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2월이면 꽁꽁 얼었던 땅이 숨구멍을 내주기 시작한다. 성질 급한 복수초는 하얀 눈 속에서 노란 꽃을 내밀며 봄의 손을 잡아준다. 그때부터 나는 햇살의 눈치를 봐 가면서 호미를 들기 시작한다.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록빛을 머금은 채 갈빛 잔디 속에서 버젓이 자라고 있는 새포아풀이나 유럽점나도나물을 뽑아내기 위해서다.
잡초 주제에 이리 당당해도 되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이 작은 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잡초도 다 순서가 있고 때가 있는 법. 올봄에는 새포아풀이 선두주자로 1번을 차지했고, 그 뒤를 봄까치꽃과 광대나물이 올라왔다. 느릿한 피막이풀과 애기땅빈대는 아직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을 테지만, 늦가을에야 새순을 내미는 잡초들도 있다.
때를 맞춰 올라오는 것은 잡초뿐만이 아니다.
꽃밭의 화초들 역시 자기 때를 절대 깜빡하는 법이 없다.
3월이면 벌써 꽃대를 내미는 동의나물, 바람꽃, 할미꽃, 그보다 먼저 피었다가 꽃잎을 떨구는 크로커스, 어린눈을 뜨다 꽃샘추위에 화들짝 놀라는 무스카리, 때 맞춰서 노란 수선화와 형형색색 히아신스가 합류하면, 꽃밭은 금세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아하면서도 귀티 나는 튤립이 등장하면, 꽃밭 주인은 꽃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가 하면, 겨울부터 씩씩하게 몸집을 불려온 수레국화나 꽃양귀비, 심지어 작달막한 등심붓꽃조차도 ‘나 여기 있소’ 할 때의 모습은 잡초 못지않은 당당함이 있다.
꽃에도 사계절이 있듯, 잡초에게도 사계절이 있다.
또한, 귀하게 대접받는 꽃이든, 푸대접받는 잡초든, 기죽지 않는다는 점도 같다.
그것은 자연의 원초적인 질서요, 신의 섭리일 것이다.
한때는 귀한 화초로 대접받다가 잡초로 나가떨어진 것들도 있다.
우리 집 꽃밭에서 벌개미취가 그랬고, 꽃범의꼬리와 청하쑥부쟁이, 등심붓꽃까지도 이제는 잡초나 다름없이 뽑혀나간다.
그것들이 잡초로 전락하는 데는 다름 아닌 ‘번식력’이 한몫한다.
누울 자리, 뻗을 자리를 가리지 않고 마구 번지는 무례함은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는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전에서는 잡초를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라 정의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나는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까지 탐내는 것들’을 잡초라 부른다.
내 꽃밭에서 퇴출된 벌개미취와 몇몇 식물들은 원래 화원에서 구입하거나 이웃에서 얻어와 정성껏 키운 화초였다. 하지만 그것들의 무서운 번식력, 잔디밭이든 꽃밭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 영역을 확장하려는 욕심이 사람보다 더 지독하다는 판단이 서자, 나는 그것들을 잡초로 분류하고 여지없이 뽑아버리고 있다.
오늘도 엄청 뽑아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제 욕심만 챙기는 것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남의 자리를 탐내는 것들,
그리고 서로를 위해 솎아내야 할 것들을 뽑고 또 뽑았다.
그때, 어린 민들레가 호미를 멈추게 했다.
귀엽고 야무진 노란 민들레 꽃을 볼 것인가,
아니면 바람 따라 날아다니는 홀씨를 미리 막을 것인가?
두 마음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깊게 파냈다.
그날 저녁, 나는 민들레를 상큼한 봄맛으로 식탁에 올렸다.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없다.
단지, 있어야 할 자리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나는 따뜻한 햇살을 등지고 앉아 풀을 뽑는 시간이 참 좋다. 그때,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미안하지만, 여긴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