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배우는 삶
닭장 대신 자작나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요즘 정원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자주 그렇게 말한다.
닭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정원의 매무새는 한결 정갈해졌다.
그래도 닭장을 없앨 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닭들은 남은 음식물을 처리해 주었고, 매일 건강한 달걀을 내주었다.
모이를 챙기고 보살피는 수고에 대한 작은 보답이기도 했다.
도심에서 내려오는 손주들에게는 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특히 허우대가 크고 멋스러운 수탉 한 마리는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곤 했다.
닭장이 언제부터 내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을까.
7년 전 닭장을 지을 때만 해도 우리 집은 정원이 아니라 감나무 과수원이었다.
닭들이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했다.
서울에서 손주들이 내려오면
“얘들아, 닭장에 가서 달걀 좀 꺼내 오렴.
달걀 프라이 해 줄게.” 하며 시골의 선물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러다 감나무를 하나둘 베어 내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고 꽃과 나무를 들였다.
과수원이라는 이름 대신 정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닭장 앞쪽에 이끼정원을 만들면서 닭장의 존재가 점점 눈에 걸렸다.
생각은 바뀌고 모든 것은 변한다.
달걀을 떠올리며 기쁨으로 지었던 닭장이 어느 날 혐오시설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닭장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 사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 대신 자작나무를 심었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히고 싶어서였다.
자작나무 사이에 도자기 항아리를 하나 앉혀 두고
그 자리를 ‘사유하는 의자’라 이름 붙였다.
아마도 그곳은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고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곳을 ‘숨 쉬는 자작나무 숲’이라 부른다.
며칠에 걸쳐 나무를 심고 땅을 고르면서 상상했다.
편백의 피톤치드가 흐르고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가 빛나고, 붉은 산호각단풍이 서 있는 숲 속에서 고요히 앉아 숨 쉬는 일흔의 한 여인을.
하지만 그것 또한 영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잠시 머물다 가는 한 순간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자기 수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 코헬렛 3장 13절ㅡ
“사람이 자기 수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코헬렛 2장 24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