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시절, 친구들과 변산에 놀러 가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은 꼭 있다. 인후동 방향에서 오는 버스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봤을 것이다. 그때는 친구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상상해봤다. 어리바리 친구를 떼놓고 갈 수도 없는데, 버스 시간보다 언제나 서두르는 친구들은 나에게 혼구녕을 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랬을 거 같다.
친구들 얼굴은 닮은 구석이 없다. 그러나 어째 약속 장소에 늦게 가는 날이면 친구들 모습은 가족처럼 닮아있었다. 콧구멍에서 바람이 쑤욱 빠진 게, 여행 가는 설렘은 없고, 팔짱을 끼고서 바라보는 눈빛은 채권자 같다. 욕을 하지 '않'는 착한 친구들인데, 이날만큼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욕이 쏟아졌다.
"야, 이년아. 너는 어쩌면 만날 늦냐? 차 놓치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S는 '이년'이 최고 높은 욕설이다. 다른 친구 욕도 들을 수 있다.
"저 가시나는 한 번도 제때 온 적이 없다니까. 야 차 타러 가자."
H는 평소 소 같은 눈인데, '가시나'라는 말이 나올 때는 아래턱이 슬며시 올라가고, 턱 때문에 눈은 자연스레 작은 눈이 된다. 그리고 M은 그 상황을 즐긴다. 기다림에 지쳐 화내는 친구들만 보는 내 입장과 달리, 늦게서야 달려온 내가 혼나는 모습까지 구경한다면 나보다 훨씬 입체적인 구경거리인 건 틀림없다. 내 표정은 어땠을까? 새삼 M에게 묻고 싶다.
이후로 애들은 만날 늦는 나 덕분에 한 가지를 배웠다. 나를 제시간에 만나려면 약속 시간에서 10분을 뺀 뒤 말해주는 걸로 저희끼리 입을 맞춘 것이다. 약속 장소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생경함에 난 매우 놀랐다. 어색하여라.
23살이 되던 해에 연애를 했다. 내 말이라면 무엇이든 웃음으로 화답하는 남자. 뭐든 다 해줄 거 같았다. 다만, 난 현실적인 사람이라 '하늘의 별을 따 달라.'는 식의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기적이었다. 주로 '착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살았지만, 내가 그에게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감춰둔 본성이 나왔다.
저녁 7시에 복지회관 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늑장을 부리던 나는 연애를 하면서 달라졌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미리 나왔고, 정각 7시가 되었을 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2분에 한 번꼴로 시간을 확인하며, 예쁘게 보이려던 얼굴은 포기한 사람이 되어갔다. 오히려 나 뿔났으니까 잘해보라는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해도 지고 깜깜해서 무서운데 연락도 없고 왜 만날 시간을 안 지키냐고요?"
"근무 교대하기 전에 사건이 생겨서...... 미안."
연애할 땐 간단하게 말하는 '미안'이 가당치 않았다. 뭔가 더 구구절절해야 하지 않냐고. 연애 기간의 나는 화내는 역할은 다 내 거다. 친구들은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을 거다.
"네가 할 소리야? 이 년아?"
뭐 이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