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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n 15. 2024

[미식일기] 효주원, 강릉

전설의 하얀 면발에 버무린 뜨거운 어둠의 불맛

식도락을 즐겨하면서 개인적으로 김고로 나 자신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테랑 식도락가분들에 비하면 신체적인 연식이 비교적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경력에 비례한 경험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듯이 식도락과 음식도 폭넓고 깊은 경험이 중요하다. 영어문화권에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고, 한국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식도락도, '아는 만큼 맛있다'라고 김고로 소신 발언한다.


전국의 유명 혹은 무명의 숨겨진 노포들을 다니시는, 김고로와 맞구독을 하고 있는, 브런치와 각종 SNS의 식도락가분들은 직접 입으로 경험한 지식과 연륜 깊은 삶에서 얻은 경험들을 통해서 김고로가 존경하는 식도락 이야기를 전달해 주신다, 김고로가 동경할 수밖에. 이전에 김고로가 근무하던 어느 회사의 식도락을 즐기시던 이사님께서 얘기해 주셨던 국내 중화요릿집의 '덴푸라'에 얽힌 대만-대한민국-중국의 외교에 대한 이야기나 재료와 음식의 각종 원산지, 전통 등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삶과 입으로 터득하신 말과 글로만 전달되기에 더욱 귀하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 한국 중화요릿집의 면발 색깔에 대한 차이를 들을 수 있었다. 동네의 어느 중화요릿집을 가도 면요리에 사용되는 중식면의 색상은 밝은 노란빛을 띤다. 그 이유는 면을 위한 반죽을 할 때 첨가하는 탄산수소나트륨, 즉 식소다가 함유된 면강화제를 넣는다. 식소다는 달고나를 만들 때나 제과제빵을 할 때 사용하는 그 베이킹파우더와도 동일한 물질. 이 식소다가 들어간 면강화제를 굳이 넣는 이유는 힘들게 반죽을 치대지 않아도 면발의 탄력과 쫄깃함이 살아나고 잘 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집의 면요리를 먹으면 아무리 튼튼한 위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노란 면' 때문, 식소다는 물과 만나며 알칼리성을 띠고 위장으로 들어가 위산의 산성을 중화시키면서 면의 위장의 기능을 방해한다. 그러니 튼튼한 위장을 가진 김고로도 중국집에서 면요리를 먹으면 소화를 기다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분들은 중국집의 면요리를 피하게 될 수밖에.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렇게 중국집 면요리에 들어간 식소다에 대한 글을 본 다음 날, 동네 이웃으로 거주하시는 N작가님을 통해서, 김고로의 주거지 근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노포 중국집의 시각자료를 보게 되었다. N작가님이 즐겁게 오전부터 맥주를 기울이시면서 드시고 계신 간짜장의 면발이 하얀색이었다. 면강화제라는 게 생기기 이전, 대한민국 중국집들의 면발이 노랗게 변하기 이전의 밀가루로만 반죽해서 제면 했었다는 그 전설의 흰색면이 김고로 근처에 있는데도 이제야 알았다니. 더 일찍 다녀보고 더 일찍 먹어볼걸, 후회막심.


면강화제를 넣지 않은 흰색 면이라는 것은, 면반죽에 더 노력을 기울였고 면이 조금 더 일찍 불더라도 본인들의 맛에 자신 있다는 의미. 거기다가 효주원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홀과 포장만을 운영한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흰면을 사용한다는 것은, 배달을 하지 않더라도 손님이 자주 오고 회전율에도 자신 있다고 김고로는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음식 맛에 자신이 있고 그것이 근간이 되어, 이렇게 장사를 해도 이익이 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돌아와서, 그럴 수 있기에 효주원이라는 오래된 가게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김고로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계산이 딱 맞아떨어지니 바로 이쁜 그녀와 함께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쁜 그녀는 특히나 간짜장을 좋아하는데 효주원의 간짜장과 옛날식 탕수육으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었다.


"오후에는 점심에 효주원 갔다 올까? 거기 간짜장에 탕수육을 잘한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럼 가자."


"응, 간짜장에 탕수육 먹자. 탕수육을 옛날식으로 한다고 하더라고, 신성춘이랑 모양새가 비슷해."


강릉도 초여름으로 접어들어 날이 덥지만 날씨가 청량하니 뭘 먹어도 좋은 하늘 아래 강릉이었다, 강릉의 교동 사거리의 카페들과 장칼국수집, 짬뽕집들이 모여있는 횡단보도들을 건너서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효주원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는 교동짬뽕집들과 장칼국수집들을 지나서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골목으로 지나가면 외벽은 번쩍거리는 밝은 회색의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새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 1층, 대로가 아니라 대로변 건물 뒤쪽에 가려진 건물의 골목 쪽으로 입구가 나있는 노포 중국집 효주원이 있다. 붉고 굵직한 궁서체로 '효주원'이라고 쓰여있는 배경 없이 당당한 그 상호.


