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의 아쉬움
교회 학생부 아이들에게 올해 첫 설교 시간에 물었다.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에게만 속한 것이 무엇인가?
도구 사용에서부터, 언어, 무리 생활 등 어지간하면 인간만이 할 것 같은 것으로 얘기의 진행 방향을 좁혀갔다. 그렇게 인간만이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른 동물들도 하고 있는 것들을 제하다보니 몇 개가 남았다.
1) 놀이
하지만 알고 보니 포유류 중에 많은 종들이 생존과 무관하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2) 예술활동
아직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의 예술활동에 대한 자료는 찾기 힘들다. 여타 동물들의 예술적 의도가 없는 활동의 결과물이 예술적으로 보여지는 경우는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美)에 대한 추구라는 의도성을 가진 예술활동은 매우 인간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3) 도덕적 삶
사회계약설과 같은 생존 필요에 따른 상호 도덕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물론 사회적 합의과정과 같은 의식적 활동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태계의 균형이 그러한 모습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를 넘어선 절대적 도덕의 추구는 인간 사회 밖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가끔 인간보다 나은 동물 기사가 나오면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편적 현상이라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볼 때 도덕적 삶, 선(善)에 대한 의식적 추구는 역시 매우 인간적인 활동이다.
4) 진리 추구
도덕적 삶과 비슷한 부분인데, 사물의 본질이나 원리를 추구하는 활동, 진(眞)에 대한 추구 역시 매우 인간적인 활동이다.
5) 사후 세계와 관련한 활동
동물 중에 죽음 이후에 대해 궁금해하고, 대비하는 존재는 인간 외에 찾기 힘들다. 기도나 종교 활동이 이러한 인간적 특성을 매우 강하게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설교의 내용은 이런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의도는 아이들이 종교 활동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열거된 내용들을 보면 여타의 동물이나 기계가 따라하기 어려운 인간에게만 속한 활동은 대개의 경우 생산활동이나 생존활동과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실용성으로부터 거리가 멀 수록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의 미래와 인간적 활동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구글을 비롯해 다양한 ICT기업들이 인공지능, 기계학습, Deep Learning에 대해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다. 초보적인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이폰 Siri 등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으로 처음 다가올 때는 주로 '편의'의 모습을 띄게 된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인공지능은 대체 노동력의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단순 숙련 노동은 삽시간에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회계사 또는 의사와 같은 고급 숙련 노동의 영역 역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한다.
생산활동, 실용활동의 상당부분을 기계 노동이나, 전자적 노동으로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지킬 것인가?
일단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들이 자신들의 노동의 결과를 인간을 위해 선뜻 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뒤로 하고, 이러한 기계들보다 계산 능력과 물리적 힘에 있어서 열세에 놓이는 인간 존재는 무엇으로 자기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올 초의 첫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었고, 짧은 소견으로는 진선미(眞善美)와 같은 인간 고유의 활동이 바로 인간의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우리의 교육은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가?
창의성 교육이라는 유행이 불고 있지만, 기실 그러한 교육은 입시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관리의 성격이 강하고,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터 비롯되는 인간 고유성의 진작을 위한 교육은 아닌 것 같다.
포항 어디쯤 있는 해변에서 일출을 보다가 문득 올 초에 했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좀 비약 같지만 인간의 고유함에 대한 학습의 재료로 자연만한 것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통해 미(美)에 대한 감각을 키우게 함은 물론이고, 조화와 균형을 통해 진(眞)과 선(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이러한 측면 외에도 자연은 인간에게 무궁한 방식의 만남을 선사한다. 어떤 아이는 저 바다를 보면서 첨벙댈 것이고, 누군가는 나처럼 사진을 찍을 것이다. 누군가는 바다를 보면서 상념에 잠길 것이고, 누군가는 모래성을 쌓을 것이다. 산에서 주울 수 있는 막대기 하나도 무수한 의미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것은 구조화된 교보재들과의 매우 큰 차이점이다. 창의성은 이러한 환경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쯤 미쳤을 때, 서울살이가 못내 서글프게 느껴졌다.
과연 서울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학습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