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초, 중,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실제 대학교이든 내가 온라인으로 작년부터 수강하고 있는 사이버대학교에서도 말이다. 더 이상 신입생 설명회라던가 환영회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새롭게 들어오는 신, 편입생들을 위하여 대학교의 행정사무실에서도 많은 행사들을 기획한다.
그 많은 행사들 중 마음에 드는 연사를 초청하는 강연회가 있어 서울로 짧게 나들이를 다녀온 날의 일이다. 학과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친해져 버린 어느 형님과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평소에는 연락을 잘하지는 않지만 직접 대면으로 일정이 있을 때면 꼬박꼬박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서로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근한 분이기에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그 전날부터 꼼꼼하게 식당들을 찾아보았다.
'암암, 내 돈 내고 내 시간 들여서 방문하는 건데, 확실해야지.'
내가 수강하는 온라인 대학교 건물 근처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일반적인 식당도 많았지만 혼밥을 하는 학생이나 일반인들을 위한 혼밥 환영 식당들이 꽤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1인 한정식이나 2인을 위한 부대찌개나 동태찌개, 하지만 내가 방문하려고 하는 토요일에 여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평일에 학업을 위해 대학교로 오는 학생들을 목표로 한 식당들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중국집 하나, 어느 동네를 가도 눈에 밟히듯이 있는 중국집이지만 부정적인 후기를 남겨도 상관이 없는 어느 지도 어플에서도 이 중국집에는 좋은 후기만이 쭈르륵 남겨져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띵하우'라는 어느 건물 2층에 있는 작은 한국식 중화요릿집인데, 이곳의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어느 학생은 '띵하우에 나쁜 후기를 남기는 사람은 직접 찾아내서' 무서운 행동을 하겠다면서 해당 중화요릿집에 대한 살짝 공포스러운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구나, 맛이 궁금한걸.'
서울에 가서 맛볼 음식들과 만나 뵐 같은 학부 형님에 대한 기대를 잔뜩 품고 일찍 일어난 나는 강릉역에서 KTX에 올라타고 몸을 맡겼다. 기차에서 오가는 동안 나의 연재를 마칠 생각으로 타닥타닥 거리면서 패드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기차는 금방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인기 강사의 강연을 즐겁게 듣고 그 이후의 일정들은 그리 관심이 없으니 조용히 밖으로 나와서 형님과 만난다. 작년에 봤던 이후로 몇 개월 만에 본 형님은 어느 외국계 IT기업에서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오가며 일하시는 분인데 술자리를 자주 갖게 되는 일이라 어제도 과음하셨단다.
"어제 시작해서 오늘 새벽까지 마시고 12시에야 일어났어요, 어휴."
"헤헤, 그럼 오늘 저와 함께 가실 곳은 형님의 해장으로 완벽한 곳이겠네요."
"오, 어디예요?"
"여기 근처에 띵하우라는 중화요릿집인데요, 짬뽕이 괜찮다고 하더군요."
"음, 저번에 학교에서 세미나 듣고 혼자 갔었던 것 같은데."
"그럼 더 잘되었네요, 가시죠."
한번 방문을 해봤다고 하시는 형님께서 아무렇지 않게 같이 동행하시니 형님께는 괜찮은 맛을 선보인 곳인가 하고 기분 좋게 걸어 들어간다. 회색 빌딩 사이로 무작정 걷기만 하면 '아차'하고 놓쳐버릴 만한 건물 2층에 띵하우는 숨어있다. 여기에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간판은 건물 2층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 달려있는 둥근 간판밖에는 없으니까.
좁고 높은 계단길, 어둡고 쉽지 않은 길은 하얗고 우둘투둘한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조심조심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잡고서 등산하듯 올라간다. 그러다가 빛을 발견하여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술과 건강식품, 보약들이 담겨 있는 술병들이 여기저기 큰 화분들과 함께 진열되어 있고 안쪽에 바닥에 앉는 짧은 다리의 넓은 탁자 너머의 커다란 텔레비전에서는 종편 채널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입구에서 우측으로 작은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는 부엌은 약간의 광택과 때가 묻은 흰색, 녹색, 푸른색의 타일들이 바닥과 벽을 수놓고 있는 와중에 그 사이로 재료를 다지고 웍에 볶는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바쁜 점심시간은 지나가서 홀에는 사람이 없지만, 가게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다가도 배달 혹은 포장 주문이 잡혔으니 얼른 접수해 달라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형님과 나는 주방 근처의 짙은 갈색과 검은색으로 칠이 된 나무 탁자와 의자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쓱 훑는다.
"저는 기름진 음식으로 해장하는 편이라, 삼선간짜장이요."
