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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Apr 28. 2020

탁월한 취향의 독자를 찾습니다

술꾼 여행가 안나를 인터뷰하다





"탁월한 취향을 지닌 독자님들께 바치는 책"

<베를린, 베를리너> 안나







요즘과 같은 여행 암흑기에 지난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살려고 여행한다’는 안나의 글을 읽으며,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여행을 이야기하고, 여행을 꿈꿔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다. 삶의 힘든 고비마다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현실도피라 하고, 누군가는 방랑이라 하겠지만 뭔들 어떠랴. 긴 삶 속에서 누구나 현실도피와 방랑을 여러 번 일삼기 마련이고, 이를 나에게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누구라도 쉽게 건너지 못할 삶의 고비를. 여행 작가 안나는 여행을 통해 현명하게 건넜다. 아니, 건너는 중이다. <베를린, 베를리너>는 그 생생한 기록이다. 농담 삼아 ‘술꾼 여행가’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이건 사실 술의 힘을 빌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도달하기까지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기록이다. 

interview by 홍아미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심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살고 싶어서 여행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은 순간에 떠난 여행이었거든요. 절대로 ‘이 여행으로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떠난 게 아니었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제가 여행기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쓸지 몰랐어요. 당연히 도중에 포기할 줄 알았어요. 남이 볼 때는 인내심 있고 끈기 있어 보이지만 사실 금방 포기하는 성격이란 걸 제가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립출판한 제 책 뒤표지에도 ‘이런 것도 여행기라고 썼다’고 적었어요.


Q.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데요.

굳이 제 자랑을 하자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여행기를,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건도 정말 흥미진진하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대단한 필력으로 썼다는 거죠. 네, 저는 여러분이 ‘이 도시에 정말 가보고 싶다’는 맘이 들게끔 유혹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네 책 읽으니까 거기 정말 가고 싶다”고 제 친구가 그랬어요. 


Q. 2019년 여름, 두 번의 여행을 두 권의 책으로 묶어냈어요. 저 또한 여행 작가로서 참 대단하다고 느낀 점이었는데요. 그다지 길지 않은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는지, 그 생산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하나. 제가 국문과 출신이기 때문이죠. 대학교 4년 동안 배운 것이 문장을 늘려 쓰는 것. 그러니까 1페이지로 끝날 수 있는 얘기를 굳이 4페이지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연마했습니다. 훈련이 됐다고 봐야죠.(웃음) 사실, 뭐든 시시콜콜 쓰는 게 취미였어요. 매일이라고 말은 못 하지만 대학 때부터 늘 일기를 썼었어요. 일기뿐 아니라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별 것 아닌 일도 다 기록을 했어요. 글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Q. 여행지에서 바로 글을 쓰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어떤 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요. 기억나는 여행의 하루를 이야기해주세요.

보통 오전 11시쯤 숙취에 절어 일어나죠.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카페를 가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조금 쓰죠. 오후에는 대개 일정이 있어요. 뭘 보거나, 투어를 하거나, 어딜 가거나. 저녁이 되면 또 밥을 먹고, 술을 먹죠. 보통 펍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아이패드에 펼치고 글을 썼어요. 사실 글은 아무 때나 썼어요. 낮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글을 쓰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아이폰으로 메모해놓기도 하죠. 펍에서 글을 쓸 때는 사실 시선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요. 베를린의 로컬 펍에서 동양인 여자가 눈길을 받는 건 어차피 익숙한 일이기에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어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시아에서 꽤 유명한 작가인가 보다, 생각해주면 고맙고. 


Q. 이번 책은 의외로 정보도 많이 들어있어 놀랐어요. 주석이 어마어마하게 많던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베를린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옛날부터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고, 그만큼 관련된 책도 많이 보고 준비도 많이 했던 여행이었기에 잘 쓰고 싶었어요. 가서 생각 없이 쉬고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번 여행으로 공부하는 재미도 새롭게 깨우쳤어요. 그래서 제가 갔던 역사적 명소나 식당, 카페 정보도 짧게나마 정확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했고요. 


Q. 안나의 여행은 ‘취하는 여행’이잖아요. 술 마시는 얘기, 취했을 때 나눈 대화들을 어쩜 그렇게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지 신기해요.

솔직히, 저는 술을 그렇게까지 안 마셔도 여행을 잘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술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베를린에서 저라는 존재 자체가 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유서 깊은 펍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게 돼요. 굳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요. 물론 저는 술을 마셨지만 계속 영어를 써야 하니까 마음 한 구석은 늘 긴장 상태였어요. 그래도 그 자리에서는 재미있게 놀기만 했지 한 번도 녹음하거나 메모하지는 않았어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차근차근 전날 밤의 대화를 되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쓴 거죠. 그렇게 쓰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너무 자기만족 아냐’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될 정도로. 



 

베를린 거리의 예술 작품들





Q. 글을 쓸 때 행복한가요?

네. 행복해요. 사실 여행을 가서 글 쓴다는 행위 자체가 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요. 와, 그렇게 힘겨워서 꾸역꾸역 살던 내가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글을 쓰고 있구나. 나 자신이 너무 멋있다, 대견하다 뭐 이런 거죠.(웃음)

사실 저에게 글을 쓴다는 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라는 걸 의미해요. 그런데 이번에 베를린에 가서는 제 감정과 상관없이 일단 썼단 말이에요. 어떤 글은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도 해요. 그런 글은 제가 써놓고도 잘 못 읽겠더라고요. 아직 프로는 아닌가 봐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아마도 정신과 치료기에 대한 에세이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여행기로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기는 해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세상에는 다채롭게 힘든 사람이 많구나. 이런 얘기요. 그게 굉장한 공감과 위로가 되거든요. 어쩌면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긴 하지만 잘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진실이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걸 진지하게 풀어내서 진한 감동을 끌어내기보다는 겉보기엔 시시껄렁한 여행기지만 가볍게 읽으면서 이 사람은 이런 일이 있었구나, 피식 웃기도 하고 쉬어갈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에 이어 <베를린, 베를리너>도 기성 출판사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독립출판과 전자책 출판을 선택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큰 출판사에서 제 글을 좋게 보시고 제의를 해주신다면야 ‘사랑합니다’ 외치면서 넙죽 엎드릴 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요.(웃음) 제가 쓴 글이지만 저도 압니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소위 ‘감성 에세이’들, 그러니까 잘 팔리는 글과는 너무 다르다는 걸요. 내 글은 소수의, 마니아 독자들만 보겠구나, 생각 정리하고 일찌감치 투고할 생각은 접었어요. 장점도 있어요. 기성 출판사를 통해 출판을 하게 됐다면 아마 수정이 많이 들어왔겠죠. 가상의 독자를 신경 쓰면서 글을 써야 했을 테고요. 독립출판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쓰고 싶은 대로 다 썼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안나의 책을 선택하신 독자님들에게 한 말씀.

취향이 탁월하고 멋지십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 글을 누가 읽기나 할까. 독자님들이 정말 계시는 건지 궁금하긴 해요. 어딘가에 존재하실 거라 생각하고 말씀을 드린다면, 두려움 없이 살고 싶은 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음, 제 책을 선택하실 정도면 이미 취향이 탁월하시기 때문에 멋대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여행이 가능한 시기가 다가올 때, 망설임 없이 떠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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