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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May 25. 2024

일주일 중 하루는 낯설고 싶다

낯선 토요일 만들기

ㅇㅇ 중학교까지 1시간 10분이 걸렸다. 둘째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고사장을 찾았단다. 덕분에 처음으로 그곳을 가보게 됐다. 토요일은 새로운 것을 찾고 싶다. 익숙한 5일과 낯선 하루 그리고 쉬는 하루면 최고의 일주일 완성! 딸 덕분에 낯선 하루를 만났다.


한국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10시까지 입실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엔 시험 장소인 학교 현관문을 잠근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엄격해 보이는(??) 절차 속에서 시험 보던 나는 뿌듯했다. 엄격해 보이는=있어 보이는,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과제하느라 바빴기에 떨어질 각오로 시험 보는 딸이다. 그런 각오를 가진 딸을 위해 오전을 바친 나는 억울한 엄마다.


고사장 근처엔 카페가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주차할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했다. 초록 신호등에 맞춰 운전하기. 초록 화살표가 뜨면 그곳으로 가고 초록색 바뀌면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가 어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드디어 주차할 만한 곳을 찾아낸 거다. 고사장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졌다. 눈 주위와 머리가 커피를 요구했다. 편의점 커피를 먹을 수도 있겠지만 주변 화장실 파악이 안 된 곳에서 이뇨 작용이 탁월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오다가 공원을 본 것 같아서 걸었다. 갈수록 이 방향이 맞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장례식장이 나왔다. 장례식장 맞은편엔 작은 숲이 보이고 오솔길이 보여서 또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꺄악!”

죽은 쥐에 똥파리가 붙어있었다. 장례식장 맞은편이라 더 을씨년스러웠다. 인도인지 도로인지 모를 길 가장자리를 걸었다. 부서진 시멘트 파편이 콩알 같아서 걷기 불편했다. 걸을수록 알게 되었다. 공원 가는 방향은 아닐 거라는 사실을. 전주 교도소가 나왔다. 이제 INFP의 특징이 발현된다.

[출소할 때도 저 입구로 하나? 그러다 나랑 눈 마주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걸음을 돌렸다. 죽은 쥐에 놀라서 놓쳤던 그곳의 담장을 살펴봤다. 담장 너머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딱 그곳을 향해 베란다 창이 난 아파트였다. 7층 정도면 그곳의 운동장 같은 곳이 보일 거 같았다. 교도소 옆 장례식장, 맞은편의 이름 모를 작은 숲. 내 걸음은 무의식인지 의식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빨라졌다. 카페고 공원이고 다 포기했다. 차 안으로 들어오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교도소 밖이 너무 아름다우면 억울한 생각이 들지도 몰라. 그라데이션처럼 점점 색을 입은 세상을 보는 게 나을 거야.]


뚱딴지같은 생각을 했다.


다시 지루해졌다.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무슨 향기가 났다. 도대체 뭐지? 가로수로 심은 작은 꽃에서 대단한 향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자스민과일까? 귀찮음이 강해서 궁금해도 그냥 지나쳤는데 향기를 잊고 싶지 않았다. 오월에 피는 작은 흰 꽃으로만 기억하면 쉽게 잃어버릴 게 뻔하니까.


[쥐똥나무]

찾은 김에 쥐똥나무에 얽힌 전설까지 읽었다. 결론은 가을에 쥐똥같이 생긴 열매가 열린단다. 아름다운 향기에 [똥]이 들어가서 의아했던 차다.

세상에, 아까 찾던 공원이 나타났다. 반대 방향이었다니, 내 방향 감각에 또 흠집이 났다. 이러니 에피소드 부자가 되나 보다.

둘째는 11시 40분쯤에 연락이 왔다. 마침 학교 근처에 주차해뒀다. 잘 봤냐는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

“응, 93점이야. 1급 합격이야.”

“읭?”

내가 처음 한국사 시험을 보기 위해 기출문제집을 몇 권을 풀었던가. 그리고 맞은 점수가 93점이었다. 근데 겨우 쬐끔 공부하고 93점? 좋으면서도 억울했다. 나도 어렸을 때 공부할걸, 나이 들어서 하니까 개고생이구나. 암튼 잘 했다. 떨어지면 기름값 받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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