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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20. 2024

[미식일기] 나운칼국수, 강릉

황태가, 국물이, 끝내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원도 영동과 영서 지방의 경계에 맞물려 있는 도시 혹은 마을의 특산품은 임산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산에서 자라는 나물과 버섯 등 사람들이 으레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외로 영동지방 태백산맥의 특산물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특산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생선. 정확하게 말하자면 꾸덕꾸덕하게 잘 건조된 생선이겠지, 포슬포슬하고 쫄깃한 식감을 가진 노오란 속살을 자랑하는 그 이름도 유명한 황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함경도지방에서 내려와 강원도 대관령, 미시령과 진부령에 정착한 피난민들은, 새롭게 자리 잡은 터가 고향의 기후와 비슷한 것을 알았고, 고향 지방에서 먼 옛날부터 만들어먹던 황태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 강원도 황태의 시작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영동 지방의 산맥에서 밖에 생산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좋은 황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추운 날씨가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고 산맥의 바람을 맞아야 명태 특유의 수분과 육질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건조되고, 좋은 황태가 된다고 한다.


황태는 특히나 간을 보호해 주고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애주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안주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황태육수로 우려낸 칼국수를 주력메뉴로 하는 '나운칼국수'를 처음 소개해주신 분이 강릉의 어느 택시기사인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 강릉에 놀러 온 지인 왈,


"초당동에서 시내로 가면서 택시를 탔는데, 맛있는 집이 뭐가 있는지 여쭤보니까 택지에 나운칼국수가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집에 가면 기사님은 국물까지 안 남기고 싹 비우고 오신다나."


"나운칼국수...? 입맛 까다롭기로 이름난 택시기사님들이 소개해주신 것이면 신뢰할만하지."


"택지에서 장사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작년이었으나 실제로 한번 가봐야겠다고 결심이 굳은 것은 올해 봄이 되어서야였다.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으려고 하지 않기도 하고, 칼국수는 더더욱 잘 안 먹는 김고로이기에 동네에 있는 칼국수 집을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김고로는 동네에 있는 식당들을 찾아가는 것을 취미이자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라 뜨끈한 국물과 국수를 좋아하는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 택지거리에 벚꽃 놀이도 하러 갈 겸 강원대(구 강릉원주대학교) 근처의 미용실에도 들를 겸 길을 나섰다.


택지는 강원대 대학생들의 원룸촌과 주변에 거주하는 넓은 아파트단지의 주민들이 존재하게 되면서 함께 생성된 상권이다, 초등학교들과 병원, 행정사무소, 법률사무소, 학원 등등 다양한 직업의 인구들이 분포하고 있기에 그에 걸맞게 다양한 음식을 취급하는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있고 특히나 택지의 중심가를 꿰뚫는 장기판의 가로세로선과도 같은 도로들의 벚꽃들은 봄마다 장관을 이룬다. 강릉에서 성수기의 해변가를 제외하고는 강릉에서는 유천지구와 함께 시내를 제치고 제일 '잘 나가는' 상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 택지의 행정복지센터를 옆에 두고 있는 도로를 따라서 지구대가 있는 방향으로 벚꽃거리를 걸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운 기운 때문에 늦게 피어난 벚꽃들이 만발해서 주변에 사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호회와 연인들, 학생들까지 수많은 인파가 벚꽃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꽃놀이를 하는지라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이 오히려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날만큼은 도로가 아닌 '인도'로 취급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곧 식당들과 카페들의 고개를 넘어 택지상권의 바깥쪽, 지구대와 청록색 주유소와 큰 교회가 한눈에 보이는 나운칼국수에 도착했다. 날이 좋은 날이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밝은 회색의 화강함 혹은 대리석의 외관을 지닌 어느 원룸건물 1층에 황태떡만둣국과 황태미역국도 개시했다는 현수막을 펄럭이며 하얀 바탕에 황태장칼국수 사진, 굵은 상호명을 두드러지게 써놓은 간판 아래 통유리 벽 사이로 북적이는 손님들이 보였다.


