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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n 08. 2024

[미식일기] 차이루, 강릉

끊임없이 들어가는 매콤자작 볶음짬뽕과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북경식 탕수육

강원대학교 강릉캠퍼스(옛 강릉원주대학교)의 후문에서 굴다리를 지나 넓게 깔린 대로를 따라서 아파트들이 성냥개비처럼 옹기종기 모여 주거단지를 구성한 곳 근처에는 계획적으로 구성이 된 강릉 택지의 먹자골목이 있다. 여느 도시의 '먹자골목'이라는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이 술집, 밥집, 고깃집 등으로 뒤섞인 상업 구역이 초등학교, 학원가와 어울려 있는 가운데, 한국식 중화요릿집을 하는 중국집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동권에서 규모가 있는 대학교 중 하나인 대학교의 상권이니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식당들이 주변 거주민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안주들을 갖춘 식당들의 뒤편 골목에 숨어있는 모습.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라 임대료는 그리 착하지 않았고 주변에 동종업계들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신장개업을 한 식당도 몇 개월이면 사라져서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중화요릿집이 있으니, 볶음짬뽕과 북경식 탕수육으로 이름난 '차이루'.


차이루는 이전에 소개했던 강릉의 노포 중화요릿집인 신성춘이나 종수반점처럼 오래되었거나 배달을 하는 집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교와 택지 직장인, 가족단위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고 맛이 제법 좋아 점심, 저녁 시간에는 분주하게 홀과 주방을 오가시는 사장님 내외와 일을 도와주러 오신 직원(친구분이라고 한다)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거주하는 곳에서는 조금 멀리 있는 곳이 택지라서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나는 차이루 마지막으로 갔던 게... 작년이었나? 싶은데?"


"나도 굉장히 오래되었어, 기억이 잘 나지는 않네."


이전에 이전 직장의 동료들과 회식을 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차이루에 갔던 기억이 없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차이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비교적 더 맛있게 하는 메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발품을 멀리까지 팔아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번에 가도 볶음짬뽕 먹어야지, 북경식 탕수육도 먹고..."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차이루에 처음, 이쁜 그녀와 갔었을 때, 먹었던 메뉴는 일반 탕수육에 볶음짬뽕이었다. '일반'이라는 말을 탕수육에 붙이는 이유는 차이루에는 일반 탕수육과 '북경식' 탕수육이 따로 있기 때문. 당시에는 볶음짬뽕을 먹으며 굉장히 맛이 좋다는 생각을 했었고 탕수육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런저런 지도어플이나 여론을 조사하다 보니 차이루의 북경식 짬뽕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짬뽕과 볶음짬뽕도 취향에 따라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이루로 가는 길은 택지를 양분하는 큰길을 따라서 강원대학교 방향으로 쭉 내려가는 것이다, 큰 길가에 나와있는 식당이 아니라 택지에 벚꽃이 만발하는 때에 벚꽃놀이를 즐기면서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검은 배경에 붉고 큰 글씨로 '차이루'가 쓰여있고 양옆은 중화요릿집의 상징처럼 쓰이는 커다란 황금용이 위협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입구는 우리나라의 기와집 대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양옆은 검은색과 빨간색의 시트지가 각각 반절을 차지하며 붙어 검은색 배경에는 빨간색으로, 빨간색 배경에는 흰색으로 '차이루'가 쓰였다. 가게문을 열고서 들어가면 황토로 되어있는 벽에, 건물의 기둥들이나 받침들이 통나무의 무늬로 되어있고 곳곳에 한국적인 창문틀과 격자무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차이루가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한정식집이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는 가게장식을 가진 곳이다.


식탁과 의자에 앉는 입식 좌석은 6팀 정도, 안쪽의 좌식으로 된 곳의 16팀, 식탁의 수로 봐서는 적어도 50명 정도는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좌식으로 된 곳에서는 회사에서 온 듯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미 맥주와 소주와 요리류를 즐기며 회식 분위기가 한창이었고 홀에도 2인이나 4인 구성의 친구 혹은 가족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주방 바로 앞에 비어있는 식탁에 앉아 메뉴판을 본다, 먹기로 결정했던 것은 있지만 그래도 가게마다 메뉴판을 보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고급 중화요릿집처럼 사자성어와 같은 요리들이 끊임없이 나열되어 있는 전형적인 중화요릿집의 메뉴판과는 다르게 식사를 위주로 하는 중화요릿집들처럼 차이루의 메뉴판은 상당히 단출하다. 짜장면, 간짜장, 짬뽕, 새우탕면, 볶음짬뽕, 새우볶음밥 등 10개 정도의 메뉴에 요리류도 우리가 뷔페의 중화요리 구역에 가서 볼 수 있는 요리류인 탕수육, 깐풍기, 깐풍새우, 유산슬 등의 친숙한 요리류가 전부. 그래서 차이루의 메뉴판은 김고로의 팔뚝만큼의 넓이와 길이에 식사류와 요리류 각각 1쪽 하여 2쪽밖에 되지 않는다.


