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나는 문과 전교 1등으로 자랐다. 목표는 분명했다. 신문사 기자. 어린 날부터 집에서 신문을 오려 붙이며 제목을 다시 뽑아 보던 기억이 있다. 말이 세상을 움직이는 순간들을 모으고 싶었다. 나의 얇은 공책은 기사 흉내 낸 문장으로 가득했다. 친구들은 모의고사 등급을 세었지만, 나는 리드와 본문, 인용부호의 위치를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1996년 11월, 사상 최고 난도의 수능이 찾아왔다. 낯선 유형, 길어진 지문, 계산을 한 번 더 요구하는 문항들이 시험장을 무겁게 만들었다. 교실의 공기가 식어 가는 느낌 속에서 나는 손바닥의 땀을 훔치고, 의도적으로 호흡을 세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한 문제 앞을 보는 것.” 간절함은 기교를 이겼다. 결과는 모의수능보다 높은 점수였다. 교장 선생님의 무언의 압력이 시작했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는. 담임은 나에게 서울대 사범대를 강하게 권했다. “안정적이고, 진로가 분명하다.” 이유를 들을수록 마음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나는 내 강점이 빛날 논술 가중치를 골랐다. 하향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는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 주는 전형이었고, 그 길이 내 방식과 맞았다. 부모님과 담임, 진학부 선생님 앞에서 내가 쓴 논술 답안을 펼쳐 보이며 조심스레 설득했다. “점수로만 가면 저는 저 자신을 잃습니다.”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종 추가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나는 공책 첫 장에 크게 썼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
입학 직후에 교내 학보사 ‘고대신문’ 수습기자 전형도 합격했다. 편집실의 형광등 아래서 나는 3월부터 여름 방학이 끝나는 8월 말까지, 매일 학보사를 출근했다.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매일 학보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 기사문 작성에 매달렸다. 첫 마감날의 밤, 키보드 위에 얹은 손이 떨렸지만 문장은 앞으로만 갔다. 입사 동기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전쟁, 편집실의 종이 냄새, 집에 가는 마을버스의 진동까지 모든 것이 꿈의 질감을 가졌다. 그때까지의 삶은 내가 쥔 펜 끝에서 자유롭게 흘러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