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예찬
위이잉 위이잉, 이른 아침부터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더니 풀들이 일제히 누워 자빠졌다. 예초기가 쓰윽 지나갈 때, 우지직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는 고통에 대한 반응이고 통곡 일 것이다. 죽음을 예감할 테지만 죽음은 아니다. 예초기는 생명을 탐내지는 않는다. 다만 소리와 몸짓으로 겁을 줄 뿐이다. 한 사나흘 지나면 풀들은 여지없이 올라온다. 뻔뻔스럽지만 너무나 순한 모습으로.
귀촌 한 남편이 예초기를 처음 사용할 때만 해도 그것을 쓰고 나면 손이 달달 떨린다고 했다. 뾰족한 사각형 모양의 칼날이 회전하면서 만들어내는 진동을 서툰 몸짓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다가 그리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노련해져서 섬세함을 요구하는 구릉 잔디를 그림처럼 깎아내고, 텃밭이나 꽃밭의 잡초들을 순식간에 눕힌다.
예초기는 이제 녹지공간이 있는 우리 집의 필수품이다. 그것이 소리와 함께 지나가면 온 데가 정갈해지면서 바람결이 자연스럽다.
기특하게도 소릿값을 한다.
예초로 코끝을 자극하는 풋풋한 풀 내음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