"선생님, 저희 볶음짬뽕 2개에 북경식 탕수육 작은 것으로 하나 주세요."


"네에~ 볶음짬뽕 2개... 북경 탕수육 소짜..."


주방을 보아하니 호리호리하고 얇은 팔목과 몸을 가지신 분이 검은 뿔테안경, 검은 요리복과 흰색 요리모자를 쓰시고 분주하게 다른 남자분과 요리를 하시고 계시니, 누가 봐도 사장님처럼 보였다. 저 작은 체구에서 그렇게 맛있는 요리들이 탄생했던 것인가, 그는 누가 뭐래도 차이루의 거인이다. 우리가 주문하기 이전에 회식팀, 가족단위 팀들의 주문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시간이 생각보다 지난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맛있으면 모든 것은 용서되기 마련이니까.


튀김 요리인 북경식 탕수육이 먼저 나왔다. 한국에서 알고 있는 탕수육은 사실 중국에는, 중국에 있는 한국식 중화요릿집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탕수'소스는 존재하기 때문에 탕수소스를 튀긴 갈비조각에 끼얹어 먹는 '탕수패골' 혹은 탕수육 고기를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길고 얇게 썰어서 튀겨 탕수 소스를 끼얹어 먹는 '탕수리지'가 한국사람들이 먹는 탕수육에 가까운 요리이다. 차이루에서 대접하는 북경식 탕수육은 중국에서 먹는 탕수리지와 비슷한 모습이다, 길고 얇게 썰어서 튀기고 거기에 붉고 새콤달콤한 소소를 얹었다. 그리고 거기에 크림소스를 디저트처럼 파도모양으로 뿌려놓아 먹음직스럽다.



"많이 기다렸네, 어서 먹자."


"응응!"


하얀색의 바삭한 반죽이 붉고 끈적한 소스를 잘 껴입을 수 있도록 잘 문질러 주고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바삭!



달콤하면서 유지방의 부드러운 크림소스가 입안을 가득 덮고 뒤이어 새콤한 맛이 따라온다, 일반적인 설탕과 간장, 식초로 맛을 내는 소스와는 다른 특유의 새콤함과 부드러움이 있는 것이 차이루 북경식 탕수육 소스의 특징이다. 무언가 새콤한 오렌지 혹은 레몬과 같은 맛이 아는데 소스에서는 육안으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응? 여기 레몬씨가 있네?"


소스 속에 한 알 떨어져 나와있던 아주 작은 땅콩처럼 생긴 단단한 씨앗을 발견한 이쁜 그녀가 젓가락으로 증거를 찾은 탐정처럼 웃으며 레몬씨를 들어 올린다. 아, 이 녀석이 부담스럽지 않은 신맛과 단맛의 조화를 찾아준 장본인이었군. 식초와 설탕으로 맛을 낸 대부분의 탕수육 소스들은 혀의 미각세포들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맛이라면, 차이루 북경식 탕수육의 소스는 약간 새콤한 야쿠르트를 진득하게 먹는 맛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중독적인 맛이라서 고기를 하나 집어먹고는 연이어서 계속 집어먹게 되는 마술.


바사사삭



바삭한 튀김옷은 쫄깃하고 튀김옷 안의 고기들은 지방과 살코기가 적당하게 섞인 부위를 쓰셔서 투명하고 탁한 색깔의 익은 고기와 비계가 조화롭게 섞여있다, 탕수육이 왜 이렇게 바삭하고 쫄깃한가 궁금해서 한입 베어 먹고서 안을 들여다보니 비계가 홀의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고기만두나 피자의 토핑, 멘치가스 등 압도적인 고기의 양으로 맛을 내는 음식들처럼, 탕수육도 살코기와 비계가 올바른 비율로 섞여 육즙과 쫄깃함, 부드러움과 고소한 맛을 작은 몸에 응축시켜 튀겨내는 것이 훨씬 맛이 좋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가진 새콤달콤한 소스, 거기에 지루하거나 질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맛, 바삭하고 쫄깃한 튀김옷에 치아 사이에서 통통거리며 튀기듯 씹히는 살코기와 비계, 주변 테이블을 돌아봐도 간단한 식사를 하러 들어온 손님들 외에는 일반 탕수육보다는 북경식 탕수육을 주문한 곳이 훨씬 더 많았다, 이 북경식 탕수육을 한 번이라도 맛을 본 손님은 더 이상 일반 탕수육을 주문하지 않을 테지, 아마도 그럴 테지.


