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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23. 2024

[미식일기] 감천골, 강릉

짭짤한 생선구이의 신선한 사각거림, 그것은 생선쌈밥

대한민국의 독립을 부르짖고 염원했던 3월의 어느 국가공휴일, 그 기쁜 날을 맞이하여 내게는 먼 친척이 되는 L고모가 프랑스에서 한국을 찾아왔다. 그녀의 오빠, 즉 나에게는 '아저씨'뻘이 되는 J아저씨가 한국에 남아있는 또 다른 먼 친척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가족과 만남이 연결됨을 시작으로 이루어진 L의 강릉방문이었다.


(J아저씨도, L고모도 항렬로는 나보다 높지만 서로 예의를 갖춘 영어로 소통했기에 이 글에서도 존댓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했다.)


서울에서 강릉이 크게 멀지 않으니 주말 동안에 강릉에 오는 것은 어떠냐는 나의 제안을 크게 기뻐하며 받아들였고,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까지 먼 비행시간 이후에 나와 이쁜 그녀의 인천공항부터 환대를 받고 강릉으로 함께 왔다. 여독을 여유 있게 풀기 위해서 오후의 낮잠과 치킨에 맥주로 즐거운 저녁 시간의 첫 일정을 보낸 우리는, 이튿날 아침부터 L고모가 가고 싶다고 했던 한국의 전통 양식의 건물들을 가진 오대산의 월정사를 방문하며 그녀의 강릉 관광에 힘을 쏟았다.


그 전날, 치킨집에서 다음날의 일정에 대해 얘기를 하며 어떤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지 논의할 때에,


"L, 닭고기 말고 또 어떤 식재료를 선호해?"


"나는 대체로 하얀 고기를 선호해, 닭이랑 생선 거기에 채소로 만든 음식이 더 좋아."


생선과 채소를 선호한다는 말을 들은 이쁜 그녀는 본인이 좋아하는 어느 생선쌈밥 집을 추천하는데,


"고로야, 그럼 우리 내일 감천골 가자. 생선쌈밥 맛있어."


"그래, 생선쌈밥. 구운 생선에 채소, 딱 좋네."


우리 집에서는 먼 곳에 있다는 것과 수산물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 나의 취향 때문에, 이쁜 그녀는 생선구이 쌈밥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갈 일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혼 전부터 가끔 가고는 했던 포남동의 '감천골'이라는 생선쌈밥 집에 가고 싶다며 자주 언급했는데 L고모의 식사 취향을 맞출 겸, 이쁜 그녀의 소원풀이도 할 겸 감천골이 강릉 관광의 날 점심으로 확정되었다.


월정사를 방문하며 오대산에서 잠시 산림욕을 즐긴 우리는 다음 일정인 선교장 방문 전, '식후경'을 실천하기 위해 출출한 배를 잡고 포남동으로 향했다. 강릉의 대형 의류매장 들이 즐비해 있는 포남동 외곽의 큰 길가에서 감천골이 자리 잡고 있는 남대천 둑방길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간다. 감천골에 전화를 해보니 근처에 유용한 공용 주차장이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기에 별문제 없이 감천골 근처에 주차를 했다.


지어진지 최소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신식으로 지어진 대로의 건물에 가려진 옛 골목, 붉은 벽돌과 같은 겉면으로 꾸며진 건물의 1층에서 감천골은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네온사인이 올려진 녹색과 붉은색으로 '쌈밥 생선구이 전문'이라고 쓰인 단출하고 여백의 미를 강조한 간판에는 식당의 상호가 적혀있지 않다, 반투명 유리로 문과 가게의 입구의 위쪽 반을 덮고 아래는 배추밭의 사진으로 덮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갈 쯤에야 커다랗고 빨간 '쌈'이라는 말을 덮어질 만한 작은 파란 글씨로 '감천골'이라는 글씨로 쓰인 상호명을 볼 수 있다. '감천골'이라는 가게의 이름보다는 '생선구이 쌈밥'을 전문으로 하는 것을 더 강조하시는 사장님의 이념이라고 이해된다.


"딱 봐도 세월이 많이 묻어 나오는 가게의 이름과 건물의 모양새네."


"응,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영업을 하던 곳이니까 강릉에서 영업을 하신 지는 꽤 되었겠지."


어두운 황토색의 알루미늄 재질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면에는 바로 음식 냄새가 풍기는 부엌이 보이고 가운데에 20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들에 좌우로 다시 각 10명 정도는 더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보인다. 감천골은 생선구이 쌈밥 집이라고 처음부터 간판을 내걸고 있는 만큼 결정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탁월한 치료제인 '쌈 생선구이 정식'이라는 단일 메뉴만을 판매한다. 거기에 생선구이를 더 먹고 싶다면 생선을 추가하거나, 공깃밥에 음료 등을 주문하는 것 외에는 다른 식사 메뉴는 없다.


