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by Family: 세 번째 "유진, 마르땅 그리고 이안이"
세상에는 두 가지 가족이 있습니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가족,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가족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으로 만나게 되는 인연은 일반적으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인연이 아니기에, 때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우리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갑니다.
가족이 된다는 건 소중함이라는 추상성에 하나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거나, 사랑하는 연인, 친구에게 애칭을 부르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이름 속에는 서로에게 바라는 하나의 소망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기쁠 이<怡>, 편안 안 <安>
:이안
앞서 말한 것처럼 소중함에 대해 '이안'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낸 가족을 만났습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구보다 '기쁘게' 꼬리를 흔들어주던, 첫 만남에서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을 준 강아지와 함께 사는 가족. 콤마가 만난 세 번째 가족은 '유진, 마르땅, 그리고 이안'입니다.
자기가 만든 가족은 자기한테는 자부심이래요. 자기가 이런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거에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대요.
한국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마르땅 씨이기에 유진 씨의 통역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르땅 : 두 개의 가족이 있대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가족. 그리고 내가 만드는 가족.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가족은 이미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되게 많지만, 그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나 장점을 찾아가는 것이고. 자기가 만든 가족은 자기한테는 자부심이래요. 그리고 자기가 이런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거에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대요. (웃음) 뭐 가족이어서 위안도 많이 받지만, 가족이어서 감당해야 하는 그런 걱정들 이런 것들까지 다 포함해서 가족(이라고 생각한대요).
눈치채셨겠지만,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두 가족’의 형태는 사실 마르땅 씨가 한 말입니다. 두 가지 형태의 가족 중에서 태어날 때부터 만나진 않았지만, 유진 씨, 이안이라는 인연으로 마르땅 씨는 자신의 두 번째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레게머리의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던 마르땅 씨가 부담스러웠던 유진 씨, 어느 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난 마르땅 씨. 어느새 이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며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청춘을 살고, 서로의 청춘을 응원해가며 작가, 배우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글로 풀어내기엔 참 기나긴 20대, 30대 청춘의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진 씨의 말로 이 둘은 2020년 다시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정착지를 전주로 잡고 살아가던 중에, 유진 씨는 수업을 나가던 동네의 정육점 할머니에게 이안이를 선물 받게 되었고, 이안이와 유진 씨, 마르땅 씨는 서로의 자부심과 같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저 균형을 맞추는 것일 뿐
Q : 앞으로 함께 어떤 가치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나요?
유진 : 요즘 느낀 건데 저는 진짜 균형인 것 같아요. 살면서 나이가 이렇게 되니까 중요한 게 균형이 아닌가 싶네요.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사랑, 행복 많잖아요. 근데 지금 제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살고 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을 균형을 맞춰가면서 사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살지만, 또 저 자신으로서의 시간과 삶이 중요하잖아요. 결혼해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지만 제 인생은 또 저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이 있으니까.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의 균형을 잘 맞춰가면서 살고 싶어요.
태풍이 온다고 해서 테라스의 화분을 치웠다. 코로나에 비에 태풍까지.. 자연이 복수하는 건가,라고 했더니, 마르땅이 말했다. 자연은 복수하지 않는다고... 그저 균형을 맞추는 것일 뿐이라고..(출처 : 유진님 인스타그램 , @malletshin_)
살아온 날의 반 가까이를 함께했던 서로지만, 이들에겐 각자의 삶이 존재합니다.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채 새로운 환경에 놓였던 유진 씨는 마르땅씨와 함께 언어를 배우며 꿈을 이뤄나갔고, 마르땅 씨 역시 한국어를 모른 채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나아갈 앞으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를 수 있는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르땅 씨에게는 프랑스가, 유진 씨에게는 한국이 익숙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는 익숙하고 편한 공간이 한 사람에게는 낯선 환경과 감정이 연속되는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가족이 된 이안이까지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모양을 맞추어 나가기 위해선 늘 그랬듯 이들의 중심엔 '균형'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삶, 우리의 삶
Q. 두 분에게 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유진 : 제가 읽는 책들이 그렇게 행복한 책들이 아니어서. 책은 비극적인 것들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도 많고. 저도 글 쓰는 사람이고, 글 쓰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책에는 왜 그렇게 힘들고 슬픈 이야기들이 많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기쁠 때는 우리에게 별로 책이 필요하지 않아요. 기쁠 때는 기쁨을 누리면 되잖아요. 근데 저희 둘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저희 둘의 관계에 있어서 책은 사실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저희의 생활, 삶만으로도 충분해요. 책은 저라는 인간, 저 혼자의 세계를 위한 것 같아요. 이 사람도 자기만의 세계의 책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 같아요.
Q. 서로에게 언제 든든함을 느끼시나요?
유진 : 지금은 서로 용감해지는 시기여서 제가 어떤 응원이나 든든함을 기대하기보다는 나 혼자 되게 용감해져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둘 다.
작가와 연출가가 가족을 만들었다면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함께' 가지는 취미와 '함께' 추구하는 가치, '함께' 읽어나가는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그들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정취와 도취가 절정에 이르면 사실 말이 필요 없지요. 오사무가 그러더군요.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더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고"라는 말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외국인'과 같은 틀에서 던진 질문은 단순히 그들을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명목적인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작가', '연출가'에서 벗어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부부'라는 이름에서 벗어난 서로의 삶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든든한 이유를 알지 못해도, 각자의 취향이 달라 모든 것을 늘 함께하지 않아도, 그들은 그들만의 속도로 '균형'을 맞추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셋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매일 아침, 저녁 이안이와의 산책 시간이 있었고, 산책을 하며 그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하늘을 바라보고, 계절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우연하게 찾아온 이안이의 존재는 산책이라는 둘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잡아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안'이라는 이름은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가치관을 담아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안'이라는 새로운 가족으로 또다시 셋 간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가족, '마르땅, 유진, 이안'이 늘 기쁘고 편안하길 바랍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유진, 마르땅, 이안' 가족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본 인터뷰는 코로나 19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인터뷰와 사진은 12월 공개되는 매거진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