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자작나무 숲을 꿈꾸며
형언하기 어려운 그라데이션의 청보랏빛, 청화쑥부쟁이를 걷어내고 있다.
꽃이 예뻐 귀촌하자마자 들여온 것이니 어느덧 아홉 해쯤 키운 셈이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땅을 다 차지한다’는 이유로 애물이 되어 버렸다.
벌개미취와 꽃범의 꼬리가 우리 집 정원에서 일찌감치 퇴출된 것처럼, 징글징글한 이미지를 남기고 청화쑥부쟁이도 떠나게 생겼다.
이 녀석들의 특징은 호미로는 도저히 뽑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뿌리가 서로 단단히 얽혀 있어 납작한 삽을 땅속 깊이 밀어 넣어 한 판씩 들어낸 뒤, 호미로 흙을 털어내며 뿌리만 골라 버려야 한다.
남편이 납작한 삽으로 한 삽 파 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 호미로 흙을 털어냈다.
그렇게 두 시간이나 작업을 했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혹여 작은 뿌리 하나라도 땅에 남겨 두면 거기서 다시 새순을 틔우는, 참으로 질긴 생명력의 식물이다.
꽃길 따라 줄지어 심었던 벌개미취를 뽑아내며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여보, 다시는 뿌리 번식하는 애들 심지 맙시다.”
내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징그러운 것들이야.”
하고 맞장구를 친다.
정원이 세월을 입어야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어쩌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 화제가 되는 주식 투자 이야기도 그렇다.
성공하려면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고 애널리스트들이 말하지 않던가.
경험만 한 스승이 없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듯하다.
청화쑥부쟁이를 걷어내고 있는 그 자리에는 자작나무 열한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다.
그 곁에는 산호각단풍 나무 한 그루가 붉은 줄기를 곧게 세우고 있고, 옆으로는 피톤치드가 풍부한 편백나무가 작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이름을 ‘숨 쉬는 자작나무 숲’이라 붙여 두었다.
앞으로는 내 발걸음이 그곳으로 더 자주 향할 것 같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놓여 있고, 편백과 자작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아래에 있으면 잠시 쉬어 가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피식물을 심지 않고 황토빛 흙을 그대로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흙냄새와 맑은 공기가 어우러지는 작은 치유의 숲을 만들고 싶어서다.
청화쑥부쟁이를 다 걷어내고 땅을 반듯하게 고른 뒤에는 자작나무 사이에 작은 탁자와 의자를 놓을 생각이다.
그곳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쉬게 될 날을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