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지 못한 물건, 시선
2025년,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했다.
역사를 발굴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주인공을 찾고,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하도록 예술가를 가져다 붙이는 방식….
그런 프로젝트에 기꺼이 나는 참여했다. 나는 이곳에서 현대화라는 명칭이 붙기 전부터 미술로 이름 모를 사람들을 만났고, 우연히 이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했기에, 참여를 통해 시장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인 전시는 먼 곳의 작가와 시장 옆 작가의 만남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먼 섬의 유명 작가와 동네 작가의 결합은 어색했지만, 우연한 전시에서 내 작품은 장 보러 왔다 들른 사람들, 지나가다 들른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다. 섬 작가의 부재를 틈타 나는 여러 지역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마치 개인전처럼 내 작품은 카메라에 흡수돼 기사로 튀어나왔다.
전시 제안을 받고 초겨울 전시장을 둘러보며, 무명작가에게 배당된 위치는 못 하나 박기 힘든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굶주린 위장처럼 쓰레기통을 뒤져 위장을 채우듯, 어떻게든 내 작업을 걸고 싶었다. 커튼으로 배정된 위치에 길 위에서 만난 널빤지에 그림을 걸기 위해, 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인연을 맺고, 커튼 앞에 나무를 세워 또 하나의 벽을 만들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남은 것은 현대화된 시장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공공근로 중에 주저앉는 노인들, 지나간 세월 속에서도 폼을 잡고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선글라스를 낀 채 사람들을 바라보는 외로운 노인들…. 모두 떠나간 장소, 떠나간 시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시가 지나고 연말이 되고, 연초가 되었다.
그 지나간 자리, 떠나간 자리는 지나가지도 떠나가지도 않고, 내 안에 남아 작품이 되었다.
시장 현대화는 예전의 외양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의자와 테이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을 사용하던 몸은 더 이상 없지만, 그를 기억하는 노인은 그가 온 듯이 그 자리를 기웃거린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직접 그리는 대신, 그것이 스쳐 지나가며 남긴 선들과 흔적을 화면 위에 겹쳐 올렸다. 떨어진 나뭇가지, 도로 확장으로 잘려나간 소나무의 가지, 추수 후 바닥에 버려진 식물의 잔해들—모두가 사람들이 지나오고 떠나온 흔적이다.
작업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긁히고 쌓인 선들은 시간의 방향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순간을 재현하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뒤엉킨 상태를 드러낸다. 화면 위의 형상은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 여러 시간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층위가 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존재’를 그리기보다, 존재가 떠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주목한다.
남겨진 자리, 사용되던 사물, 지워지지 않는 흔적. 그것들은 사라진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물질적인 방식이며, 동시에 우리가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