가게에 외국인이 들어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신지 짙은 금발에 서양인의 눈을 가진 L고모가 가게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앉자 주문을 받으시는 사장님께서는 잠시 눈이 휘둥그레하시더니 곧 우리 식탁으로 오신다.


"사장님, 생선쌈밥 3개요."


"네, 생선쌈밥 3인분이요~"


다른 테이블에서도 검고 아담한 불판 위에 커다란 생선구이가 나오고 신선해 보이는 채소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는 것을 본 L고모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자신도 같은 음식을 받게 될 것을 직감한 것이다. 거기다가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L고모는 강릉의 거주민의 도움이 없이는 오기 힘든 맛 좋은 한국식당에 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젓가락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는 않은데, 사용하려고 연습하고 있어."


L은 쇠젓가락과 숟가락들을 손에 집어서 함께 나온 밑반찬들을 집으려고 애썼다, 젓가락을 놀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아서 제대로 배운다면 한국인인 나보다 더 젓가락을 잘 사용하겠는걸.


"그래, 한국에서는 계속 쓰게 될 거니까 익숙해져 봐. 옛날에는 젓가락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밥상머리 예절 중에 하나였지만 지금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젓가락 사용법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아, 하지만 맛있는 밥을 남들만큼 맛있게 먹으려면 잘 쓰는 게 중요하지, 하하."


"나도 고로도 젓가락 사용하는 방법이 다 다르지만 밥을 맛있게 먹는다는 게 중요하지."


한국의 반찬들이 제법 신기했던 L은 반찬들에 대한 질문 폭격을 쏟는다. 고사리, 콩나물, 깍두기, 풋고추, 콩비지, 까막장(된장을 까맣게 발효시킨 영동지역의 전통 장), 애호박 등 젓가락으로 먹어보기 전에 약간의 걱정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식재료들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물어본다.


생선구이 쌈밥 정식 전문점답게 다채롭지만 과하지 않은 밑반찬들을 제공한다


"이거는 애호박이고, 고사리, 콩나물, 여기 보이는 붉은 국은 콩비지라고 해서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부속물에 김치를 썰어 넣어서 끓인 거야. 여기 있는 까만색 소스는 엄청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있는데 한국은 된장이라는 소스를 써, 콩을 발효시키고 가공하면서 간장과 된장이 나오는 건데 이거는 까막장이라고 영동지역에서 잘 먹는 또 다른 된장의 종류야."


"콩으로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고? 그건 몰랐네. 여기 네모난 빨간색은 김치야?"


"응, 무를 썰어서 만드는 김치인데 '깍두기'라고 해."


나와 이쁜 그녀가 한국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L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나씩 젓가락을 들어 맛보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찾아 나간다. 그녀는 콩나물과 김치 종류가 마음에 들었는지 깍두기를 제법 잘 먹는다.


"이거 굉장히 새콤하고 상쾌한 맛이 나서 마음에 든다, 이거 이름이 깍.. 뭐라고?"


"깍두기, 발음하는 게 쉽지 않지?"


주로 불어를 사용하며 영어를 제2외국어로 가진 L고모에게 된소리와 쌍자음이 많은 한국 단어들은 발음하기 쉬운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밥, 생선구이와 함께 나온 숭늉을 한 숟가락 떠먹은 L은,


"이거 곡물 같은 고소한 맛이 나는데? 싱거우면서."


"이건 숭늉인데 밥을 짓고 나서 밥솥에 눌어붙은 밥알들에 물을 붓고서 끓인 거야. 한국인들이 옛적부터 후식으로 먹던 거지만 지금 시대에는 애피타이저처럼 제공되기도 해."


"옛날 후식이 지금은 전채 요리가 되다니, 재밌네."


"시간이 지나면서 식문화도 바뀌기 마련이니까."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와 임연수어


지글지글거리면서 검은 불판 위에 우리를 위한 3쪽의 생선구이가 싱싱한 채소바구니와 함께 상에 오르자 L과 이쁜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며 미소를 짓는다. 겉면이 갈색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생선에서 피어오르는 고소 하며 짭짤한 생선의 냄새가 그녀들의 미뢰를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 이거는 무슨 생선이죠?"


L고모가 분명히 물어볼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먼저 식당 사장님께 생선들의 종류를 여쭈었다.