"흐음, 그러면 저는 짬뽕으로 할게요. 미니 탕수육 하나 시킬까요?"
"그래요, 먹읍시다."
이 집의 짬뽕과 탕수육이 맛있다는 평을 많이 본 나는 요리로서의 탕수육을 시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우니, 미니 탕수육으로 크기를 줄여서 주문한다. 많이 먹지는 못해도 띵하우의 탕수육 실력을 맛보고 싶었으니까.
사실 형님과 나는 학부의 공부로 친해진 사이라서 둘 사이에 많은 공감대는 없지만 서로 알고 지내면 좋은 사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기에 대화 주제를 무얼로 꺼낼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AI 산업의 부상으로 IT업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교양지식으로 알고 있는 나는, 현업에 계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다.
"형님 회사는 괜찮으세요? 작년에 IT 기업들이 좀... 그랬잖아요?"
'좀 그랬다'라는 말을 듣고 형님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대답하신다,
"아, 레이아웃이요?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기는 했고, 저는 외국계 기업인데 영어가 쉽지 않아서 이래저래 다른 것도 알아보고 있어요."
나보다는 더 많은 식구와 책임감을 가진 형님이, 굳이 사이버 대학에서 수강을 시작하게 된 것은 현업의 실태를 보게 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겠지. 내가 최근에 듣고 있는 서비스 산업에 관련된 담당 교수의 전망과 예상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자 눈을 반짝이면서 들으신다, 갓 볶아져 나온 간짜장의 윤기처럼.
"... 서비스 산업이 넓게 걸쳐져 있으니 아직 전망이 좋은 산업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요? 한 번 이래저래 알아봐야겠네요."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금방 튀겨져 나온 탕수육과 곁들여 나온 군만두가 우리의 상에 올랐다. 오늘날의 탕수육 유행을 반영하듯 탕수육에는 소스가 따로 나왔다.
'요즘은 탕수육의 튀김의 품질에 상관없이 다 이렇게 따로 주는 게 유행이던가.'
10~20대의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대부분은 탕수육의 소스를 따로 내어서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바삭함을 오래 갖고 싶기 때문이겠지. 다만, 찍먹이나 부먹에 대한 논쟁은 많은 매체들과 유튜브에서 내로라하는 중화요리의 대가들이 이미 많은 의견과 결론을 정리해 놓은 것들이 많으니 참고해 보시길 바란다. 참고로 김고로의 탕수육에 대한 지론은 '퍼먹'이다. 맛있는 탕수육은 찍먹이고 부먹이고 상관없이 고기와 소스까지 다 '퍼먹'어야 하니까.
노릇노릇한 튀김의 냄새가 진동한다
아직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소리가 들리는 듯한 탕수육을 슬쩍, 형님이 젓가락을 드신 후에 바로 들고는 잠시 보다가 반투명한 갈색 탕수육 소스에 찍는다. 설탕과 간장으로 감칠맛과 단맛을 넣어서 맛을 낸 탕수육 소스겠지, 푹 찍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바사삭
쫄깃쫄깃
단단하게 바삭한 튀김옷을 가진 탕수육은 아니다, 다만 치아와 잇몸 사이에서 파편을 휘날리며 입안을 충분히 간지럽힐만한 얇은 튀김옷이다. 튀김옷이 얇아서 그런지, 튀김옷과 고기 사이에 있는 끈적한 옷이 떡처럼 쫄깃하게 씹힌다.
안 찍었다가, 찍었습니다.
'오? 기대 이상으로 맛이 괜찮은데.'
"이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좋네요."
"하하, 많이 들어요. 오늘은 내가 약속 시간에 많이 늦었으니, 내가 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님."
나는 후속으로 탕수육을 다시 집어든다, 어느 훌륭한 중화요릿집들에서 먹었던 맛 좋은 고기튀김과 같은 맛을 지닌 탕수육이다. 대부분의 중화요릿집들이 그러하듯이, 값이 더 나가는 등심보다는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뒷다리를 길게 쳐서 튀긴 탕수육이지만 등심으로 튀긴 탕수육만큼이나 부드럽고 쫄깃하며 고소하다. 돈육 후지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실력을 가졌다고, 김고로는 생각한다.
바사삭
쫄깃쫄깃
탕수육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바삭함과 달콤한 소스를 생각하고 주문을 하겠거니와, 띵하우의 탕수육을 생각하노라면 튀김옷의 쫄깃한 맛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왜 그렇게 탕수육에 대한 찬양을 이어나가는지 이해할 만하다.
