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단어들을 담아] 나에게 향해야 했던 말을 이제야 돌려줘보는 날
이사했다는 친구에게 보낼 선물로 컵을 골랐다.
어떤 말을 붙여 보낼지 고심하다 고른 문장은
"네 몫의 근심이 딱 이 한 컵만큼이기를 바라. 물론 내 몫도."였다.
아끼는 사람에게 전하기를 선택하는 말은 대개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당시의 나는 큰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시험으로 인한 근심이 나를 갉아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 말을 나에게는 해주지 못하고, 친구에게 대신 전하면서 나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나 좀 위태롭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시험이 끝난 지 80일이 훌쩍 넘었고, 약 2주 뒤면 결과 발표가 있다.
새삼스레 친구에게 전했던 말이 떠오르는 건 다시금 그 말이 나에게 필요해지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나에게 필요한 말이 나를 향할 수 있게, 조금 늦었지만 윗 말에 덧붙여본다.
실체를 다 꾸리지도 못한 채 먹구름마냥 다가오는 내일이 너무 버거운 날,
오늘을 더 촘촘히 살았어야 했다고 자책하거나 내일이 오기 전 세상이 멸망하게 해달라고 빌기 전에
따뜻한 차부터 내리자.
마음을 달랠 겸 홀짝이는 시간은 작은 한 틈이지만,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초롱빛 덕에 또 하루를 무사히 넘기게 되더라.
우리 딱 그 한 컵만큼만 돌아보고 걱정하다 잊어버리자.
어차피 너는 이제껏 네 덕분에 이만큼 잘 해왔으니, 그 이상은 깊게 쌓아두지 않게끔.
2024. 4. 6.
세대주 출근길에 따라나선 한적한 주말 광화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