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되기 싫어서
막내 인생
나는 가족 중 막내로 8년을 자라왔다. 진짜 막내인 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최종적으로 막내로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1차적인 자아 형성기의 나는 막내였던 것 같다. 어른도 아니고, 언니보다도 어려 가장 권한이 없고 모든 것에서 후순위인 막내.
고국을 떠나며 입학하게 된 대학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 동기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국비 유학 프로그램의 이수로 1년씩 입학이 늦어진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유학으로 재입학을 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막내였다.
재수도, 휴학도 없이 달려 6년 만에 학사, 석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25세의 나이로 직장에 입사하고 나니 또다시 막내가 됐다. 입사 후 3년이 지나도록 나보다 어린 신입사원은 없었다.
영원한 막내는 없다
하지만 막내의 삶도 영원할 순 없다. 가정에선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9살부터는 막내가 아니게 됐다. 대학에서는 2,3년이 지나자 나보다 나이가 어린아이들이 입학했다. 회사도 입사 후 4년째가 되던 해, 처음으로 나보다 어린 신입 사원이 우리 팀에 입사하게 됐다.
‘나는 이런 선배가 되어야지 ‘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
막내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며 해온 생각들이지만, 실제로 내가 좋은 선배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제안이었지만 후배에겐 명령일 수 있다.
나는 조언이었지만 후배에겐 참견일 수 있다.
나는 관심이었지만 후배에겐 간섭일 수도 있다
간섭하고 명령하고 참견하는 나쁜 선배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새삼 나에게 좋은 선배였던 그분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먼저 선을 넘어와 준다면
먼저 그들의 선을 넘는 건 ‘꼰대’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용기는 내 안에선 용기였지만, 밖으로 표출될 때 객기가 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그러면서 다행이게도 나에게 이런 용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막내로만 살다 나이만 들어버린 날 받아주는 후배들은 먼저 선을 넘어와 준 후배들이었다.
“벌써 아이가 있으세요? 그럼 대체 결혼을 몇 살에 하신 거예요? “
“사투리가 어설프신 게 서울분이신 거 같은데요?”
내 사생활을 궁금해해 주고, 나를 가벼운 웃음거리로 만들어주는 무례함이 고맙고 반갑다.
나를 꼰대로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선을 넘어 준 그 용기가 무척이나 고맙다.
개인주의화가 가속화되며 가벼운 질문 하나에도 ‘감수성’ 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서로 간의 독립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배려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은 서로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던 때의 뜨거움이 그립기도 하다.
시대가 지나면서 관계의 온도는 더 차가워진다. 나는 계속해서 따뜻하고 싶지만, 나를 뜨거워할 누군가에게 민폐일까 싶어 ‘감수성’을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시대에도 내가 좋아하는 뜨거움으로 먼저 다가와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나도, 누군가에게 그가 원하는 온도로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일 수 있길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