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책 사이
<작가의 글>
책이 지나간 자리
책이 나를 지나가며 남긴 생각의 집적들은 결국 내 작품의 흔적이 되었다.
책으로 만난 그는 변했고 나도 바뀌었다. 책 속에서 자라나던 이상은 현실의 가르침에 무너져서 너덜너덜해졌고 나의 의지도 바랬다.
어느 순간 나도 생각도 책도 모두 낡은 것으로 분류되었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밝히는 것은 촌스럽고 순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직도 그 새로움이 삶에 밀착된 것인지, 모호함이 비겁함을 숨기기 위한 위선은 아닌지 나는 의심한다.
책은 내게 성공의 안락함보다 도전의 설렘과 그 모든 실패와 좌절을 남겼다. 책이 지난 모든 흔적은 나의 작품 속에 남아 있다.
어쩌면 다시 나는 책을 읽으며 다른 작품을 꿈꾸고 새로운 시도에 설레며 잠깐의 기쁨을 느끼고자 다른 실패의 상처를 감수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책을 집어 들지 모른다.
<미술⦁책 사이>는 전시는 내 작품에 남아 있는 책의 흔적을 발굴하는 것이다.
- 그 발굴은 십 대에 만나 첫사랑처럼 잊지 못하고 내 삶의 시작이 되었던 책들
- 내가 명망가의 도구이기를 중단하고 처음 창작한 그림책과 원화
- 내가 창작의 준비과정으로 2023년부터 적고 있는 책들의 필사
- 창작의 좌절 속에 읽었던 책들의 필사
- 책이 말하는 내용에 영감을 받았던 내 작품들
5가지 흔적들을 밝히며 미술작품과 책 사이를 생각한다. 잊힌 책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시간의 결을 발견한다.
100호 작품을 그리다 보면 책이 쓰고 싶어진다. 책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다시 다른 미술적 방법을 실행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미술⦁책 사이>는 그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의 출처이며, 책과 작품 사이에서 살아남은 흔적들의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