"키오스크가 먼저 인사를 하는군."


"나는 먼저 자리에 앉을게."


"황태칼국수 먹을 거지?"


"응, 장칼국수 아니고 그냥 황태칼국수."


"응, 나도 그거 먹을 거야."


가게에 들어서자 멀대처럼 서있는 키오스크가 넓고 긴 화면을 들이대면서 주문을 원한다, 김고로는 맑은 황태칼국수 두 그릇을 담고 곁들임 음식으로 김치만두가 보이자,


"김치만두도 한번 어떤지 볼까." 하고는 김치만두도 한 그릇 담는다. 자가제면을 한다고 하는 집이니 만두피와 속을 만드는 실력은 또 어떤가 궁금한 것이다. 김고로는 주문과 결제를 동시에 마치고는 이쁜 그녀가 잡아놓은 식탁에 합류한다.


"김치만두도 같이 시켰어, 어떤지 궁금해서."


"잘했어, 먹으면 되지."


"먹으면 '돼지'라고?"


"아니, 그거 말고."


김고로가 기습적으로 시전 하는 시답잖은 아재개그에 이쁜 그녀가 피식거리면서 둘은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돼지가 사실은 생각보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적은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가진 동물이며 건강한 신체를 가진 동물인 것에 대해서 진지하고 웃긴 대화를 시작했다.


주변에 앉은 손님들을 보니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으면서 맥주나 소주를 가볍게 걸치기도 하고, 그 둘을 섞어서 폭탄주를 마시며 무거운 낮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식당에 들어서니 정면과 좌측으로 테이블들이 오밀조밀 배치되어서 손님들이 친근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주방과 홀 사이에 음식을 건네주기 위한 좁고 길게 뚫린 창을 통해서 주방직원들이 형광등 아래에서 얼마나 바쁘고 뜨겁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고, 식당 입구 근처에 우뚝 솟은 냉장고 안에서는 주류, 음료들과 함께 미리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둔 배달 혹은 포장만 되는 황태미역국과 칼국수 사리들이 잠들어 있었다. 메뉴판에는 황태장칼국수, 황태칼국수, 황태만둣국, 열무비빔밥 외에 메밀전과 만두를 판매한다는 안내가 게시되어 있었는데 이미 다 아시다시피 모든 메뉴의 육수는 다 황태로 우려내는 것이다.


만두피가 쫄깃하고 김칫속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예상했던 대로, '면'이라는 음식 특성상 생각보다 빨리 음식이 나왔는데, 김치만두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칼국수 두 그릇이 하얀색 넓고 큰 그릇에 담겨 우리에게 모락모락 인사를 건넨다. 은근히 달달하고 구수한 인사에 김고로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며 흥분했다.


"냄새가 환상적인데."


"응, 시원한 황태해장국 냄새야."


반투명한 맑은 육수 중심에 넓고 두툼한 면들이 똬리를 틀고, 그 위로 얇게 썰린 송고버섯과 대파, 달걀, 애호박들이 칼국수를 장식한다. 국물의 달콤한 향기를 참지 못한 김고로는 젓가락 대신에 숟가락을 먼저 들고서 국물로 입안을 한 모금 적신다.


사진만으로는 맛이 가늠되지 않는다, 맑고 투명한 육수.


후룩


달착지근하고 시원한 맛, 거기에 무겁지 않고 가볍다. 달콤 시원하며 깔끔한 황태 육수의 정석.


"달다, 시원해. 국물이... 와..."


"응, 국물 맛있다."


김고로는 다시 한번 숟가락을 들어서 몇 번이고 황태덕장을 입안에 차린다. 따뜻한 봄날 벚꽃 사이에서 김고로는 홀로 추운 날 대관령 황태 덕장에서 막 가마솥으로 끓여낸 황태 국물로 해장하는 기분이었다, 국물을 다시 들이키며 눈이 저절로 감긴다.


