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하늘빛인 12월 오후, 역시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도저히 무거워서 못 견디겠는지 수제비 반죽처럼 묵직하게 눈이 내린다.
“야, 빗자루! 비료포대도 가져와!”
오빠와 나, 그리고 남동생은 집 앞 골목으로 나섰다. 눈을 모으고 비료포대로 눌러서 억지로 길을 낸다. 반지르르한 광택이 돌았고, 해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사라졌다. 오빠와 난 이 광경이 익숙하다. 남동생은 내년쯤엔 그럴 것이다.
“야, 바가지에 물 떠 와.”
오빠는 피라미드의 최고봉처럼 굴었다. 여느 때와 달리, 나와 동생은 시킨 대로 서둘렀다. 물은 한쪽에만 쏟게 되면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겨울밤, 우리는 설렌 마음으로 작은 눈 언덕을 만들었다. 아침이 되면 굽어진 골목을 누비며 함성을 질러댈 것이다.
“어떤 놈들이야? 아주 반들반들하네. 응? 자빠지면 어쩌라고 이래 놓았어?”
우리는 감히 대문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밖에선 연탄 깨는 소리가 들린다. 어른 말에 반박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어제의 수고는 조용히 묻어두고 우리는 마당에서 다시 작은 언덕을 만들어야 했다. 연탄 깨는 어른은 누가 그랬는지 범인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 골목에 애들은 우리 집 외엔 없었으니까. 적당히 겁만 주신 거다. 들뜬 마음은 이내 김이 새어나갔으니 동네 동생집에 놀러 가려 했다.
“난 문희네 집에 놀러 갈 거야. 넌 따라오지 마.”
순진하게도 내가 어디 갈지 다 말해놓고선 따라오지 말라고 동생에게 말하니, 동생은 내 뒤를 졸졸 따라오지.
어른들은 집 앞 도로를 신작로라고 불렀다. 근처에 광산도 좀 있는 것을 보면, 일제의 손을 탄 게 분명하다. 신작로를 중심으로 한쪽은 주택가, 다른 한 쪽은 논이다. 우리 집 근처 골목은 산이 가깝다 보니 골목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내 뒤에 동생이 따라오는 게 은근 마음이 놓였다. 아까는 동생과 싸워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무어든 사람이 모여야 재밌다. 불쑥 들어갈 수 없어서 대문 밖에서 문희네 집을 들여다봤다. 어디든 대가족으로 살던 때인데 문희네 집 할머니는 드라마에서 본 듯한 분이었다. 제주도 거상 김만덕이나 양반집을 쥐락펴락하는 안방마님 같은 카리스마에 문희네 집을 들어갈 때면 눈치 없던 나조차도 눈치를 봤다. 문희는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는 안 계신 듯하다. 조용히 발을 마당으로 들인 순간, 할머니를 닮은 하얀 진돗개가 유유히 걸어오더니 내 다리를 꽉 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그 녀석에게 당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도 그 녀석의 아기가 귀여워서 들여 보다가 내 엉덩이를 물기도 했다. 나도 참, 속도 없었다.
문희는 그나저나 어디 간 거지? 집에서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 다시 골목에서 서성인다. 놀고 싶어서 다친 것도 대수롭지 않던 때다. 짧은 골목이지만 문희네 골목은 경사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문희는 놀이기구 탈 때 지르는 소리를 내며 뛰쳐나왔다. 뒤이어 김만덕 거상 같던 할머니는 싸리비를 들고 문희와 5미터 간격을 두고 문희를 쫓았다. 아슬아슬한 5미터 간격은 줄지 않고 조손은 달렸다. 비명만 없다면 싸리비를 바통으로 하는 이어달리기인가 싶었다. 웃음 섞인 비명 지르는 문희와 이번엔 본때를 보여줄 듯한 표정으로 달리는 할머니. 그 골목에 가면 문희 할머니가 떠오른다. 아, 그때 물어볼걸.
“문희야, 너 결국 싸리비로 얻어터졌냐?”
켜켜이 쌓인 아파트에서는 모를 생기가 있었다. 방문을 열고 마루를 거쳐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으로 드나드는 인기척이 모여 어느 순간의 ‘박제된 추억’이 될 그 골목길, 이제는 산책으로 떠난다. 내가 사는 연립주택이 아닌 골목길로 가는 산책길에서 추억을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