"이거 내일도 생각날 거야. 또 먹고 싶다."


"나도 그래, 또 와서 먹을 때에는 작은 거 말고 중간이나 큰 거 시키고 식사를 하나만 시켜서 먹자."


배가 많이 고팠던 이쁜 그녀와 김고로가 북경식 탕수육의 소스까지 긁어먹을 때쯤 넓고 동그란 접시에 각자의 볶음짬뽕이 푸짐하게 담겨서 나온다. 아래에는 노란 면발의 뭉치들이 넓게 붉은 짬뽕소스에 깔려있고 그 위에 청경채, 죽순, 버섯, 새우, 오징어, 양파 등 많은 짬뽕의 재료들이 올려져서 이것만 먹어도 배가 부를 모양새이지만 북경식 탕수육을 박살 낸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두려워할쏘냐.



"아, 역시 매콤하고 끈적한 이 냄새."


뜨끈뜨끈한 열기와 매운 짬뽕의 풍미가 볶음짬뽕에서 용처럼 뭉게뭉게 올라와 코로 들어온다. 웍에서 막 나온 불향과 고추, 마늘 등의 향신료가 서로 몸을 밀치면서 뛰어오니, 나도 맞아주어야겠지. 젓가락을 들고서 청경채와 면을 잡아 올린다. 묽은 듯하면서도 끈적한 짬뽕면이 젓가락에 말려서 올라온다, 입에 들어오면서 찰지고 진한 면발과 짬뽕소스가 입안에 벽지처럼 도배된다. 매콤함과 얼큰함, 해물의 시원함과 무겁고 농밀한 식재료들의 맛이 면발과 말려들어온다.


"허우... 허우..."


입안에 뜨거운 면과 짬뽕 소소를 넣고서 뜨겁지만 뱉지 못하고 입으로 크게 숨을 내뱉고 들이쉬며 천천히 저작운동을 하며 천천히 흡입한다. 그리고 다시 큰 새우를 껍질채 먹고 으적으적 씹는다, 새우등을 터트리지 못하고 함께 들어온 죽순과 버섯이 사각사각 쫄깃하게 씹히면서 질척이는 볶음짬뽕의 식감에 새로운 식감을 불어넣는다. 국물이 많은 일반 짬뽕도 아니고, 국물이 없는 볶음면과 같지도 않다, 적당히 촉촉하면서 짬뽕의 국물도 자작하며 끈적끈적 넘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걷는 차이루의 볶음짬뽕이다. 흩어져있는 면발들을 짬뽕소스에 회오리처럼 휘휘 젓고 돌려 말아서 붉고 노르스름한 엿 혹은 회오리아이스크림이 된 젓가락을 입안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후루루루룩



눈을 감고서 고추, 마늘, 해물, 채소 등의 식재료들이 농축되어 들어간 한입을 곰곰이 씹는다. 끈적끈적한 매콤함 사이에 해물과 채소의 진득함과 깔끔함, 그리고 그 뒤에 따라 들어오는 고소하고 풍부한 향미가 그쳐지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중화요리는 꼭 피해야 할 음식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 색감과 풍미가 계속해서 사람의 구미를 당겨서 식욕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중화요리는. 정신없이 면을 흡입하다 보니 그릇을 깨끗이 비운 김고로, 김고로보다 흡입 용량이 적은 이쁜 그녀의 면을 조금 더 받아서 다시 흡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도 둘 혹은 세 젓가락이면 모두 붉고 무거운 회오리가 되어 사라진다.


"와... 배부르다."


"응, 꽤 많이 먹었지."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집까지는 거리가 꽤 있지만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갈 생각이다.


"다음 주에 또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북경식 탕수육."


"또 와서 먹으면 되지, 무슨 걱정."


"그래, 그거 많이 시키고 나서 배고프면 또 시키고 그러자."


"그래그래..."


배부른 식사 이후에도 또 먹는 이야기를 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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