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Jun 22. 2024

[미식일기] 나나, 나가사키 짬뽕과 탄탄면, 강릉

강릉에서 만나는 일본식 중화요리의 화끈한 불맛

김고로는 가능하면 같은 음식점에 대한 얘기를 중복적인 글의 소재로는 쓰지 않는다, 이전에는 그 마음에 들어온 훌륭한 음식점의 모든 메뉴에 대한 얘기를 글로 써내려는 욕심도 있었으나 김고로가 글에 쓰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는 글을 읽고서 호기심 혹은 구미가 당겨 해당 음식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여백의 미'처럼 직접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글을 보면 어느 음식점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혹은 김고로가 좋아하는 모든 메뉴에 대해서 세세하고 자세하게 글을 썼던 적도 있으나 현재 시점으로 올 수록 김고로가 음식점을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나 어느 한 방문시점을 선택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 김고로가 하고 싶은 얘기에 대해서는 조금 예외를 두었다. 이전에는 점심 밥집, 저녁 술집으로 운영을 하던 일식당이 점심과 저녁 모두 밥집으로 약간의 개편을 하면서 메뉴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메뉴가 상당히 맛이 좋아 나만 먹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소개했던 적이 있는 강릉 택지에 소재한 일본식 가정식당 '나나'이다.


주방과 요리를 맡은 한국인 남편 사장님과 홀과 음료를 주로 맡으신 일본인 아내 사장님이 운영하는 강릉 교동 택지의 나나. 외관은 하얀색 벽과 나무로 된 작은 창문, 커다란 원목의 미닫이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가면 여권이나 비행기표 없이도 강릉 안의 작은 일본을 잠시 방문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식당이다.


각종 탄산음료와 알코올음료에 대한 일본 유명스타들의 포스터와 일본 현지의 뉴스와 예능이 흘러나오는 천장 근처에 매달린 벽걸이 텔레비전의 시각과 청각적인 내부꾸밈들이, 일본어는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김고로로 하여금 '마스타, 나가사키 찬폰 오네가이시마스'하고 말하게 하고 싶은 분위기를 뿜는다. 이전에 이쁜 그녀와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일본식 닭튀김을 먹고서 깊은 감동을 받은 김고로는 이후에 직장 동료와 함께 와서 부드럽고 촉촉하며 달착지근한 식감의 오야코동을 먹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경험을 했었다.


나나의 오야코동, 촉촉하며 달착지근한 맛이 훌륭하다


치킨난반, 타이아게, 오야코동까지는 일본의 기본적인 가정식으로 말할 수 있으나 나나가 술집을 겸함 식당에서 이제는 일반적인 가정식당으로 변하고 난 뒤에는 나가사키 짬뽕과 탄탄면이 추가되어 5가지 메뉴 구성을 가진 일본 밥집이 되었다. 여기서 나가사키 짬뽕과 탄탄면은 전통적인 일본요리라고 하기보다는 일본식 중화요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이 있다고 한다면, 일본에는 중화식 라멘, 나가사키 짬뽕, 일식 탄탄면 등이 일본식 중화요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식 중화요리 식당은 일본 드라마나 만화를 보다 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일식당의 한 종류로 라멘, 차슈, 볶음밥, 짬뽕 등 우리나라의 중화요리 식당과 얼핏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중화요리를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나나는 나가사키 짬뽕과 탄탄면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는데, 이 메뉴들 또한 언급 않고 넘어가기는 너무 아쉬운 김고로.


"나가사키 짬뽕 하나, 탄탄면 하나. 이렇게 먹자."


"그래."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남겨, 내가 먹을게."


김고로는 결국 두 가지 메뉴를 한 번에 다 먹을 심산이다. 노란 조명 아래의 밝은 광택으로 빛나는 널찍한 좌식바에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나란히 앉아 아내사장님께서 가져다주신 시원한 보리차를 들이키며 음식을 기다린다.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짬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식 짬뽕이 한반도로 건너와 오늘날의 매콤하고 붉은 짬뽕이 되었으니까.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화교 요리사가 일본의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남는 재료를 볶고 끓여서 만든 면요리가 나가사키 짬뽕의 유래라는 것은 생각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매콤하고 칼칼하게 고춧가루와 고춧기름을 쓰는 한국의 짬뽕과는 다르게 '찬폰'은 돼지고기와 채소, 해물을 넣어서 진하게 우려낸 시원하고 고소한 육수를 기본으로 숙주나물, 양배추, 돼지고기, 해물이 들어간 하얀 짬뽕. 한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닭고기와 해물을 기반으로 한 백짬뽕과도 많이 다르다.


일본식 탄탄면으로 말하자면 한때 잠시 일본가정식이 유행했을 때 SNS의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메뉴, 중국 사천의 원조 탄탄면이 고춧기름과 간 쇠고기, 즈마장을 넣고 비벼 먹는 면임과는 반대로 거기에 돼지고기 육수와 고춧기름을 넣어서 국물이 있는 면요리가 되었다.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일본식 탄탄면은 국물이 라면처럼 넉넉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주방에서 웍을 잡고 불향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잠시 감상하고 나니 김고로와 이쁜 그녀 앞으로 뽀얀 국물에 노릇노릇하게 불향을 입은 나가사키 짬뽕이 누르스름한 숙주나물이 눈처럼 소복하게 쌓아 올려 등장했다. 이미 나올 때부터 웍에서 갓 나왔음을 당당하게 드러내듯 불향과 거뭇거뭇한 자국들이 면위의 양배추, 당근, 어묵 등의 식재료 위에 묻고 불향이 화산처럼 올라왔다.


나나의 나가사키 짬뽕, 거뭇거뭇한 가루는 웍질의 흔적이다.


