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겨자버섯 Jul 26. 2024

[우마무스메] 표에 맡겨진 팬들의 꿈

선수와 팬의 관계를 극대화하다

우마무스메 극장판을 4회차 관람하고 왔다. 친구에 가족까지 다 끌고 가서 한 번씩 보여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 미소녀 캐릭터라는 진입장벽이 있을 뿐, 정통 스포츠물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었는데, 우마무스메 ip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잘 나타났다는 점이다. 바로 팬의 역할이다.


우마무스메의 모티브가 된 것은 경마다. 경주마들을 미소녀로 바꾸고, 동물의 경주를 스포츠 종목으로 바꿨다. 그러고 나니 경마의 사행성이 애매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우마무스메에서는, 본래 '배팅 금액'이었을 것을 조금 더 추상적인 형태인 '팬들의 기대'로 치환했다. 이로써 세계관 안의 우마무스메 달리기 경기, '트윙클 시리즈'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팬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흥미로운 구조가 되었다.


트윙클 시리즈의 선수들은 운동선수인 동시에 아이돌이다. 큰 규모의 경기(G1)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화려한 옷, 작중 용어로 '승부복'을 입고 달린다. 레이스가 끝나면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을 향한 '위닝 라이브'를 선보인다. 노래 안에서 맡는 파트 비중은 레이스 순위대로다. 선수들은 달리기에만 쏟아부어도 모자랄 시간을 노래 가사 외우고 안무 익히는 데 쪼개 쓴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뛰고 있다. 움직이는 데 불편해 보이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선수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몸싸움을 벌이며 최선을 다해 달린다. 그리고 그 옷을 그대로 입고 무대에 올라간다. 이들에게 승부복이란 각자의 각오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응원해주는 팬들을 위한 가시적 표현인 것이다.


위닝 라이브의 끝,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에는 팬들의 함성과 응원이 항상 들어가 있다. 모든 육성 스토리에는 팬레터 이벤트와 팬 감사제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팬 감사제는 고유 스킬 레벨 상승 이벤트다. 우마무스메들은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을 코앞에서 마주함으로써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성장을 이룬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도 이러한 요소를 반영하려고 한 것이 눈에 띈다. 레이스 순위에 따라 팬 수가 증가하며 이는 육성 캐릭터의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 시나리오는 대놓고 위닝 라이브와 팬서비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번에 개봉한 극장판은 어떨까. 오프닝의 마지막에 신문이 등장한다. 그 뒤로도 TV가, 전광판이, 잡지가, 스마트폰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정글 포켓이 에고 서치(자기 이름을 인터넷 창에 검색하는 것)를 하는 장면, 라이벌인 아그네스 타키온이 정글 포켓의 인터뷰를 돌려보는 장면은 의미가 크다.


정글 포켓의 슬럼프를 신문이 구겨지는 것으로 표현했다.


물론 팬을 향한 보답 또한 프로 의식에 들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누가 봐도 그 이상으로 보인다. 팬의 반응이 우마무스메를 만든다.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고 팬은 삶의 용기를 얻고, 선수는 그러한 팬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는다. 팬의 존재감이 아무리 커 봐야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한 장치 정도로 활용되던 다른 스포츠 장르 창작물과는 구별되는 모습이다.


게임 속에서는 팬 중심 문화의 부정적인 면도 묘사된다. 레이스 이외의 요소로 선수를 평가하는 팬들의 반응을 비판하기도 하고, 팬서비스나 팬들의 반응에 정신이 쏠려 퍼포먼스에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위닝 라이브 무대에서마저 엑스트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대다수 우마무스메의 현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더트, 단거리, 지방 경주의 저평가 등도 문제로 나타난다.



우마무스메가 그려낸 세계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최근 스포츠 팬덤의 아이돌 문화 유입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가 논하기 전에 인지해야 할 것은, 어쨌거나 새로운 유형의 팬들이 그 자리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에 도입된 포토카드 문화.


선수 및 팀의 성취로서의 스포츠와, 팬의 성원에 보답하는 스포츠. 앞으로 우리 팬 문화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