금방 있으니 형님께서 주문하신 삼선간짜장과 나의 짬뽕도 각자의 앞에 오른다. 간짜장을 1인분도 해주는 곳을 찾는 것은, 적어도 강릉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간짜장을 하는 곳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주문을 하더라도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주문을 받아주니까. 그런데 띵하우는 삼선이 아닌 그냥 간짜장도 '2인분 이상'이라는 경고 문구가 없다, 1인분의 간짜장도 받아준다는 말이다.
투명한 양파와 빛나는 흑진주 같은 짜장이 어울려 면발 위에, 빙수 위의 흑임자 시럽처럼 탐스럽게 올라있다. 달착지근하고 고소한 짜장의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와서 나를 유혹하지만 내 앞에는 짬뽕이 기다리고 있기에 눈을 돌릴 수 없다. 이미 매콤한 짬뽕의 향기가 나의 턱을 잡고 본인에게 집중하라며 당긴다. 고춧기름 방울들이 몽글몽글 국물 위에 떠다니며 나를 바라본다.
'이 동네 사람들이 사랑하는 띵하우의 짬뽕은 어떤지 볼까.'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특징인 띵하우의 짬뽕
국물의 맛이 궁금하여 숟가락부터 들어 짬뽕에 넣는다. 탁한 주홍빛이 감도는 국물이다, 무거운 맛이 나려나.
후루룩
"크으.... 아, 이거 죽이네."
의외로 양이 꽤 많이 담긴 짬뽕이다
매콤한 향과 잘 어울리는 칼칼한 맛이 울대를 탁 치고는 파고 들어오는 맛이다. 칼칼한 후추와 고춧가루, 매운 고추로 진하고 강한 매콤함이 국물에 농축되어 있다. 다른 건더기나 면을 먹어볼 필요도 없이 국물을 한 숟가락 먹으면, 거기서 띵하우의 짬뽕맛은 정리가 된다. 별거 아닌 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입을 본 다음에 또다시 수저를 들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그것은 뇌에 의해서 '끌리는 맛'이라고 정해진 것이다. 나에게는 띵하우의 탕수육과 짬뽕이 그러했다.
건더기로 올라온 홍합도 신선하게 쫄깃했고, 칼집이 난 채로 익은 오징어는 껍질마저 벗겨져 있어서 두배로 쫄깃하고 잡내도 없는, 김고로가 사랑하는 수산물의 모범이다. 거기에 잘게 채 썰 린 양파나 곁들여진 청경채와 표고버섯, 사각거리는 죽순 등 김고로가 사랑하는 부재료들만이 짬뽕에 담겨있기에 김고로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양파와 오징어에 묻어있는 거뭇거뭇한 그을림도 화끈한 웍질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더 맛있게 짬뽕을 먹을 수 있다.
청경채와 오징어를 면과 함께 들어서 국물을 충분히 적시고 입으로 가져간다. 사각거리는 청경채의 식감과 쫄깃한 오징어가 찰랑거리는 짬뽕면에 섞여서 매끄럽게 입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건더기가 한 그릇에 담겨있다
후루루루룩
한국에서는 면을 먹을 때 약간의 소리를 내어서 먹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고, 요리사에게는 그만큼 맛있게 먹는다는 칭찬의 표현이기도 하니 가능하면 면을 끊지 않고 젓가락으로 쳐올려서 먹는다. 칼칼하고 진한 짬뽕의 국물이 함께 들어오며 마지막에는 다시 목을 치면서 내려간다.
"크으.. 여기 짬뽕 좋네요. 칼칼하고 매운 게 마음에 들어요."
형님도 자신이 주문한 삼선간짜장이 마음에 드는지 숨도 안 쉬고 흡입하신다, 맛을 못 봤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맛일지는 모르겠지만 해장과 끼니 해결이 필요하시다고 하신 형님께서 게 눈 감추듯이 간짜장을 드시고는,
"맛있네요."
한마디 남기시면서 그 간짜장의 맛을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옅게 웃고 다시 짬뽕에 젓가락을 담근다. 다시 죽순과 버섯, 그리고 면을 함께 집어서 칼칼한 국물을 적신다. 칼칼함과 매콤함으로 무장한 짬뽕은 다시 매콤함과 부재료들의 식감으로 김고로의 입맛을 당긴다. 김고로는 의외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기에 매운 짬뽕은 그에게 쉬운 음식은 아니지만, 목을 치고 넘어가는 칼칼함이 오히려 여우의 꼬리처럼 그의 입맛을 홀린다.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계속 매력을 느끼는 맛이야.'
각자의 식사를 어느 정도 흡입한 후에 미니탕수육마저 바삭 쫄깃하게 즐긴 형님과 김고로는 서울을 떠나 각자의 도시로 돌아가기 전, 간단한 커피 한잔을 위해서 다시 대학교 앞의 거리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