"먹어볼까, 기대되는걸."


국물을 먹기 전에 면 위에 올려져 있는 숙주나물들을 검은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그득 집어 들어 올려 입으로 넣는다.


와삭와삭


불향을 입으며 뜨겁게 볶아져 나온 숙주나물들의 식감이 입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씹을 때마다 불향이 계속 스멀스멀 코로 올라온다, 뜨거운 아지랑이가 생각나는 향기다.


"으으음....!"


"와, 불맛..."


김고로가 자동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의 흐름이 끊어질세라 작은 국수저로 짬뽕의 국물을 퍼올려 마셔본다.


"아으.... 좋다."


진하고 고소한 살코기와 채수의 깔끔함, 오징어의 시원함이 뽀얗고 누르스름한 짬뽕에 녹아들었다. 뜨끈한 국물이 입안의 양쪽을 점령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한 고기의 무거운 맛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혀를 완전히 덮을 때에는 시원하고 깊은 해물의 맛이 가득 퍼진다, 그리고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지만 고기육수의 진한 맛의 여운이 길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시 짬뽕 국물을 한 수저 더 마시면서 다시 감탄사를 내뱉고는 양배추와 당근, 양파, 돼지고기를 집어 다시 씹는다. 사각거리는 양배추의 식감 사이로 달달한 당근과 양파가 부드럽게 지나간다, 뒤이어 따라온 돼지고기는 채소들 사이에 섞여 쫄깃한 식감을 선사하며 어금니 사이에서 씹힌다. 불향과 다채로운 식감, 거기에 분명한 주체성을 갖고 음식 전체를 지배하는 육수의 맛, 잘 삶아진 중화면의 쫄깃함은 덤이다.


"나가사키 짬뽕의 맛이 훌륭해."


"응, 숙취해소용으로도 좋겠어. 시원하고 진해."


그들이 나가사키 짬뽕에 취해서 빈 그릇을 보이기도 전에 이번엔 빙수의 간얼음처럼 보이는 다진파가 작은 언덕처럼 얹어진 탄탄면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매끈하게 둥글 거리는 간장에 조린 맛달걀, 바짝 그을려져서 두툼하게 누운 손바닥만큼 커다란 돼지 목살 차슈, 대파언덕 아래에 누운 숙주나물들과 그 옆에 길게 누운 청경채 한 잎, 매콤하게 변형된 일식라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외모와 향기로 '탄탄면'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김고로가 궁금한 것은 나가사키 짬뽕과 같은 육수를 사용했지만 그 위에 붉은 고춧기름 그림자가 드리워진 매콤한 탄탄면의 국물. 궁금함은 바로 풀어야겠지, 숟갈을 들어 탄탄면으로 직행한다. 고춧기름과 육수가 반반으로 섞여 입과 식도를 뜨뜻하게 데우며 들어간다.


"크으으으...!"


미끈거리는 매콤함이 식도를 칼칼하게 때리며 육수와 함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위장으로 낙하, 부드럽게 매운맛이 김고로의 얼굴을 시뻘겋게 달군다. 고추의 칼칼한 풍미와 즈마장의 깊은 고소함이 진한 나가사키 짬뽕 육수와 어우러져 다른 면요리에서는 느끼기 힘든 복합적인 향기와 맛을 선사한다.



탱글거리는 맛달걀로 위장을 잠시 식힌 후에 두터운 쇼유를 매콤고소한 육수에 충분히 적셔서 씹기 시작한다.


우적우적


소용돌이처럼 섞인 살코기와 지방의 미끌거리는 식감과 고소함, 쫄깃한 식감과 보드라운 육질. 김고로가 사랑하는 돈코츠라멘집인 '키라쿠라멘'의 목살 차슈와는 조금 더 두텁고 기름기가 더 붙은 차슈는 탄탄면의 견과류가 뿜는 고소함과는 다른 더 묵직하고 무거운 고소함이다.



"탄탄면을 먹고서 남는 국물에 밥을 먹으라고 하시는군."


"어디?"


"여기 메뉴판에 쓰여있어, 사장님이 추천하면 실행해 봐야지. 사장님, 여기 밥 한공기만요!"


손님의 요구사항을 바로 낚아채시는 사장님들 덕분에 바로 날아오는 밥 한 공기, 김고로는 밥을 탄탄면 국물에 후루룩 말아서 후루룩 숟가락질을 해본다.


"와, 역시 주방장 추천!"


매콤 고소한 국물에 갈린 돼지고기가 고슬고슬한 쌀알 사이에 섞여 입안에 도착하니 더 많은 육수의 맛을 머금은 한 숟갈의 맛이 입에 터진다. 여름날 물풍선을 맞아 흠뻑 젖은 아이와 옷과 같다.


"메뉴판에 쓰여있는 것을 그대로 해보길 잘했지."



방금 면발들을 다 해치운 김고로의 그릇에 남아있던 국물과 밥마저 김고로의 진공청소입 속으로 다 빨려 들어간다, 입안 곳곳에서 진한 육수와 매콤함이 연기처럼 오른다.


"하아... 배불러."


"나도 많이 먹었다, 오래간만에 국물에 밥 말아먹었어."


그릇들을 깨끗하게 비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잠시 앉아서 쉬며 집으로 걸어가기 전 숨을 고른다, 시원한 보리차로 수분 보충도 잊지 않는다.


"잘 먹었습니다, 훌륭한 짬뽕이에요!"


"감사합니다."


만족스럽게 즐긴 식사를 제공해 준 분들에게, 김고로는 항상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화자의 입장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사장님들과는 최소한의 접촉이 좋지만, 김고로는 사장님들께 기분 좋은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 마음을 조금은 접고,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강릉 택지의 골목으로 점차 사라져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