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명주동은 옛 일본강점기 시절의 일식 가옥들과 세련되거나 아기자기한 외관과 내부 장식을 갖춘 독특한 카페들, 문화단체와 그 공연장들이 어우러져 휴일이면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붐비는 동네다, 내가 좋아하는 중화요릿집인 원성식당과 소머리해장국으로 유명한 금성해장국,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의 건축양식을 담은 대도호부관아가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동네에도 직선과 넓은 대지를 갖춘 현대적이고 커다란 카페들이 들어온 지는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명주동의 터줏대감들인 새마을금고와 우체국, 농협중앙회의 널찍하고 높은 어깨 뒤에 가려져있던 낡은 건물들이나 노포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명주동의 우체국 옆의 뒷골목에 미국의 펍 혹은 식문화로 세탁된 버거집, 미미즈베케이션이 들어온 것은 작년이었다. 은색 스테인리스로 된 짧은 팔다리와 나무로 이루어진 수많은 의자들과 식탁들, 맥주 한잔을 손에 걸치고 다 같이 즐길 것으로 보이는 다트게임기계가 가게 구석에 놓여있고 가게면적의 30%는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주방에서는 진한 고기의 냄새가 풍겨 나오는 곳이었다. 녹색 지붕에 흰색 기둥들, 통유리창으로 벽면을 이룬 건물 외경은 마치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굽는 그리스의 '버거 마시케 구리우스' 신의 신전처럼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작년 가을에 아는 형님들과 미미즈베케이션이 개업을 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방문했을 때에 와서는 당시 재밌게 봤던 영화인 '아메리칸 셰프'에서 군침을 흘리며 구경했던 메뉴인 쿠바샌드위치가 메뉴로 있길래 주문해서 먹었더니 맛이 제법 괜찮았기에 나중에 혼자 와서 쇠고기 패티가 들어간 버거를 먹으면 맛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정작 혼자 방문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봄의 초입이 되는 날, 흰색과 초록색이 위아래로 묻은 통유리벽을 지나니 넓은 매장 안에 두세 팀 정도가 이미 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점심시간이니 제법 시장하다. 강릉 시내에서 보기로 한 약속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남았으니 재빨리 생각해서 주문을 한다. 주방 앞 계산대 앞에 우두커니 서있으니 앞치마를 두른 덩치가 크신 주방장 겸 사장님 되어 보이는 분이 나와서 주문을 받으신다.
잘 구워진 패티가 들어간 버거의 맛을 보고 싶으니 패티가 두 개 들어간 클래식 치즈버거를 더블로 주문하고 볶은 양파와 치즈, 땅콩버터와 패티를 호밀빵에 넣어서 내놓는 패티멜트를 주문했다. 키오스크가 있지만 손님친화적인 주문을 위해서 직접 주문을 받으시는 것인가 싶다.
주문표를 받고서 식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캠코더, 비디오, 뒤통수가 길쭉하고 두툼한 텔레비전, 미국에서 아침식사로 먹을 만한 달달한 시리얼 박스들. '미미즈베케이션'의 미미라는 인물은 아마도 미국으로 휴가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인가 보다. 거기에다가 주로 고기와 빵으로 된 기름지고 두툼한 식사를 즐기는 사람이겠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 보니 고소한 고기냄새가 나면서 내 번호가 불린다.
미미즈베케이션의 클래식더블치즈버거
유산지에 살포시 감싸진 햄버거를 조심스레 관찰해 본다, 내가 서울에서 방문하기 좋아하는 어느 버거집의 패티보다는 얇지만 더 진한 갈색빛을 머금은 것이 더 바삭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거기에 케첩, 머스터드, 얇은 치즈와 수북하게 쌓인 얇은 생양파가 고기 위에 쌓였는데 노릇노릇하게 반들거리며 빛을 반사하는 햄버거 빵이 먹음직스럽다. 눈으로 먹는 것은 이제 그만, 직접 입으로 느껴보기로 했다.
와삭 바삭
사각사각
"으으음.....!!"
푹신한 빵을 앞니로 뚫고 들어가 고기와 양파,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던 피클을 베어 물었다. 부드럽고 쫄깃한 빵을 씹으니 바삭하고 잘 구워진 패티의 고깃 조각들이 씹히며 육즙을 뿜고 치즈가 고소함을 얹으면, 그 사이로 씹히는 피클과 양파가 알싸하고 새콤한 맛으로 느끼함을 지우고 그 위로 케첩과 머스터드가 달콤한 맛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패티, 치즈, 양파와 피클에 케첩과 머스터드, 흔하게 버거에 끼워 넣는 조합이기는 하지만 이게 이렇게 파괴적인 맛을 선사하는 조합이었나 싶다. 육즙과 기름이 버거 자체에서 줄줄 흐르는 무겁고 두터운 패티를 선호하는 김고로이지만, 육즙과 육질이 깔끔하게 균형이 잡힌 얇은 패티도 제법 맛이 좋았다. 얇은 만큼 더 바짝 구워진 패티가 입안을 간질거리고 그 사이에서 나오는 육즙과 고소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다.
"다시 한입, 먹어볼까.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아."
와사삭
여러 식감들과 풍미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버거 안쪽으로 내려앉아있던 양파와 피클들이 살짝 녹은 치즈와 함께 끈적하게 씹힌다. 아무리 얇게 썰어도 생양파를 버거에 넣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데, 위아래로 패티, 치즈, 케첩, 머스터드 사이로 섞이면서 양파의 풍미와 알싸함만을 입안에 뿌리니 매운맛도 없고 사각하고 신선한 식감만 줘서 오히려 버거의 맛이 지루하지 않고 씹을수록 새롭다. 거기에 오이 특유의 향기가 사라져 식초의 산미로 새콤함을 주는 피클도 수분으로 촉촉한 맛을 더한다, 고기와 빵으로 꽉 막히는 답답함을 물리쳐주는 좋은 재료들이다.
눈을 감고 다시 패티, 치즈, 양파와 피클까지 그 맛과 식감들을 복기한다. 식재료들의 다른 맛과 식감들이 서로 조화를 만들어내서 나를 천국으로 이끈다.
'눈을 감고 있는 나의 입 안에서, 어떤 즐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모르지.'
바삭거리는 고기와 상쾌함을 더하는 양파와 피클의 아삭한 식감, 거기에 치즈의 고소함과 케첩과 머스터드로 지속적인 감칠맛을 더하는 평범하고 누구나 다 아는 맛이지만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온 '보통'의 전통적 버거의 맛. 왜 이런 맛을 지금까지 맥도널드가 제거하지 않고 고집해 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햄버거에 케첩과 머스터드를 넣어서 먹으면 다른 식재료들의 맛이 지워지는 느낌이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미미즈베케이션에서 먹는 조합은 훌륭하다.
미미즈베케이션의 신제품 패티멜트, 고소한 고기와 치즈의 맛이 강조되었다
그 이후에 나는 담백하고 달콤하게 볶아진 볶은 양파가 패티 두 장과 치즈, 땅콩버터와 호밀빵에 발려진 패티멜트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바삭하고 단단하게 구워진 호밀빵과 그 사이에서 진하게 치아와 혀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달콤 짭짤한 치즈와 땅콩의 맛은 기름과 육질의 맛 균형이 잘 잡힌 패티와 조합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이미 더블치즈버거에서 느낀 고기와 채소가 계산적으로 잘 짜인 버거의 감동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라 패티멜트를 먼저 먹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