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단어들을 담아] 고슴도치의 소원; 나의 생겨먹음을 자책하지 않기
n회차 관람을 한 작품 중 1위를 꼽자면 단연 〘멜로가 체질〙.
마음이 소란할 때, 듣기 좋은 잔소리가 필요할 때, 혼자 있고 싶은데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때
틀어두는 가장 애정하는 이야기이다.
드라마 제목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감독도 나도 손에 꼽는 명대사는 "나 힘들어.".
연인의 사망 후 지속성 복합 애도 장애를 겪고 있던 은정이
가는 한숨처럼 어렵게 내뱉은 말이다.
아슬아슬했던 은정이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기점이기도 하다.
마음이 힘들 때, 살면서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두 시절과 비교해보는 습관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잘 넘길 수 있다고 다독여보는 것인데,
그래도 마음이 그러모아지지 않으면 혼자 짱박히는 시간을 택한다.
이 산을 다 넘는 데 얼마나 숨이 더 필요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숨을 아끼느라 힘들다는 말조차 쉽게 뱉지 못할 때가 있다.
대신 명확히 웃지 말아야 할 장면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고
감정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의미 없는 단어만 내뱉다가,
나를 둘러싼 당신들도 숨이 가쁘겠지 생각하면서 말을 아낀다.
그렇게 말을 아끼다,
(등장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잃을 뻔한 아찔한 경험치들이 생기기도 했다.
딱 이 산만 무사히 넘으면 당분간은 등반길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를 밀어붙였다.
숨을 다 쓴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여기서 숨을 내쉬면 이 산을 완등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또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을 늘 짊어지고 다닐까.
다 끌어안고서는 뛸 힘이 없는데, 걷기라도 해야 한다며 재촉하는 나를 원망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서 나밖에 탓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의 마지막 장면이 무엇이 되든 간에 걷다 말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멈춰서 본 내 울타리 안에서는,
여전히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꽃다지도 바람에 살랑거렸다.
이제는 좀 일어나 앉을 힘이 생겼다.
숨이 가쁠 때 비교해 볼 시절도 하나 더 쌓았다.
나를 아무리 원망해봤자, 나는 평생 나와 부둥거리며 살아가야 한다.
같이 경주할 토끼와 거북이는 내 울타리 안에 들이지 않았으니,
내 속도로 적당히 산들거리며 또 걸어보자.
나 힘들었어. 그래도 괜찮아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