"여기 있는 것은 고등어고, 옆에 있는 두 쪽은 임연수예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L, 이거는 고등어고 이거는 임연수야. 한국에서는 이 생선을 처음 잡은 사람이 '임연수'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 영어로는 각자 mackerel과 Atka mackerel이라는 이름이 있지."


"오, 고등어는 먹어본 적이 잘 없지만 아는 생선인데 이 임연수는 처음 보는 생선이다."


기념일의 꽃다발처럼 다양한 잎채소로 구성된 쌈채소 바구니


김고로는 고등어와 임연수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먹는 생선들 중 하나라고 알려주고 옆에서 이쁜 그녀는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생선 뼈를 젓가락으로 열심히 바른다. 고등어와 임연수에서 각각 커다란 척추뼈에 붙은 살, 즉 '갈비'가 나오자 나는 일부러 갈비를 손으로 잡아서 들었다.


"L, 한국에서는 생선 먹을 때 이렇게 큰 뼈는 손으로 잡아서 먹는 것도 괜찮아. 서양과는 다르게 손을 사용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니거든, 괜찮으니까 나를 따라 해봐."


나는 손으로 잡은 갈비를 입으로 잡아 뜯어 살을 앞니로 긁어먹는다, 짭짤하고 쫄깃하며 바삭한 고등어의 갈빗살(?)이 입안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혀를 바다의 맛으로 자극한다. 역시 고등어구이, 이 집 생선 잘 굽네. 속으로 칭찬하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내가 생선을 맛있게 먹자, L도 냉큼 나를 따라 한다. 약간의 주춤거림이 있지만,


"으음...! 와아."


짭짤하고 쫄깃했던 고등어와 고등어구이쌈밥


고등어의 그 바삭 쫄깃한 갈빗살을 맛보면 당연히 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서 미식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고등어의 그 바삭한 첫 입이 그녀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그녀는 순식간에 고등어 뼈에 붙은 얇은 살을 젓가락과 손을 사용해서 발라먹는다. 감천골에서 제공하는 생선구이와 반찬들에 완전한 신뢰가 생긴 그녀는 이제 자유롭게 젓가락으로 생선과 채소들을 사냥한다. 옆에서 이쁜 그녀도 자신의 몫을 놓치지 않고 식사를 즐기고 있으니 김고로도 본인의 미식에 빠져들 시간이다.


쫀득쫀득


고등어의 큰 뼈에 붙은 쫄깃하면서 바삭하게 끊어지지 않는 살점들이 입안에 들어오니 침샘이 폭포수처럼 폭발한다. 나는 쌈추와 깻잎 위에 이쁜 그녀가 감사하게 발라준 임연수어의 살점을 두툼하게 올려서 마늘에 까막장, 밥을 조금 올리고 얇은 쑥갓 잎을 올려 쌈을 싸는 것을 L고모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에는 이렇게 채소에 고기나 생선을 싸 먹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을 '쌈'이라고 해. '쌈 싸 먹는다'라고 표현을 하지. 이렇게 채소로 다른 식재료를 쌈으로 싸 먹는 문화는 유독 몽골과 한국에서 발견된다고 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몽골에서 한국으로 전해진 문화라고 생각해."


(추후 쌈의 유래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고려 말에 원나라로 끌려간 사람들이 실향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궁중의 뜰에 상추를 심어 쌈을 싸 먹었고 이를 먹어본 몽골 사람들에게까지 인기가 높았다는 고사가 있을 만큼, 쌈은 한국의 독특한 음식문화라고 전해주었다.)


나는 커다랗게 싼 임연수쌈을 입으로 가득 밀어 넣고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와삭와삭' 채소의 소리를 내며 씹어먹었다.


임연수의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살점이 짭짤한 풍미를 내뿜고 뒤 이어서 쑥갓의 쌉쌀함과 까막장의 강렬함, 마늘의 알싸함이 따라오고 부드러운 쌈추의 식감과 맛이 뒤를 마무리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쌈을 싸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면서 치아와 혀 사이에서 식감을 내뿜으며 뒤섞이고 넘어가는 쌈의 맛을 음미하게 된다.


옆에서 이쁜 그녀도 자신의 쌈을 싸서 맛있게 먹자, 그것을 본 L도 그녀의 먼 한국의 조카들을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채소에 고등어 살점을 몇 개 올리고 채소를 넣고 김치와 밥도 넣어서 쌈을 싼다. 쌈밥의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채소에 원하는 식재료를 조합해서 수십 가지로 조화되는 맛을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 채소가 신선하게 상쾌한 맛이 나서 좋아. 이렇게 채소에다가 식재료를 올려서 싸 먹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해봤어."


