 원장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살림의원 추혜인 원장의 제의를 받고 대구의 생활을 정리했다.
주변의 반응을 물어보니 그는 "내 주변 의사들이 보편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그걸 왜 하냐? 미쳤냐'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껄껄 웃었다(김 원장과 추 원장 모두 진보 성향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이다).
주치의 제도의 필수조건인 의사는 확보됐지만, 아직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의료 서비스 질의 확보를 위해 하루 30명 정도의 환자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약 7000만 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살림사협은 내년 5월까지를 건강혁신점의 시범 사업 기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영국·스페인처럼 갈 수는 없어요. 완벽하게 준비해서 주치의 제도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성해보자는 거죠. (왜 사람들이 대형병원으로 주로 갈까?) 우리나라는 의사에게 장기적인 검진을 받도록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실력 있는 의사를 택하도록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에게 스스로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만든 국가와 사회의 책임방기죠."
혁신파크에는 30~40대 청장년이 주축이 된 입주단체들이 모여 있고, 50~60대 중·노년들이 참여하는 50플러스 재단 캠퍼스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본점인 구산동 살림의원에는 대기실에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건강혁신점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혁신파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병원은 어느 지역에 들어서든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병원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얘기죠. 전 세계적으로 지역공동체가 발달한 곳을 보면, 병원이 중심이 돼서 의료와 복지가 함께 하는 사례가 많거든요. 의료와 복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죠. 구산동 살림의원처럼 건강혁신점에서도 시민단체와 사회적기업들이 폭넓게 교류하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일단은 수천만 원의 손해를 예상하고 병원을 시작한 살림사협 이사회의 용단을 높이 평가해야겠지만(웃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