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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l 07. 2024

[미식일기] 오하이오(Ohigho), 강릉

산치맨의 파스타 변주에 얹어진 시원한 글라스 한 잔

이쁜 그녀는 약 1년 정도를 'O' 갤러리 겸 편집샵에서 파트타이머로 일을 했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굴레를 쓰게 하는 스트레스를 대가로 돈을 받는 과거의 직장에서 벗어나 더 나은 진로와 환경과 미래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씩 발을 디뎌 나갔던 첫 시작은 이 'O' 갤러리 겸 편집샵에서 일을 할 수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터.

사이버대학교에 편입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준비하는 한편, 스스로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노력을 그나마 수월하게 해 준, 이쁜 그녀에게나 김고로에게나 고마운 일터. 그 일터를 떠나게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O갤러리편집샵의 사장님들 되시는 N작가님과 S작가님 부부와 평일 점심에 느긋한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감사하게도 둘 다 쉬는 날이 된 월요일의 햇살이 따갑지 않은 날에 휘적휘적 교동사거리와 골목들을 지나서 1층에는 해물요리 전문점이 있는 오하이오(Ohigho)가 2층에 자리 잡은 건물에 다다랐다. 재미있게도 1층은 해물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휘황찬란한 조명을 쏘며 그 건물에 비늘처럼 붙은 타일 외벽이 반짝이는 반면 오하이오는 낮에는 조용하고 잠잠하며 밤에는 밝지 않게 은은한 조명이 깜빡이는 상반된 분위기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건물 1층 입구 근처에 마련된 2인용 흔들의자에 앉아서 서로의 SNS와 취미 생활을 둘러보며 햇빛이 먹구름에 가려지는 풍경을 맞이한다. 그러고 있다 보니 역시나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밝은 미소를 띠며 걸어오시는 N작가님과 S작가님.


"안녕하세요!"


"먼저 와 계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그네 타고 놀고 있었어요."


밝은 미소와 웃음을 서로에게 건네며 안부인사를 묻고 악수를 하고는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계단, 흰 벽의 건물 복도 안으로 진입하는 두 부부.


"사실 저는 여기 오하이오에 처음 와요."


"네? 처음 오세요?"


"네, 산치맨님이 이전에 산치식당에 하실 때 거기 메뉴는 다 먹어봤어서요."


그렇다, 이전에 김고로가 좋아하는 서부시장의 파스타를 주력메뉴로 한 양식당 '산치식당'의 산치맨은 현 오하이오 사장님의 제안을 받고서 오하이오의 주방을 책임지는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산치식당에서 요리하던 메뉴들도 그대로 가져왔고 거기에 샐러드, 계절마다 바뀌는 파스타 메뉴에 오하이오의 사장님이 바에서 제조하시는 음료들이 더해진 식사가 가능한 요리주점이 지금의 오하이오다. 오하이오가 처음부터 요리주점은 아니었다, 다양한 알코올 및 논알코올 음료와 타코, 하몽멜론과 같은 간단한 안주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으나 산치맨이 합류하면서 든든한 식사가 가능한 바(Bar)로 변신.


여담을 조금 더하자면 원래 '산치식당'이었던 자리는 일식요리와 일본 생맥주를 주로 판매하는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가 되었다. 산치식당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서부시장의 식당들이 장수하기를 바라는 김고로.


작가부부님들이 미리 예약을 해두셨는지 창가의 자연 조광이 밝게 비추는 자리에 보기 좋은 4인용 식탁에 식기들이 준비가 끝나있는 곳으로 오하이오의 사장님이 우리를 안내하신다. 메뉴판을 받아보니 역시나 산치맨의 색깔이 묻어나는 파스타들과 스테이크, 샐러드 거기에 바에서 제공하는 생맥주와 칵테일등이 다양하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각각 이전 산치식당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던 토마토베이컨파스타와 고수파스타를 주문하고 작가님들은 각자의 파스타와 우리와 함께 나눠먹을 살치살 스테이크도 함께 주문하신다.


"오늘 K 생맥주 있나요?"


낮술을 제법 즐기시는 N작가님의 물음에 오하이오 사장님의 표정이 잠시 민망해지신다.


"아.. 그게, 생맥주가 다 떨어져서 발주를 해서 오늘 오기로 했는데요... 아직 안 왔어요."


실망과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게 나타나는 N작가님의 표정, 맛있는 식사에 기대하던 생맥주를 못 마신다면 김고로도 충분히 그럴 테지, 암 누구라도 그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아....... 그러면 그거랑 비슷한 게 뭘까요? 아, 그거만 생각하고 왔는데."


"음, B병맥주가 있어요, 그걸로 드릴까요?"


"네네, 그거라도 주세요. 어쩔 수없죠."