'아... 끝없이 멈출 줄 모르는 내리는 눈과 같이, 입안에 쌓이는 황태 육수의 달콤함과 끝없는 시원함이다. 황태 육수의 맛이 진하고 진하다.'



이전에 먹었던 황태 육수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황태를 적게 넣어서 제대로 황태의 진수가 다 담기지 않았던가. 아니면 다른 육수와 섞으면서 인위적인 부드러움과 고소함으로 희석되었던가. 왜 더 일찍 이 황태 육수를 마시러 오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아쉬웠다.


국물로 충분히 마음의 즐거움을 얻었으니 이제 배도 든든하게 채우면서 식감을 즐길 차례다. 면 위에 올려져 있는 고명들을 숟가락을 이용해 잡고는 시원한 육수에 충분히 적셔서 한입에 털어 넣는다. 사각거리는 대파와 미끄러지듯 씹히는 버섯, 달걀이 달달한 황태육수와 어우러져 대파의 알싸함, 송고버섯의 향긋함과 함께 식감과 향기의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제 면을 먹어볼까, 식감이 궁금하네."


김고로는 두툼하고 넓은 칼국수를 젓가락으로 크게 잡아들고는 말아 올린다, 한입에 다 넣으면 뜨거워서 입안이 다 데일 수 있으니 겁쟁이처럼 면 몇 가닥은 다시 국물 안으로 떨어트려 넣고 조금 적은 칼국수면을 치아로 잡는다.


후루루루룩


빠르게 빨려 들어온 면발이 김고로의 입안 양쪽에 가득히 담긴다, 김고로는 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저작운동을 시작한다. 두툼한 칼국수의 면이 탄탄하고 쫄깃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어금니 사이에서 단단하게 튕기는 밀가루의 응집력이 훌륭하다. 시원하고 달달한 황태 육수에 부드럽게 적셔진 겉면을 매끄럽게 훑고 지나가면 면발의 무겁고 단단한 식감이 속을 든든하고 뜨끈하게 채워준다. 앞니로 뚝뚝 끊어서 먹기보다는 연타래의 실을 감듯이 끝까지 감아올려서 면들을 잔뜩 눌러 먹으면 면발의 식감이 더욱더 감동적이다. 면을 잘 뽑는 식당들의 면들은 항상 이렇게 즐거운 식감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라.


"여기 면 잘 뽑네. 탄탄하고 쫄깃해. 나는 이런 두꺼운 면도 좋더라."


"맞아, 씹는 맛이 좋아."



마주 보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이쁜 그녀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즐겁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어깨를 춤추게 하는 것일까, 김고로도 이미 그러고 있었으니. 면발을 모두 몇 젓가락으로 해치우는 위장을 가진 김고로는 면발이 사라진 칼국수 그릇을 양손으로 예의 바르게 들어 올려서 홀짝홀짝 계속 들이킨다.


달콤하고 시원한 국물 사이로 노란 솜사탕 조각과 같은 황태살이 씹힐 때마다 구수한 맛을 뿜으며 굴러들어간다. 육수와 면발이 워낙 좋다 보니 황태칼국수 안에 황태가 들어있다는 것은 금방 잊어버렸던 김고로는 바닥에 남아있는 황태살들을 수저로 긁어 퍼먹는다.


'맞다, 황태살도 푹신푹신하니 참 맛있는데. 놓칠 수 없어.'


그렇게 남아있는 건더기들과 면발들을 먹다 보니 김고로의 그릇에는 곧 아무것도 안 남았다. 나운칼국수의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국물까지 싹 비워먹는다고 전했던 택시기사님처럼, 김고로도 그렇게 나운칼국수의 황태칼국수를 싹 비웠다.


"오래간만에 정말 훌륭한 칼국수였어."


"응, 여기 칼국수 먹고 싶을 때 또 오자."


"그래, 너랑 또 오고 싶은 곳이야."


강릉 택지에서 황태덕장의 맛을 만끽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택지의 벚꽃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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