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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Apr 22. 2020

나의 사적인 청탁법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 삼을 필요도 없이 1인 전자책 출판사는 매일이 재택근무다. 오늘은 격식도 없고 형식도 없고, 최소한의 계약서마저도 없이 친분으로만 들이대는 나의 청탁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걸 청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첫 번째, 대치동 논술학원 원장인 K씨. 동갑내기 친구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만났고, 사적인 대화보다는 꿈과 미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지라 우리는 아직까지 서로 존대를 한다. 논술 강사로 시작해 아동 대상의 실용서를 여러 권 내고, 그 외에도 교육 웹툰, 앱 개발, 희곡 등 멈추지 않는 도전의 아이콘! 긍정과 열정을 인간으로 빚으면 아마 딱 K씨일 거다. 예전에 네이버 포스트에 아이들을 위한 독서 관련 웹툰을 무료로 연재했던 걸 전자책으로 내자고 꾀어볼 생각이었다. 반년만의 연락이었다. 원래 자주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연락이 뜸했던 반년 동안 그녀의 사업도 큰 타격을 맞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코로나 때문이다. 학원이 문을 닫아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은 수백이었고, 최근에는 은행 대출을 위해 서류 작업을 하고 발로 뛰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주 비싼 휴가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헤헤” 긍정적인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엄청난 서류 더미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줬다. 나야 수입이 없어서 그렇지 빚을 질 일은 없는데....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에 스타벅스 벚꽃 에디션 음료 쿠폰을 보냈다. ‘곧 진짜 봄이 올 거예요!’ 


두 번째는 여수에 사는 두 아이 엄마 S씨. 로맨스 웹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고, 서로 존대를 하는 동갑내기 친구다. 헤아려보니 S씨와 친구가 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멀리 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마운 나의 지원군이다. 진심으로 나의 일을 응원해주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도와주려 하는 사람이다.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미리 체크해 오전 9시부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청탁 얘기는 접어두고 근황 토크, 정치 얘기로 3,40분이 훌쩍 흘렀다. 어쩜 우리는 정치색도 이렇게 잘 맞는지. 정치 얘기가 재미있어진 걸 보니 우리가 나이 들긴 한 모양이라며 또 까르르. 하지만 본분을 잃지 않고 책 얘기를 꺼냈다. S씨에게서 받고 싶었던 콘텐츠는 그녀의 블로그에 꾸준히 올리던 글 쓰는 주부의 자기 고백적 에세이다.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야만 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출간 작가가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울림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녀도 나의 제안을 반가워했다. 구두로 마감일까지 정했고, 아마 그녀의 책은 아미가의 5-6번째 책이 될 것 같다. 


세 번째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워킹맘 B씨. 내게 약간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랄까. 정말 능력 있고 똑똑하고 배려심 있고 인성도 훌륭한 여성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나 싶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부분들이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너무나도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맹세하건대 그녀의 불행은 단 1%도 그녀의 탓이 아니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남편 탓이고, 불합리한 결혼제도 탓이며, 여자를 갈아 유지시키는 빌어먹을 가부장제 탓이고, 인재를 어찌 대우해야 할지 모르는 멍청한 대기업 탓이다. 아무튼 B씨는 정말 놀라운 그림 실력과, 독자의 마음 아리게 할 정도로 진솔한 글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정말 이것만으로도 B씨가 아티스트로 대우받아야 정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출산과 결혼생활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를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워킹맘들이 공감할만한 멋진 콘텐츠였다. 안타깝게도 너무 내밀한 얘기라 공개하는데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출간과 상관없이 글은 계속 쓰라고. 당신의 글이 너무 좋다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이거 청탁이 맞나 싶다. 다른 이야기만 실컷 했으니 청탁이 제대로 된 것 같지도 않다.(그래도 두 번째 S씨는 약속 기간 내에 원고를 보내줬으니 성공. 1/3 확률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걸 출판사 업무 가운데 하나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음, 이 일 꽤 재미있다. 

아직까지는 친구들을 갈아서(?) 책을 내고 있는 출판사지만,(내가 생각해도 '아미가'라는 출판사명은 제대로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멋진 여성이 자신의 색깔을 담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들이댈 것 같다. 아마도 전자출판이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앞으로도 어렵게 생각하고 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진심을 다할 생각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필요한, 소중한 목소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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