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철에 쓴 글인데, 뒤늦게 업로드합니다. 칼럼 원문은 여기 http://www.wasuwon.net/120827.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을 찾았다. 간다간다 벼른 게 한 2년 지난 것 같다.
장욱진이라는 화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6년 전이다. 같이 일하던 기획자와 업무 차 모교에 들렀는데, 장욱진 전시를 한다면서 대뜸 모교 미술관을 보고 가자는 것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술 까막눈인 나는 장욱진의 그림이 너무 좋다는 동료 뒤에 서서 ‘뭐가 좋은 거지?’ 긁적이며 몇 점 훑어보았을 뿐이다. 다만 ‘그림이 따뜻한 것 같다’는 느낌만은 남았었나보다.
그 후 자주 가던 치과의 원장님이 장욱진의 팬이었는지, 프린트 카피본 하나가 진료실 입구에 항상 걸려있었다. 부실한 치아 탓에 1년에 네댓 번은 치과를 방문했으니, 계절에 한 번은 장욱진과 마주친 셈이다.
이걸 굳이 따져보자면 내 생활권 안에서 유일하게 인연의 끈이 이어진 화가가 장욱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왕 미술관에 간다면 그의 그림이 있는 곳에 한 번은 가봐야겠다 싶었다. 이상한 도리(道理) 같은 감정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찾아간 미술관에서는 때마침 <장욱진과 나무>라는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나무였기에 나무 그림들만 모아서 연 기획전이었다. 치과 진료실 입구의 그림도 나무 그림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가로수,1978>라는 작품이었다.
한 아빠와 함께 온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아이도 그게 이상했는지 아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빠, 왜 나무 위에 집을 그렸을까?”
아빠는 매우 현실적인 동문서답을 해주었다.
“몰라. 그런데 집에 갈 때마다 어떻게 올라가지?”
작자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대로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터는 어디 위에 있는 것일까? 콘크리트 위에, 문명 위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자연의 터 위에 살고 있는 것일 텐데, 나무 위에 집을 그리니 그게 참 극적으로 드러나는구나.’
나무 기획전이라고는 하지만 덩그러니 나무만 그린 그림은 없었다. 대부분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몇 개의 소재가 있는데 개, 까치, 해와 달, 가족 등이다. 특히 가족의 모습은 ‘단란함’, ‘옹기종기’라는 말을 그림으로 번역하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꼭 그러한 느낌이었다.
가족이 나오는 그림 중에서도 <나무, 1983>은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장욱진 본인은 온전히 자신의 리듬에 알맞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주변인들이 보기에 그는 꽤나 기인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눈에는 어땠을까? 한솥밥 먹는 처지니 일상의 범인(凡人)으로 보이기도 했겠지만 기인이 아니다 부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 1983>에서 두 그루 나무 사이에 서서 팔짱을 끼고 까치를 보고 있는 것은 장욱진 자신인 듯하다. 그리고 멀찍이 초가 안에서 아내가 배꼼 얼굴을 내밀고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기인인 남편이 재미도 있고, 또 뭘 하려나 초조도 하고, 그런 느낌을 주는 구도와 표정이었다.
장욱진의 그림은 참 심플했다. 그 스스로도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화가의 글은 오히려 군더더기일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보다. 장욱진은 생전에 가끔 기고를 하기도 했는데, 그걸 모아서 출판한 에세이집 중판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화가의 존재방식은 오직 그림으로 표현될 뿐이다. 화가의 글은 오히려 군더더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느낌의 세계가 전부인 듯한 그림에도 사고방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림은 좋아하면 그만이지 그림 뒤에의 사고방식까지 짚어 볼 필요는 없겠지만,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까지 다 헤쳐 보고 싶은 사람도 없지 않을 성싶다. 이 책은 그런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책 <강가의 아틀리에> P.9 중에서
꼭 나보고 읽어보라고 쓴 서문 같았다. 그림만 보고서 흠뻑 감상을 하는 것에 여전히 자신이 없는 나는 작가의 생각이 더 알고 싶었고, 그의 에세이집은 고마운 안내책자였다.
그렇다고 그의 책에 그림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이 ‘심플’하듯 그의 글도 ‘심플’했다. 다만 그는 글에서 작가의 정신에 대해 자주 강조했다.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꾸며 놓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베끼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즉 자기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솔직히 꾸며 보는 것이 참된 일입니다.”
- 책 <강가의 아틀리에> P.130 중에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많은 화가들이 그렇겠지만 장욱진에게 그림은 작가의 마음을, 심상(心象)을 그리는 것일 뿐, 대상으로서의 오브제를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싶다. 그래서 작품에는 작가의 사고방식이 배어있다고 했던 것이다. 작품은 특정한 순간 작가 자신을 캔버스에 프린트한 것이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에세이는 <예술과 생활>이라는 1967년 글이었다. 일종의 예술지상주의 예술과는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생활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룬 글이었다. 장욱진 스스로는 그 말이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도 결국 그렇듯 사는 방식임에 지나지 않음이리라”라고 말하면서, 예술이면 다 생활이지, 그와 별다른 ‘생활예술’이란 게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이 글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생활예술, 혹은 일상예술이라는 말이 최근 10년 사이에도 왕왕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생활예술이란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유는 마치 예술을 생활에서의 유용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한 생활의 재발견, 일상의 예술적 해석이라는 취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드러난 방식은 생활 공간에 대한 디자인적 기여를 추구한 것이 주가 아니었나 싶다.
장욱진미술관은 공원을 끼고 있다. 조각상이 가득한 공원을 지나 구름다리로 조그마한 강을 건너면 미술관이 나온다. 세 살배기 아들 탓에 그림 감상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단순함 속에 따뜻함을 담은 그의 그림을 보고 나오는 마음은 뭔가 먼지를 툭툭 턴 것처럼 산뜻하고 가벼웠다. 나오는 길에 조각 공원 한 곳에서 여행자 조각상과 마주섰다. 여행용 트렁크에 앉아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는 조각이었다.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는 탓에 항상 무거운 나의 가방은 마치 여행용 트렁크 같다. 그 조각상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가방 위에 앉아 가만히 쉬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