주문이 완료된 이후 김고로, 이쁜 그녀와 N, S작가님들과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마침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하기도 하고 이쁜 그녀는 이번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몇 년 간의 인생동안 수고를 감당해 내었다. 그러한 동안, 그나마 이쁜 그녀에게 좋은 고용주가 되어주신 작가님들에게 김고로는 고마운 마음이 굉장히 컸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서로의 길을 인정하며 존경하고 각자의 길을 위해서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는 배려 넘치는 노사관계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어도 제삼자인 이쁜 그녀의 남편인 김고로가 보기에 그들은 그러한 관계로 보였다. 그래서 이쁜 그녀의 마지막 출근 전에는 꼭 작가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 김고로였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 그러한 노사관계는 굉장히 드물고 드문 가치를 지니니까.


김고로가 이직하게 된 직장과 이쁜 그녀가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앞으로 작가님들의 행보와 O 갤러리편집샵이 어떻게 더 노를 저어 나아갈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진분홍색의 속살과 거칠고 어둡지만 진한 고기향을 풍기는 살치살스테이크가 식탁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파스타가 향긋한 개성을 풍기며 우리들의 앞에 나선다.


이쁜 그녀가 주문한 고수잎 가득한 고수파스타에서는 달콤하고 새콤한 태국 음식인 '팟타이'와 같은 향미가 이미 뜨거운 김을 타고 넘실거리며 김고로의 코까지 날아온다. 김고로의 앞에 묵직하고 진득하게 붉은 얼굴을 들이미는 파스타는 '토마토베이컨파스타', 산치맨이 산치식당에 있었던 시절에도 선을 보인적이 있는 파스타이지만 김고로는 먹어본 적이 없기에 궁금한 파스타였다.



진하고 깊은 토마토소스에 두툼한 훈제 삼겹살 베이컨, 약간의 다진 양파와 파마산 치즈가 토마토에 녹아든 무겁고 묵직한 맛을 예상하게 하는 파스타의 달콤하고 새콤한 토마토 향기가 김고로의 후각 세포를 깨운다.


"햐... 베이컨이 두툼하고 양도 많네."


김고로는 베이컨들을 먼저 포크로 집어서 씹으며 잠시 눈을 감는다. 두툼한 살코기와 지방이 어우러진 삼겹살의 훈제 풍미, 매끄럽고 탄력이 튕기는 베이컨의 겉표면에 묻은 토마토의 달콤한 맛이 고소한 베이컨의 비계, 훈제맛과 섞이며 묘한 감칠맛을 만들어낸다.



'아, 이 훈제 베이컨 제품... 나도 좋아하는데.'


마침 토마토베이컨파스타에 사용된 훈제 베이컨 제품은 김고로도 집에서 크림파스타를 만들 때면 애용하는 두툼한 베이컨이다, 파스타라는 묵직한 탄수화물 음식에서 '나는 분명한 동물성 단백질이다'라는 존재감을 내뿜기에는 이 베이컨만큼 잘 어울리는 녀석이 없지.


'마침 겉면도 바삭하게 잘 익었네, 식감도 훌륭해.'


김고로의 치아 사이에서 단단하게 씹히는 베이컨 표면의 식감이 바삭하게까지 느껴져서 고기를 씹는 질감이 즐겁다. 거기에 놓치지 않고 토마토소스를 스파게티면에 잔뜩 비벼서 크게 한입 입안에 가득 넣는다. 탱글거리며 잘 삶아진 스파게티 가닥 사이로 진한 토마토의 맛이 은은하게 달콤한 양파와 어울려 새콤달콤하게 양볼 가득 묵직한 감칠맛과 소스에 녹아든 달콤하고 고소한 육즙이 혓바닥 위로 퍼져 나온다.



식사를 시작하고 나니 제법 시장하기도 했던 김고로, 포크질을 멈추기 쉽지 않다. 식사 중에 마침 식재료와 이런저런 식당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을 많이 하면서 잠시 턱의 저작활동을 멈추기도 했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이 김고로에게는 제법 즐거운 시간이다. 잠시 파스타 씹기를 쉬면서 식탁 가운데에 누워있던 부드럽고 육즙 구수한 스테이크를 씹는다. 선분홍색의 미디엄으로 잘 구워진 스테이크는 쫄깃하며 보드랍다, 주문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 산치맨의 살치살.


함께 곁들이려고 주문한 모히또도 홀짝홀짝 기울이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금방 바닥을 보이는 토마토파스타, 식사가 마무리되어 감이 섭섭하고 아쉽지만 앞으로도 또 다른 맛있는 미식을 만날 기회는 풍부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포크와 숟가락으로 소스까지 싹, 깨끗하게 비워낸 그릇을 보내준다.


깨끗하게 빵으로 소스까지 닦아먹으며 주방의 요리에 찬사를 보내는 스카르페타처럼, 떠나야 할 때는 깔끔하게 박수를 치면서 보내고, 또 떠나옴이 아직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여행에 기대와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며,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N, S 작가님들 부부와의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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