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역사

프랑스-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계엄의 역사

by Joseph Park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계엄법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군사적 통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는 법적 도구였습니다. 이 법은 프랑스를 넘어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이후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무려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계엄법이 프랑스에서 시작해 일본과 한국으로 이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한국에서 계엄법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 역사를 짚어봅니다.


1. 프랑스 혁명과 계엄법의 시작

1791년 프랑스 헌법에 명시된 “임시적 포위상태(état de siège)”는 계엄법의 시초였습니다. 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진 뒤, 프랑스는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반혁명 세력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군대가 민간 행정과 사법권을 장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해졌고, 이를 통해 공공 질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법을 단순히 위기 관리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 나폴레옹은 계엄을 선언하고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 스스로 제1통령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계엄은 정치적 안정과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계엄법은 이후 일본 제국으로 전파되며 그 성격이 더욱 강압적인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2. 일본: 계엄법의 군국주의적 변형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법률을 받아들여 근대적 국가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프랑스의 계엄법 개념을 차용한 일본은 1882년 태정관 공고 제36호를 통해 ‘임전지경(臨戰地境)’과 ‘합위지경(合圍地境)’이라는 이중적 계엄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임전지경: 덜 심각한 상황에서 군대가 민간 행정을 지원.

합위지경: 심각한 전시 상황에서 군이 모든 행정·사법권을 장악.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 제14조는 천황이 계엄을 선포할 권한을 명시하며, 계엄법은 군국주의를 유지하고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식민지 사례: 일본은 조선에서 1919년 3·1운동 이후 계엄을 선포하고 독립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국내 사례: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계엄을 선포, 조선인 학살과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정당화했습니다.


일본의 계엄법은 군사적 통제뿐 아니라 정치적 억압의 도구로 활용되며, 강압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3. 한국: 계엄법의 수용과 남용

1) 해방 이후 계엄법의 도입

1945년 해방 후 한반도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법적 체계를 정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한국 정부는 일본의 법체계를 답습하며 1948년 제헌헌법 제64조에 계엄 선포권을 명시하고, **1949년 계엄법(법률 제69호)**을 제정했습니다.

일본 계엄법의 ‘임전지경’과 ‘합위지경’은 각각 ‘경비계엄’과 ‘비상계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비상계엄 하에서는 군이 모든 행정과 사법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2) 계엄의 남용: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한국 현대사는 계엄법의 남용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무려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이는 주로 정치적 위기에서 정권을 유지하거나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

제주 4·3 사건(1948): 민중 항쟁 진압을 위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습니다.

4·19 혁명(1960): 이승만은 시위 진압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결국 하야했습니다.


박정희정부

5·16 군사쿠데타(1961): 쿠데타 이후 1년 이상 계엄이 유지되며, 민주정부가 무너졌습니다.

유신헌법(1972): 계엄법은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핵심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부마항쟁(1979):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진압 명목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전두환 정부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 계엄 확대와 시민 학살로 이어진 최악의 계엄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1980년 전국 계엄령 :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을 통해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4. 2024년: 계엄법의 부활과 저항

1987년 민주화 이후 계엄은 더 이상 선포되지 않았으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44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계엄법은 다시 정치적 도구로 부활했습니다.

선포 배경: 반정부 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계엄을 선포했으나, 시민들과 국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결과: 계엄령은 6시간 만에 해제되었으나, 정치적 혼란과 충격을 남겼습니다.


5. 계엄법의 교훈과 미래

179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계엄법은 1868년 일본을 거쳐 1948년 한국 제헌헌법에 도임되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변형되고 남용되었습니다.

프랑스: 계엄은 공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 수단이었지만, 나폴레옹에 의해 권력 강화의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와 식민지 통치의 도구로 계엄법이 악용되었습니다.

한국: 계엄법은 독재와 정치적 억압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수많은 민주화 투쟁을 촉발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계엄법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며 각국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 억압과 권력 남용의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엄법의 남용과 그로 인한 고통은 동시에 민주주의를 향한 끊임없는 저항과 시민의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2024년 계엄령 사태는 우리가 여전히 계엄법의 위험성과 잔재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며, 계엄법의 남용을 막고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과 사회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을까? 역사의 교훈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살아 있는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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