"한국에서는 생선뿐만 아니라 고기를 이렇게 많이 싸 먹어, 언제부터 시작된 식문화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이 고기는 귀하니까 채소로라도 맛있게 식사를 하는 법을 찾다가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 그런데 영양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고기 등 단백질을 먹을 때 섬유질과 다른 영양소가 많은 채소를 함께 먹으면 소화에도 도움이 되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현대인들의 식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식문화지."


이쁜 그녀는 김고로와 L의 편의를 위해서 고등어와 임연수어의 '뼈와 살을 분리'하는 작업을 마치고 신나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이제는 L도 처음 생선쌈밥을 맞이했을 때보다 더 편하게 젓가락과 손을 사용해서 생선살을 쌈채소에 올려서 싸 먹고 있었다, 쌈을 싸서 먹는 모습을 보니 거의 한국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녀가 편히 먹는 모습을 보고서 마음이 놓인 김고로도 자신만의 미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두툼했던 임연수어와 삶은 양배추잎에 올린 생선쌈밥


짭짤하고 쫄깃한 고등어의 살점과 살결 조각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찢기는 것이 느껴지며, 그 살결 사이에서 미세한 염분들이 혀에 흩뿌려지는 그 풍미. 다른 생선들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생선이지만 그 가치보다도 더 품격 있는 맛을 전해주는 고등어구이는 생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 생선이다.


나는 잘 익은 배춧잎을 길게 찢어서 고등어를 올리고 쪽파를 접어서 넣고 편마늘에 까막장을 푹 찍어서 밥을 조금 올린 후에 타코를 먹듯 입을 크게 벌려 먹는다.


은은하게 달콤한 노란 배춧잎의 속대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고등어의 짭짤함과 쫄깃함, 거기에 매콤한 쪽파와 알싸한 마늘의 조화가 기름진 맛으로 치우칠 수 있는 생선쌈밥의 균형을 잡는다.


"배추가 달콤하니 맛이 좋네, 배추에도 싸 먹어 봐요, L. 배추가 달아요."


나는 이쁜 그녀와 L에게 잘 익은 배추의 맛있음에 대해 잠깐 설파하고 다시 남은 배추 반쪽에 임연수어의 살점을 올린다. 갓 쪄서 나온 백설기 마냥 하얗고 네모반듯한 두꺼운 살점을 가진 임연수, 쌈으로 싸 먹기에는 아깝다 싶어서 그냥 내 입으로 바로 직행한다.


두툼한 살의 두께에 비해 어금니 사이에서 사르륵 으스러지는 임연수어의 살결, 그 사이로 담백하면서도 기름진 생선의 풍미가 배어난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배추 반쪽에 다른 임연수어의 살점을 올리고 남아있는 채소들을 몇 개 올려서 입안으로 던져 넣는다. 한 점, 두 점, 생선살을 먹기 시작하면 끊이지 않고 계속 입안으로 채소와 함께 쌈을 싸서 먹게 되는 마법이다.


'내가 이렇게 생선구이 쌈밥을 좋아했었나?'


다양한 쌈채소와 생선구이로 조합해서 먹는 무궁무진한 쌈밥은 계속 먹는 맛이 좋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내가 이렇게 생선구이와 쌈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잘 없는데, 생선을 잘 구워주는 감천골이라는 식당에 와서 먹는 것이 이유인가 싶다. 김고로가 쌈채소에 대해서는 식견이 짧아서 많은 채소의 명칭을 서술하지는 못했지만 겨자잎이라거나, 붉은색의 적근대잎이라고 생각되는 채소도 있었고 쌈추를 비롯 상추와 깻잎도 넉넉하게 제공해 주는 쌈밥집이었다. 거기에 더 즐거웠던 것은 구운 생선과 신선한 쌈채소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쁜 그녀가 생선구이 쌈밥을 먹으러 가자 하면 나도 즐겁게 따라나설 수 있겠지.


"어디, 입맛에는 좀 맞으세요?"


눈에 확 띄는 외국인이 함께 한 식탁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식사를 잘하니 사장님께서도 제법 반응이 궁금하셨나 보다. 다른 테이블에도 곧잘 손님의 반응을 살피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L과 우리에게 맛이 어떤지 물어보시는 사장님.


"생선구이가 훌륭하네요, 평소에 한식을 드시는 분이 아닌데 맛있게 잘 드셔요."


"호호,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L도 식사 중간중간 한국인의 채소 반찬과 식사는 건강하고 훌륭한 식단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반응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나물이나 밭채소가 기반이 된 반찬과 찌개류로 구성된 한식을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한국적인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친 우리는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상류층 가옥의 건축양식을 구경하기 위해 선교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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