통유리로 된 문에는 '효주원'이라는 붉은 글씨가 크게 붙어있고 아래 반절은 시트지로 붙여 가리고, 위에는 바깥 조광이 들어오는 전형적인 식당의 통유리 외관. 은색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잡아당겨 열고 들어가니 이미 3팀 정도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서 먹고 있다.


"선생님, 여기 간짜장 둘에 탕수육 세트요."


"네~ 홀에 간짜장 둘 탕수육 하나!"


이쁜 그녀와 김고로가 앉자마자 가게 앞으로 택시 한 대가 지나가더니 근처에 세우고 곧 기사님이 홀로 식사를 하러 들어오신다. 택시기사님들이 점심을 드시러 들어오는 식당이면, 신뢰도가 더욱 상승한다. 그 이후에 또 홀로 들어오시는 동네 어르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성분, 이 분은 짬뽕을 주문하신다. 손님들의 메뉴 주문이 고루 있는 것으로 보아 식사류의 맛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고 미리 생각하는 김고로.


주변을 둘러보니 입구에서 바로 정면에 보이는 주방, 음식만이 왕래할 수 있도록 비워둔 공간이 주방을 홀로부터 구분하는 아랫벽과 윗 통유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어서 주방장 겸 사장님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얼핏 볼 수 있다. 주방 앞에는 바로 계산대, 그 옆으로는 주방으로 통하는 통로 겸 식재료들이 쌓여있는 벽들과 공간, 손님들이 앉은 홀에는 식탁 유리가 올려진 두꺼운 나무 식탁과 의자, 우리가 앉은 식탁 위에는 공간에서 제일 최신으로 보이는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오래된 노포 중국집의 공간과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최신 아이돌들의 노래가 생방송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노포에서는 다들 종편 뉴스방송들을 틀어놓은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김고로에게는 생소한 장면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들어오면서 주문이 몰려서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역시나 중화요릿집답게 튀김요리인 탕수육이 먼저 식탁 중앙에 등장하고 간짜장이 뒤이어서 좇아 나온다. 탕수육은 조금 더 바삭하게 튀겨진 짙은 황갈색을 띠는 튀김옷이다, 약간의 노추로 짙은 갈색의 빛깔을 낸 설탕이 어우러진 탕수육 소스에 고기튀김이 버무려져 나온다. 노포 중국집들의 특징은 '찍먹'이 없다. 소스에 자신이 있고 소스가 묻어 부드러워진 튀김옷도 바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소스에 버무려 내놓는 음식이 탕수육이다.

효주원의 탕수육, 보라색 사탕무가 채소로 함께 들어가 있다.

어디, 그 자신감의 상징인 부먹으로 나온 효주원의 탕수육을 먹어볼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금색이 감도는 탕수육 튀김을 들어 올려 씹는다.


바사사삭 바삭


부드러운 단맛과 촉촉함, 입안에 척척 달라붙는 끈적이는 짙은 소스가 우선 김고로의 미각을 지배하고 뒤이어 이제 막 튀김기에서 나온 치킨의 튀김옷을 먹듯 적당히 얇게 고기를 감싼 바삭하고 또 바삭한 탕수육 튀김옷의 식감. 부드럽고 쫄깃하게 씹히는 튀김옷과는 다르게 이전에 도화루에서 맛을 보았던 탕수육과 비슷한 식감의 튀김옷을 지녔다, 노포 중국집끼리는 맛있는 것도 서로 통하는가. 사실이든 아니든 좋은 현상이다.


바사삭 으적으적


탕수육 하나를 집어먹으니 또 하나를 자동으로 집어먹게 된다. 김고로가 좋아하는 묘한 신맛이 있는 소스도 아닌데, 부드럽고 감칠맛 터지는 단맛의 탕수육 소스가 김고로로 하여금 숟가락으로 탕수육 소스를 퍼먹게 된다.


"이 탕수육 소스가 매력적이네. 숟가락으로 퍼먹어야겠어."


탕수육을 몇 조각 더 바삭거리면서 집어먹고 나서야 김고로는 탕수육 소스가 묻어 윤기가 반짝거리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입에 넣어 소스가 사라질까 아까워 쪽쪽 빨아먹고는 앞에 나와있던 간짜장에 눈을 돌린다. 검은 소스 속에 진주처럼 박혀있는 양파조각들이 일렁이는 간짜장에 숟가락을 푹 찍어 넣고 먹는다.

효주원의 간짜장. 면발 사진이 누르스름하게 나왔지만, 육안으로 보면 흰색이다.

간짜장이 따로 담긴 그릇에서부터 강한 불향이 화악 올라와서 김고로의 코를 잡는다, 입에서 이전 간짜장 집들에서 맛보지 못했었던 화끈한 불맛이 느껴진다. 오해하지 마라, 매운맛이 아니다, 웍에서 막 볶아져 나온 불맛이 코의 후각세포를 통해서 뇌까지 한 번에 올라온다. 겨울날 추운 바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안경이나 유리에 성에가 한 번에 생기듯, 콧구멍에 불맛 성에가 낀다. 후움 하고 들이마시고 씩 웃는다.


"간짜장에서 불맛을 느껴본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만족스러워?"


"그럼. 내가 짜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달라."


글로써는 효주원 간짜장의 불맛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짬뽕이나 사천요리에서 느꼈던 매콤한 마라향이 감미된 불맛이 아니다, 뜨거운 불맛에서 춘장과 고기와 채소들이 만나서 조화된 하모니. '불멍을 때리며 짜장면을 먹는다'를 맛으로 표현하면 이런 맛이려나. 이것도 참을 수가 없다, 그대로 숟가락으로 간짜장을 긁어서 면에 붓고서 슥슥 비빈다. 비비면서도 불향과 춘장의 향기가 올라와서 더 고조되는 기대감, 흥분. 간짜장을 비비면서 흥분해 보는 것은 오랜만인 김고로.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을 슥슥 구석구석 비비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면을 버무린다.


후루룩 쩌억


식소다를 넣은 면발만큼 면에 탄성이나 쫄깃함이 있지는 않다. 젓가락으로 말아 올리니 큰 면덩어리가 말려서 들려 올라온다. 면발이 튕기면서,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와 같지 않다. 잠시 숨을 쉬려고 올라오는 큰 고래처럼 올라오는 면발이다, 묵직함과 무게가 있다. 짜장면 덩어리를 입으로 베어 물어 씹어본다.


'쫄깃함은 많이 없다, 하지만 면발이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식감! 거기에 불맛이 넘치는 간짜장이 밀가루면발에 착 달라붙어 코팅되어 있으니 면발의 씹는 맛과 불맛이 훌륭해.'


김고로는 짜장면을 다시 큰 덩어리로 퍼 올리면서 씹어먹는다, 고개를 크게 여러 번 끄덕이는 김고로. 면을 씹으면 씹을수록, 목으로 넘기면 넘길수록 면발에 스펀지처럼 미세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포 혹은 구멍이라도 있는 면발인지 착각이 될 정도로 부드러운 면발이 치아가 즐겁도록 긴 솜사탕처럼 씹힌다. 중국집의 흰 면을 처음 먹어보는 김고로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식감이다, 옛 중국집의 면발은 귀한 맛이며 환상적인 식감이다. 아쉽다, 이 그릇을 빠른 시간 내에 흡입하며 사라지게 하기가 아쉬운 김고로. 숟가락으로 고기와 양파와 채소들을 퍼먹으면서 입맛을 다시 다진다.


"중국집 짜장면에 밥 비벼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이 집 짜장면은 그러고 싶네."


물론 아무리 마음껏 먹는 식사라도 과다한 탄수화물 복용은 꺼리는 김고로, 밥을 추가로 주문하지는 않고 짜장면의 양파와 짜장을 퍼먹고 다시 남아있는 면발을 아쉽지만 남아있는 면발들을 긁어모아서 그릇을 들고 입에 털어 넣는다.


사각사각


빠르게 볶아져 나와 식감이 살아있는 양파, 감자, 고기들이 입에서 경쾌하게 씹히고 면발들이 치아 사이에서 진동하며 머금었던 짜장을 혀에 소나기처럼 뿌린다. 짭짤하고 달큰한 촉촉함으로 젖은 김고로가 미소 짓는다. 짜장면의 양파와 짜장을 이렇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나, 개인적으로는 없다. 아쉽게도 음식은 정해진 양이 있고, 다 먹으면 식사는 끝이 난다. 누구에게나 시작과 끝이 분명한 식도락의 세계.


"이번에 단오 갔다 왔나?"


주방 일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드시러 나오신 주방장 겸 사장님께서, 단골로 보이는 택시기사님께 말을 건넨다. 기사님은 볶음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며 나가시는 길.


"단오? 단오오? 거기를 촌스럽게 누가 가."


마침 강릉은 6월 초라 단오가 시작되었고 단오는 강릉에서 제일 큰 축제다. 하지만 그 축제를 '촌스럽게 누가 가냐'라고 하시는 택시기사님의 말에 속으로 웃는 김고로.


'강릉 분인 것 같은데 단오제 가는 게 촌스럽다고 하시니 무언가 재밌네.'


아직 계산대에 사장님이 계시니 식사를 다 마치고 김고로가 얼른 가서 계산을 하며 말을 건넨다.


"사장님, 아주 어마어마한 간짜장을 하시는데요?"


"간짜장이요? 허허.."


기분이 은근히 좋으신 듯 입가에 미소가 씨익 번지는 사장님. 칭찬이 꼭 고래만 춤을 추게 하는 것은 아니지.


"또 오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시 강릉의 교동 사거리로 소화도 시킬 겸 걸어 나간다.


"다음에 와서는 덴뿌라에 볶음밥 먹어봐야지."


"덴뿌라도 있었어?"


"응, 덴뿌라 있던데, 역시 노포 중국집은 덴뿌라지."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끊임없는 음식 얘기, 질리지도 않는 김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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